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바라보는 지도자의 자리
선수들 사이의 갈등은 팀 스포츠와 개인 스포츠를 가리지 않고 흔하게 나타난다. 특히 미성년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는 늘 그 갈등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직접 해결해야 하는 자리에 놓인다.
팀 스포츠에서는 주전 경쟁과 역할 배분, 사소한 비교가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개인 스포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개인의 실력과 성적이 곧 명예이자 영향력이 되는 세계에서는 선수들 사이의 서열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특히 10대 선수들의 세계는 그렇다.
어린 나이부터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국가대표급 선수들과 견줄 만한 재능과 실력을 갖춘 선수라면 또래 집단 안에서 상당한 권위를 얻게 된다. 성적이 곧 발언권이 되고, 실력이 곧 존재감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 안에서는 선수끼리 말로 상처를 주거나, 심한 경우 신체적인 가해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명백한 폭력 행위가 있다면 규정에 따라 조사와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도 선수 사이의 갈등이 당사자 부모들의 갈등으로 번지고, 학교폭력 관련 절차나 협회의 규정을 통해 잘잘못을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지도자가 중간에서 사과를 권하고 화해를 중재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선수 간의 갈등이 곧바로 공식적인 분쟁 절차로 이어지는 일도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명백한 폭력의 증거가 드러난 사건만은 아니다. 락커룸 안에서,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때로는 화장실이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 오가는 갈등의 기류가 있다.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긴장, 견제, 조롱과 적대감이다.
만약 팀의 에이스 선수가 새로 들어온 후배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라고 하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크게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둘만 있을 때 욕설을 하거나, 지나가며 어깨를 밀치는 행동이 반복된다. 행동만 놓고 보면 분명 선배의 잘못이다.
다만 두 선수의 관계를 오래 지켜보면 갈등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후배 역시 선배를 반복적으로 자극하는 행동을 한다. 친한 선수들과 선배를 험담하거나, 지도자와 선배 앞에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선배의 괴롭힘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욕설과 신체적 가해는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행동만 보는 것을 넘어, 그 행동이 어떤 감정과 관계 속에서 생겨났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선배가 후배를 경계한 근본적인 이유는 후배의 뛰어난 재능과 빠르게 높아지는 존재감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선수가 지도자들의 관심을 받고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선배는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그 선배는 오랜 시간 기다리고 견디며 팀의 에이스 자리에 올라온 선수다. 그런데 어느 날 등장한 후배가 빠른 속도로 자신을 따라오자,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 불안은 경쟁심이 되고, 경쟁심은 적대감으로 변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개인 스포츠에서도 선후배 관계의 위계는 약해지고 있다. 더 이상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존중과 복종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 선배 선수는 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선배들에게 참았는데.’
‘나는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나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버텼는데.’
자신이 견뎠던 것을 후배가 견디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통과한 질서를 다음 세대도 따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후배는 이미 다른 시대의 선수다. 그 선수는 운동을 즐기고, 자신의 실력만큼 기회를 얻고 싶어 한다. 선배의 부당한 요구를 전통이나 위계라는 이유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다. 자신이 잘하는 만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선수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지점에서 지도자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지도자 역시 선수 시절 비슷한 위계와 경쟁을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배가 느끼는 자리의 불안도 이해하고, 후배가 느끼는 부당함도 이해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정을 모두 이해하는 것과, 두 사람의 행동을 똑같이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감정의 배경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잘못된 행동의 바카라임까지 흐려져서는 안 된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개입이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겪은 일과 자신의 자녀가 느낀 감정을 중심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지도자가 한쪽 부모에게 상대 선수의 입장을 설명하면, 그 부모는 지도자가 상대편에 서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양쪽 부모에게 상대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도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그 아이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나 또한 이러한 경우에 서로가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접근할수록 갈등이 더 깊어질 뿐이다. 상처를 입은 선수와 부모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자신이 겪은 일이 부당했다는 인정과 공감,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반대로 잘못된 행동을 한 선수에게도 처음부터 모든 감정을 부정하거나 낙인을 찍는 방식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행동의 바카라임은 분명하게 묻되, 그 행동 뒤에 있던 불안과 억울함을 말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양쪽을 똑같이 달래는 것이 아니다.
피해를 입은 선수에게는 보호와 회복이 먼저 제공되어야 하고, 잘못된 행동을 한 선수에게는 바카라임과 함께 변화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지도자의 역할은 두 사람의 잘못을 기계적으로 절반씩 나누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명확히 하고, 다시는 같은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것. 동시에 갈등이 생긴 배경을 살펴 선수들이 더 나은 방식으로 감정과 경쟁을 다루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솔직히 지도자의 진짜 마음은 둘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풀고, 다시 훈련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바람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대가 변했고, 선수와 부모가 갈등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변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기준과 바카라임 역시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무거워졌다.
갈등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갈등이 폭력으로 변하지 않게 하고, 누군가가 침묵 속에서 계속 상처받지 않게 하며, 잘못된 행동을 한 선수도 그 행동을 돌아보고 달라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과 체력을 향상시키는 일만은 아니다.
경쟁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질투를 지켜보고 적절히 다루는 법,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일까지가 지도자의 바카라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