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될. 그런데 아무도 처음부터 될성부른 나무인지 모른다.
세간에 떠도는 표현 중에 이런 게 있다. '될놈될.' 될 놈은 결국 된다는 뜻인데, 주로 뭘 해도 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담긴 표현으로 쓰인다. 안타깝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것.
사람들은 인생이 풀리는 데는 운이 70%라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워도 내 능력 밖의 힘이 따르지 않으면 누가 봐도 될 일도 풀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머지 30%에 대해서는 내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어쩌면 그 30%의 최선을 다할 때 70%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기회가 주어져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 이 생각은 더 확연해진다. 일말의 의심이 오히려 기회를 빗겨나가게 만든다. 조금 더 갖기 위해 부리는 욕심이 기회를 기회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욕심은 눈을 가리고 생각을 편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된다. 그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거나 오히려 불리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최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몇 가지를 배웠다.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억울함도 주변 사람들에게 당위성을 잃는 순간이 온다. 위기의 순간에 처해야 자신이 진짜로 추구하는 가치가 확연해진다. 빈 수레는 정말로 요란하다. 그리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다만 붙잡고 말고는 철저히 본인 능력이다.
갈등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교훈을 얻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과거에 머물며 탓하기 바쁜 사람도 있다. 결과의 득실을 떠나 어떤 긍정적인 교훈이라도 얻은 사람이라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인생의 문제는 생각보다 산술적 인과 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기를 멈추지 말자. 나를 이해하고 상황을 여러 방향에서 살피는 것도 멈추지 말자. 진정한 의미는 수면 아래 잠들어 있을 때가 많다.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듯,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될 때가 생각보다 많다.
어떻게 해야 70%의 운이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30%의 삶을 진정성 있게 살아간다면 가능성이 더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억울함, 두려움, 무력감, 의심, 필요 이상의 욕망에게 그 30%의 자리를 내어주지 말자.
지금 나에게 '될 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될놈될'은 언제나 사후 평가니까. 누구도 애초에 될성부른 나무인지 모른다.
결국 오늘을 잘 살아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선택을 매일 반복할 뿐이다. 언젠가 진짜 뭐라도 되고 나면 누군가 말하지 않을까. "역시 될놈될이네"라고.
우리 모두가 그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