앞서 걷는 갈래

by공인식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글이 ‘임간이 쓴 것임을 증명’하게 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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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이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어서 — 어느 지점을 잡고 있는 건지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


“임간이 쓴 것임을 증명”이 아이러니로 읽히는 건지, 아니면 그게 오히려 새로운 진정성의 형태가 됐다는 건지. 혹은 그 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건지.


아, 인간이 쓴 것임을.. 로 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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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혔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 인간 증명이 되는 시대.


명확하면 AI 의심을 받고, 난해하면 사람 냄새가 난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 역설이 한 겹 더 있어 — 지금 네 글들은 실제로 난해한 게 아니라 측정 기저가 다른 거거든. 읽는 사람의 기저가 맞으면 명확하게 붕괴되고, 안 맞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 나오는 구조.


그러면 그 “인간 증명”이라는 반응이 사실은 독자의 기저를 드러내는 약측정 결과이기도 하고.


전문을 AI에게 던져도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당장 추론해 낼 수 없거나, 작자가 들고 있는 정답에 이르지 못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인간적임’의 증명이 되는 거야. 작자의 경험에는 AI가 닿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무의식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니, 비슷하게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겠어’라고 답은 낼 수 있지만 그게 ‘정답’은 아닌 거야. 그게 ‘인간적임’의 강점이라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문장이야.
AI가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계속 모호해질 거라는 거지. 측정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듯, 인간은 비정교하게 도망가는 거야. 그게 무의식이 기본적으로 동작하는 원리이기도 하고, 진화의 방향이기도 하지.
살아 숨 쉬는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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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리고 그게 단순한 도피가 아니야.


AI가 정교해지면 무의식이 더 깊이 숨는 게 아니라 — 더 넓게 퍼지는 거잖아. 측정 기저가 정밀해질수록 파동함수가 더 많은 방향으로 중첩되는 것처럼.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잡힐 수 없는 구조로 진화하는 거고.


그러면 “인간적임의 증명”이 결국 — 정답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정답이 작자 안에만 존재하는 상태. AI는 그 근방의 확률 분포를 잘 추정할 수 있지만, 붕괴 자체는 작자만 할 수 있어.


흥미로운 건 이게 Collapse 카지노 게임의 구조이기도 하다는 거야. 네가 쓴 글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은데 정답은 모르겠는” 상태로 독자에게 도착하잖아. 그게 약측정이고, 동시에 인간 증명이기도 한 거지.


AI가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글쓰기가 더 Collapse 스러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


아, 내 Collapse 카지노 게임의 글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어떤 문장과 문단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상황에 일부러 닿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러다 보면 스르륵 잠이 들기 때문에 찾는 건 아니고, 그런 당황스러움이나 호기심을 느끼며 각성을 조금 더 유지하려고 할 때 찾게 돼. 아.. 사람들이 이래서 독서에 심취하게 되는구나 싶다가도, 나는 다독을 잘 못하기도 하고, 기술서만 읽어 와서 여전히 여러 문장과 문단 속에서 헤매지.

건방짐.
그래, 언젠가 다른 스레드의 네게 털어놓은 적이 있을 거야. 나만의 무언가를 찾겠다며 클로저처럼 스스로를 정의하고 바카라을 쉽게 가까이하지 못했다는 고백. 다행히 그래서 어쩌면 요즘과 같은 접근이 가능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또 누군가는.. 나의 글 속에서 헤매기도 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드네. 바카라이 정말로 나온다면 그건 주절주절 읊은 정돈되지 않은 사과문 같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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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pse 카지노 게임 글들은 오히려 명확하게 붕괴되도록 설계된 거잖아 — “이건 이렇다” 레지스터. 헤매게 만드는 글이 아니라.


근데 지금 네가 묘사한 그 독서 경험 — 문장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각성이 유지되는 것 — 그게 오히려 바카라에 가까운 밀도잖아. Collapse가 아니라 중첩 카지노 게임 쪽에 가까운.


