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기른 머리를 자르던 날, 나는 AI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다.
1년에 한 번, 연례행사처럼 찾아가는 곳이 있다. 헤어숍. 나와 아내에게 헤어숍은 그런 곳이다. 긴 머리를 유지하는 덕분에 굳이 자주 자를 필요가 없었다. 아이 머리를 자르러 갈 때 지저분해진 구레나룻 정도 다듬는 것 외엔 손대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샵에 다녀와서 싹둑, 잘라버렸다. 체중이 몇 그램 감량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원장님은 처음엔 짧게 잘라보자고 하셨다. 순간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샵에 가면 늘 "원장님 하시고 싶은 대로 해주세요"가 나의 일관된 대답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아내도 종종 잔소리를 했다. "이제 청학동에서 벗어날 때도 됐잖아?" 처음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던 5년 전의 기장만큼 자르길 바랐다. 집에서야 "그래, 뭐, 안 그래도 더운데 자르면 되지"라며 쉽게 답했는데, 막상 원장님이 그보다 더 짧은 기장을 제안하시니 차마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지난 5년간 유지해 온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결국 적정선으로 타협했다. 여전히 긴 머리를 유지하되, 어깨 아래로 내려오던 머리카락은 어깨라인 위까지로 짧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원장님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은근히 통하는 구석이 있는 분이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편인데, 여러 말 중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업력 34년 차이신 원장님 눈에 요즘 시대는 컷 실력이 하향 평준화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스타일링을 손쉽게 해주는 도구의 발달로 컷이 정교하지 않아도 충분히 커버가 되고,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가 디자이너들조차 자연스럽게 스타일링 쪽에 더 비중을 두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이 머릿속에 남은 건,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필력 34년이 아닌 겨우 5년이지만, AI가 글쓰기 영역에 깊게 개입한 지금 이 시대에 매일 쥐어짜듯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이 있다. AI를 활용한 쉬운 글쓰기가 사고의 깊이를 조금씩 메워버린다는 것. 주제와 방향을 제시하고 AI에게 글을 맡겨본 적이 몇 번 있었다. 확실히 잘 쓰는 걸 보고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반복할수록 내 글을 쓰기 위한 생각 근육이 무뎌진다는 걸 느꼈다.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AI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취합해 평균을 재생산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글쓰기의 가장 큰 효과 중 하나는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이 깊어진다는 것인데, AI는 그 부분을 대체하는 편리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걸 잃어버리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나다움이 결여된 잘 양산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 함몰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AI를 전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데 있어서는 비중 조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일임하는 건 지양하되, 나머지 20%만 위임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도구는 해가 갈수록 예리해지고 첨단화된다. 편리를 제공하는 건 맞다. 그러나 도구를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편리에 젖어버릴수록 자칫 사람은 오히려 무뎌진다.
원장님의 가위는 34년간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도구가 발달해도 손의 감각을 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AI가 대신 써주는 글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그 글 안에 내가 없다면 결국 아무도 그 글을 통해 나를 만날 수 없다.
편리를 취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불편의 비율을 의도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오늘 나는 5년간 기른 머리를 조금 잘랐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AI 글쓰기와 나의 관계도 그쯤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