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걸까?

by알레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걸까?'


산바카라을 하는 동안 질문이 맴돌았다. 수년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안고 살았는데, 처음으로 이 질문 자체를 질문하기 시작했고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질문 자체가 명료한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에 대한 질문보다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가 쉬운 것과 같다.


나의 경우 이 질문 아래에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나다움'은 표현 자체로는 꽤 가슴이 뛰었지만 실제 삶에서는 언제나 모호함을 남겼다. '그래서 나다운 게 뭐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나다운 선택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답은 점점 요원해졌다.


반대로 '나답지 않은 것', '마음에 불편감을 일으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이 금방 나왔다. 결국 나다운 삶이란 이런 요소들을 하나씩 소거해나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또 한 가지 그동안 답을 내지 못했던 이유는, '해답'을 찾고자 하면서 정작 '정답'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여러 바카라을 읽으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자유를 이룬 대표님들의 콘텐츠를 들을 때마다 느낀 건 '우리는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수년간 머리와 마음이 따로 움직였던 셈이다. 머리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선 제한적인 존재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매번 같은 지점에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 걸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내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힌트를 얻은 건, 앞서 이야기했듯 무엇을 선택하든 괜찮다고 믿어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터운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방법이 지금 나에겐 절실하고, 바꿔 말하면 '자기 신뢰'가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라는 뜻이다.


거창한 시도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것들부터 하나둘 해보기로 했다. 오늘 산바카라을 나선 것도 마음의 이끌림을 따라 내린 선택이었다. 다만 지난번 러닝을 하러 나가기 전처럼, 중요하지 않은 고민들이 바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긴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의 단서를 챙겨둘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나에겐 벽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막상 행동해 보면 그것들이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 이걸 알아차리고 나니, 다음에 같은 벽을 만나면 고민 없이 아무거나 선택해도 문제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덕분에 다음번엔 좀 더 빠른 실행이 가능해질 것 같다.


또 한 가지. 하기로 했다가 이내 마음을 바꿔 다른 걸 선택하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유연하게 나를 대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사실 오늘 산바카라길에 경로를 몇 번이나 바꿨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는 '가족들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 정도로 정리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는 게 지금의 나에겐 더 현실적인 질문이겠다는 결론도 내렸다.


평생을 걸고 답해야 하는 질문 앞에서는 한 걸음도 떼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걸고 답하는 질문이라면, 경로를 몇 번 바꿔도, 마음이 바뀌어도 괜찮다. 오늘 산바카라길이 그랬던 것처럼.


당장 무엇으로 돈을 벌어야 할지 쉽게 답을 내지 못하겠다면, 전전긍긍하며 속을 썩이는 대신 최소한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선택을 해보기로 한다. 큰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작은 질문 하나만 들고 내일도 산바카라을 나서보려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