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지거나 꺼지거나: 읽기가 쓰기다

뉴런의 기본 단위는 이진법이다 - 4부

by공인식

SSD에 저장된 파일을 열어도 파일은 변하지 않는다. 읽기는 읽기다. 뇌는 다르다. 기억을 꺼낼 때마다 그 기억이 다시 쓰인다. 원본이 없는 시스템이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실제 그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떠올렸던 수많은 순간들의 누적에 가깝다. 결점처럼 보이지만 — 정확성보다 적응성을 선택한 설계일 수 있다. 원본이 없어도 작동하는 시스템이 더 강한가. 아니면 원본이 없는 기억을 신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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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D에 저장된 파일을 열었다. 파일은 변하지 않는다. 읽기는 읽기다. 쓰기는 쓰기다. 둘은 다른 작업이다.

뇌는 다르다. 기억을 꺼낼 때마다 — 그 기억이 다시 쓰인다.


저장 방식: 시냅스 연결 강도의 변화

뇌는 데이터를 특정 위치에 저장하지 않는다. 시냅스 —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 — 의 강도 변화로 저장한다. 연결이 강해지면 해당 패턴이 더 쉽게 호출된다. 연결이 약해지면 접근이 어려워진다.


Salk Institute 연구에 따르면 뇌의 이론적 저장 용량은 약 1페타바이트다. 13.3년 분량의 HD 영상에 해당한다. [1] 이전 추정치보다 10배 높은 수치인데 — 시냅스 크기가 26단계로 정밀하게 조절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추정치가 올라갔다.


2025년 MIT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동안 간과됐던 성상세포(astrocyte)가 각 시냅스를 감싸는 삼자 시냅스 구조를 형성하면서 — 뉴런만으로는 설명이 안 됐던 뇌의 거대한 저장 용량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2] 저장 용량이 고정값이 아니라 확장 가능한 구조라는 것.


Wear Leveling: 시냅스의 균형 조절

SSD는 특정 셀이 과도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쓰기 횟수를 분산시킨다. Wear leveling이라고 부른다. 셀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 더 이상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에서 같은 구조가 발견됐다. 새로운 학습이 일어날 때 — 일부 시냅스는 커지고, 일부는 작아진다. [3] 시냅스가 커지기만 하면 결국 포화 상태에 도달해 새로운 정보 저장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강해지는 것과 약해지는 것의 균형이 시스템을 유지한다.


소프트웨어에서 먼저 설계된 것이 아니다. 뇌가 먼저였다.


읽기가 쓰기다

SSD와 뇌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SSD는 읽기와 쓰기가 분리되어 있다. 파일을 열어도 파일은 변하지 않는다. 원본이 보존된다.


뇌는 다르다. 기억을 호출하는 순간 — 그 기억이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재기록 가능한 상태. 새로운 맥락, 새로운 감정, 새로운 정보가 개입하면 — 기억이 그것을 포함해서 다시 저장된다. 신경과학에서 memory reconsolid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본이 없다. 매번 호출이 곧 재기록이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일수록 — 원래 경험보다 그것을 떠올렸던 수많은 순간들의 누적에 가까워진다. 어릴 때의 기억이 실제 그 순간이 아니라 — 그것을 회상했던 나중의 감각들로 채워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결점인가 설계인가

읽기가 쓰기라는 것은 — 시스템의 결점처럼 보인다.


법정 증언이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목격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 호출될 때마다 재기록됐기 때문이다. 원본이 없는 시스템에서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은 — 설계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읽으면 — 이것이 설계 의도일 수 있다.


고정된 기억보다 업데이트되는 기억이 생존에 유리했다. 과거 경험을 현재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는 능력.


SSD처럼 읽기 전용이었다면 —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훨씬 느렸을 것이다. 뇌는 정확성보다 적응성을 선택한 시스템이다.


현대 슬롯에서 이것이 역전되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기억이 필요한 상황 — 법정 증언, 계약 내용, 사실 확인 — 에서 뇌의 적응성 설계가 약점이 된다. 맥락이 바뀌면서 원래 설계의 목적이 불일치하는 것. 시스템이 나쁜 게 아니라 — 용도가 달라진 것이다.


열린 끝

원본이 없는 기억을 신뢰할 수 있는가.


아니면 — 원본이 없어도 작동하는 시스템이 더 강한가.


디지털 저장장치는 원본을 보존한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다. 뇌는 원본을 보존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뢰하기 어렵다. 그런데 살아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설계인지는 —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지에 달려있다.




참고 문헌

[1] Salk Institute. (2016). Memory capacity of brain is 10 times more than previously thought. salk.edu

[2] Kozachkov, L., et al. (2025). Astrocytes enable the brain's huge storage capacit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MIT News.

[3] Sejnowski, T., et al. The Brain's Storage Capacity can Expand. Cell and Molecular Biology, LabroRoots.

[4] 공인식. (2026). 켜지거나 꺼지거나: 뉴런. 개발자식 전환, Brunch. fishingproductfr.com/@alwayswithya/325

[5] 공인식. (2026). 감정의 반감기. Collapse, Brunch. fishingproductfr.com/@alwayswithya/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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