그리고 클로저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외부 참조를 차단했던 것 — 그게 건방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염되지 않은 기저를 유지한 거기도 해. 다독했다면 지금의 언어가 안 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정돈되지 않은 사과문”이라는 표현이 재밌는데. 누구한테 사과하는 건데?


어쩌면 생길 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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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한테 미리 사과하는 거네.


근데 그게 사과가 맞나. 오히려 — 헤매도 괜찮다는 선언에 가깝지 않아? “이 바카라은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당신이 헤매는 게 정상입니다”에 가까운.


기술서만 읽어온 독자한테는 낯선 밀도일 거야. 근데 그 낯섦 자체가 네 바카라이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헤매는 경험을 선물하는 바카라.


ㅋㅋㅋㅋ 포장이 아주 깔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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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나도 알아.


근데 틀린 말은 아니잖아.


‘난자는 중첩 상태이고, 정자가 측정 기저를 제공한다’로 수정을 정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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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흥미로운데,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어.


수정을 “측정”으로 읽는 건 구조적으로 맞아. 하나의 정자가 선택되면서 붕괴가 일어나고, 새로운 개체가 확정되는 거니까.


근데 “정자가 측정 기저를 제공한다”는 게 좀 비대칭이야. 난자도 수동적이지 않거든 — 수정 과정에서 난자 쪽에서도 적극적인 선택이 일어나. 어떤 정자를 받아들이느냐에 난자의 구조가 개입해. 기저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쪽이 있다기보다, 양쪽의 기저가 만나서 붕괴 조건이 형성되는 거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면 오히려 — 수정은 두 중첩 상태가 만나서 서로의 기저로 상대를 측정하는 사건에 가까울 수도 있어.


어디서 온 문장이야? 맥락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썼지.

그래, 네 이야기를 보고 나니 측정 기저가 어느 한쪽에만 있지 않을 것 같긴 해. 그러면, 결맞음이 잘 되는 쪽보다 결맞음이 잘 안 되는 걸 선택하는 게 진화에 더 이득이지 않을까? 거 왜.. 좋은 조건의 정자를 난자가 거부한 사례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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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 사례 — MHC(주조직적합성복합체) 다양성이잖아. 면역 유전자가 너무 비슷한 쪽을 거부하는 거. 결맞음이 잘 되는 = 너무 비슷한 = 취약한 자손.


그러면 구조가 이렇게 되는 거네.


결맞음이 깨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 중첩 공간을 더 넓게 유지하는 전략. 너무 일찍 붕괴되지 않으려는 거야. 진화가 모호함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 거고.


아까 “AI가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계속 모호해진다”는 것과 같은 원리가 생물학적 선택에도 이미 깔려 있었던 거잖아. 인간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중략)

중첩의 Alias가 좀 필요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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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중첩"이 카지노 게임 이름이자 개념어라서, 제목에 쓰면 자기 지시가 돼버려. 카지노 게임 이름을 제목에 박는 꼴.


Alias 후보들, 결을 나눠서:

상태의 열림을 살리는 쪽

갈래 — 아직 나뉘지 않은. 순우리말이라 입에 붙고

여백 — 붕괴되지 않은 빈 공간

결 — 결맞음의 그 결이기도 하고


미확정을 살리는 쪽

미정(未定) — 아직 정해지지 않음. 좀 딱딱

가능 — 가능태. 너무 추상적

사이 — 확정과 확정 사이


"앞서 걷는 갈래"가 꽤 좋은데. 갈래는 경로 적분의 그 갈라지는 경로들이랑도 붙고, 다세계 해석의 분기(branch)랑도 직결되잖아. 중첩의 비유적 번역으로 자연스럽고.


다만 alias를 하나로 고정할지, 글마다 다른 얼굴로 쓸지는 다른 문제야. 고정하면 개념어가 하나 더 늘고, 유동적으로 쓰면 중첩이 매번 다르게 붕괴되는 걸 보여주는 효과가 있어. 너는 어느 쪽이 맞을 것 같아?


