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자리에도 삶은 남아 있었다.

화포에 도착했을 때 바다는 멀리 물러나 있었다.

byPhotographer aki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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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진 자리에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로 가느다란 물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바람에는 바다 특유의 짠 내음이 묻어 있었고, 해변 가까이에는 작은 조개껍데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멀리 바닷새 몇 마리가 갯벌 위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랐다. 새들이 떠난 자리에는 작은 발자국이 남았다.

물이 가득했다면 보이지 않았을 풍경이었다.

바다가 물러난 자리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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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가장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래전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작은 물건 하나가 떠올랐다.

특별히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이제는 쓸 일도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꺼냈다가 다시 제자리에 넣곤 했다.

그 물건이 필요해서는 아니었다.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것을 사용하던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함께했던 사람의 목소리와 그날의 날씨, 당시에는 특별할 것 없었던 일상의 장면들까지.

오래된 물건 하나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인지, 그때의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인지 나조차 분명하게 알 수 없었지만 쉽게 버릴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쩌면 우리는 물건보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을 간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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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가까이로 시선을 옮겼다.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나 있었고, 그중 하나에서 칠게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게발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더니 옆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작은 움직임이 이어졌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저 검은 땅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갯벌은 제법 분주했다.

바닷물이 물러난 시간에도 이곳의 하루는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먹이를 찾고, 누군가는 몸을 숨겼다. 작은 생명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저마다의 흔적이 남았다.

바다가 비워놓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또 다른 생명들의 터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람의 삶에도 이와 비슷한 순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함께 식사하던 식탁의 빈 의자,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전화, 무심코 지나던 길에서 떠오르는 익숙한 얼굴.

그런 기억은 특별한 날보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에서 불쑥 찾아온다.

아침에 차를 마시다가, 장을 보러 갔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가.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런 순간에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익숙한 풍경마저 낯설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리에도 조금씩 새로운 장면이 쌓인다.

혼자 먹는 저녁이 익숙해지고, 한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묻거나, 전에는 관심 없이 지나쳤던 것들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떠난 사람의 흔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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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의 갯벌에는 여러 갈래의 물길이 나 있었다.

깊게 파인 곳도 있었고, 얕은 물이 고여 하늘을 비추는 곳도 있었다. 그 사이를 바닷새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새는 몇 걸음 옮기다가 부리로 갯벌을 살폈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동네가 달라지고, 자주 가던 가게가 어느 날 문을 닫는다. 늘 함께하던 사람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 변화들은 대개 큰 소리 없이 찾아온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변화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그럼에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조금 더 깊이 느끼게 되는 일.

오래된 사진을 다시 볼 때도 그렇다.

젊었던 얼굴이나 낯익은 장소보다 그날 함께 보냈던 평범한 시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던 순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때는 그저 일상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만날 수 없는 장면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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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가까운 곳에 앉아 갯벌을 구경했다.

바람에 옷깃이 흔들리고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바닷물이 남긴 얕은 웅덩이에는 하늘이 담겨 있었다.

작은 구름이 지나가자 물 위에도 구름의 그림자가 스쳤다.

같은 풍경인데 보는 자리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이었다.

기억도 그런 것 같다.

오래전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남는 장면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아쉬웠던 일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하루가 유난히 그리워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오래된 사진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사진 속 풍경보다 그날의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더 오래 마음에 남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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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를 떠날 무렵에도 바다는 멀리 있었다.

갯벌 위에는 여전히 작은 생명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물길에는 오후의 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바닷물이 빠져나간 넓은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돌아갈 때는 달랐다.

칠게가 지나가던 작은 구멍과 새들이 남긴 발자국, 물길에 비친 하늘이 더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바다가 물러난 자리에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서랍을 열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물건이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손에 쥐고 잠시 살펴보았다.

이제는 그것을 바라보며 예전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 물건과 함께했던 평범한 날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와 나누었던 이야기, 별일 없이 지나갔던 오후, 그때는 오래도록 계속될 줄 알았던 일상.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물건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언젠가는 정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두어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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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저녁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익숙한 방 안에는 여전히 내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부엌에서는 하루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화포에서 보았던 갯벌이 떠올랐다.

바닷물이 물러난 자리에서도 작은 생명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사라지고, 누군가 떠나고, 익숙했던 시간들이 지나간 뒤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날들 속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기쁨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랍을 닫고 부엌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비어 있는 자리에도 삶은 남아 있었다.

화포에서 돌아온 그날, 나는 그 평범한 사실을 조금 더 깊이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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