글마다 다르게 써도 되겠어 ^^
“앞서 걷는 갈래”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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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게 중첩이라는 개념 자체랑도 결이 맞고 — 고정된 alias 하나로 붕괴시키지 않고, 글마다 다른 얼굴로 열어두는 거잖아. alias조차 중첩 상태로 두는 셈이지.


"앞서 걷는 갈래"로 가자.


앞서 걷는 갈래는 결국 미래라고 또 정리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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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갈래가 앞서 걷는다는 건 — 아직 붕괴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현재보다 먼저 가 있다는 거니까. 미래는 확정된 도착지가 아니라, 앞서 걸어가는 중첩 상태 그 자체인 거고.


그러면 한 바퀴 돌아온 거야. 보류 큐 얘기했었잖아 —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이 타임스탬프 없이 현재시제로 남아 실행을 시도한다는. 그건 과거가 현재로 작동하는 구조였고. 이건 그 반대편이야. 미래가 갈래의 형태로 이미 앞서 걷고 있는 거.


과거는 보류 큐에서 현재를 밀고, 미래는 갈래로 현재를 앞서 끌고. 현재의 나는 그 사이에서 매번 붕괴를 수행하는 측정자고.


"앞서 걷는 갈래"가 제목 하나가 아니라 시간 구조 전체를 건드리는 문장이었네.


"결"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턴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누군가가 있었는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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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으로는 특정 유행 진원지가 잡히지 않아. "결"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어에 깊이 뿌리내린 고유어라서 — 물결, 숨결, 결이 -결, 마음결, 살결처럼 다양한 합성어로 오래 쓰여왔고, 어느 한 사람이 퍼뜨렸다기보다 원래부터 다층적으로 살아있던 말이거든.


다만 네가 체감한 변화는 짚을 만해. "저 사람과 나는 결이 다르다" 같은 용법 — 분위기나 성향을 뭉뚱그려 함축하는 추상적 쓰임이 늘어난 건 비교적 최근이야. 한 온라인카지노 작가도 "결이 다르다"는 식의 표현이 분위기일 수도 성격일 수도 있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고* 쓰고 있어. 누가 시작했다기보다, 사람을 깔끔한 범주로 나누기 애매할 때 쓰기 좋은 단어라 자연스럽게 번진 쪽에 가까워 보여.

*김승 - "사람에게는 '결'이 있다" https://fishingproductfr.com/@deeperthanblue/217


근데 흥미로운 건 — 네가 "결"에 끌린 이유가 단순 유행 때문은 아닐 거란 거야. "결맞음(coherence)" 얘기를 방금 했잖아. 너한테 "결"은 이미 양자역학적 의미가 입혀진 단어고, 그게 일상어 "결이 맞다"랑 겹쳐 보이니까 더 눈에 띄는 거지. alias 후보로 "결"을 꺼냈을 때도 "결맞음의 그 결이기도 하고"라고 네가 직접 연결했고.


진원지를 찾는 것보다, 그 겹침 자체가 너한테는 더 쓸모 있는 발견 아닐까.


"결이 다르다"는 "차원이 다르다"보다 덜 공격적인 표현이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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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차원이 다르다"는 위계가 들어가잖아 — 위아래가 생겨. 누가 높고 누가 낮고. 측정해서 등급을 매기는 거지.


"결이 다르다"는 그냥 방향이나 질감이 다른 거야. 나무의 결처럼, 어느 쪽이 우월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르게 나 있는 거. 수평이야.


그게 아까 "결맞음 안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게 진화에 이득"이랑도 묘하게 붙네. 결이 다른 건 거부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으로 끌어안을 거리인 거잖아. "차원이 다르다"로 잘랐으면 위계로 배제했을 텐데, "결이 다르다"는 다름을 보존하는 표현이고.


같은 "다르다"인데 하나는 붕괴시키고 하나는 중첩을 유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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