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신하는 시행착오, 인간에게 남는 숙련
AI가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된다. 코딩을 더 잘하고, 인간의 개입은 줄어들고, 더 긴 작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 과거에는 시스템의 일부 코드를 짜달라고 부탁하던 AI에게 이제는 문제를 통째로 맡긴다. 코드를 읽고, 수정하고, 테스트하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한다. 성급한 혹자들은 드디어 AGI가 도래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변화가 너무 빨라서 "AI를 어디까지 써도 되는가"라는 질문조차 이제는 의미가 없을 정도다.
나는 이런 시대에 아주 오래된, 케케묵은 질문 하나를 붙들고 있었다.
"판단력을 키우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손으로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예전의 나는 이 질문에 꽤 자신 있게 답했다. 그렇다고. 초보 개발자, 특히 학부생이라면 직접 코드를 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붙잡고 몇 시간씩 씨름도 해보고, 어디서 잘못됐는지 한 줄씩 따라가보기도 해야 한다. 이상한 버그 하나 때문에 하루를 날려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실력이 는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런 취지의 글도 썼다.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코드를 많이 직접 짜봐야 하고, 도구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범적인 대답과 별개로, 한편으로는 '그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미 AI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비단 IT 업계뿐 아니라 인사, 법무, 총무, 마케팅 등 산업계 전반에서 문서를 쓰고, 자료를 찾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돕는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해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 AI와 함께 일하게 될 사람에게, 배우는 동안만큼은 AI를 끄고 모든 것을 혼자 해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여덟 살인 아들은 아이패드를 끼고 산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숙제나 공부에 디지털 기기를 쓰는 일이 자연스럽다. 물론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틈만 나면 아빠 몰래 게임도 한다. 스크린타임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이 걱정돼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틈날 때마다 바카라도 좀 읽으라고 잔소리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가끔은 나도 답답하다. 내가 그 나이 때 가장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 바카라이었다면, 아이 세대에게는 아이패드가 이미 삶의 일부다.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치워버리고 내가 자라던 환경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무 제한 없이 내버려두는 것도 답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AI도 비슷하다. 다음 세대에게 AI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 없이 자라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살았던 환경에서는 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들이 살아갈 환경에서는 이미 전제가 달라졌다.
이전 글에서 나는 도끼와 전기톱 비유를 들었다. 나무를 베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끼나 톱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전기톱을 쓰면 된다. 전기톱이 있는데 굳이 도끼와 톱을 다시 꺼낼 필요는 없다는 주장에,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판단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나무가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지, 어디에 절개를 넣어야 할지, 톱날이 끼거나 튕겨 나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전기톱이 대신 판단해 주지 않는다고.
그런데 도끼가 이미 골동품이 되어버렸고, 전기톱이 일반화된 세상이라면 어떨까? 그럼에도 초보자는 도끼질부터 배워야 할까?
메타의 새로운 인터뷰 방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AI가 일상이 된 시대에 맞춰, 회사는 코딩 면접에서 AI 사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1]. 다만 AI에게 답을 뽑아내는 능력을 보는 시험은 아니다. 여러 파일로 이루어진 낯선 코드베이스를 주고, AI의 도움을 받아 버그를 찾고 기능을 구현하고 성능까지 개선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이해하고 검증하며 필요할 때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였다. 응시 후기에서는 AI가 덜 직접적인 답을 하거나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후보자는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없다면 AI로 풀기도 어렵다"고도 했다 [2].
이 면접은 최신 세대에게 AI를 다루는 능력과 함께, 내가 예전 방식으로 오랫동안 코드를 짜며 익힌 판단력까지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전기톱을 능숙하게 쓰되, 나무가 어느 쪽으로 쓰러질지까지 스스로 판단하라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판단력은 어디서 생길까? 사실 내가 궁금한 것은 도끼질 그 자체가 아니다. 도끼질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다. 도끼질을 배우는 목적이 도끼를 잘 쓰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나무를 읽는 법'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20년 넘게 직접 코드를 짰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코드를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수없이 버그를 만들었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버그를 잡는 데 썼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걸리던 일이 나중에는 몇 분 만에 보이기도 했다. 어떤 코드가 위험한지, 어디부터 의심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이상한지 조금씩 감이 생겼다.
그렇다고 그 20년의 일을 지금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잊어버렸다. 예전에 만들었던 코드도, 밤새 잡았던 버그도, 그때 읽었던 바카라과 논문의 세부 내용도 상당수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언가는 남아 있다. AI가 내놓은 코드를 보다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고, 설계를 보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길 지점을 먼저 의심한다.
20년의 경험이 기억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압축된 스킬셋으로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다음 세대도 이 스킬셋을 얻으려면 나처럼 20년 동안 직접 코드를 짜고, 망치고, 고쳐야 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AI와 일할수록 이 답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우리가 선배에게 배우는 과정부터가 사실 경험의 압축 전송이기 때문이다. 시니어가 코드 리뷰에서 "이렇게 짜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마디 하면, 주니어는 선배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실패를 모두 반복하지 않고도 그 결과를 얻는다. 바카라과 강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수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지식을 몇백 페이지나 몇 시간의 강의로 압축해서 전달한다. 그렇다면 AI는 이 압축의 비율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여버리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특정 업무의 절차와 노하우를 'Skill'이라는 형태로 묶어 공유하는 생태계까지 생겼다. 코드 리뷰, 디버깅, 설계, 테스트처럼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절차를 파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의 AI 에이전트가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물론 Skill 파일 하나에 20년의 경험을 그대로 담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경험 가운데 말과 절차로 꺼내놓을 수 있는 일부가 이전보다 훨씬 쉽게 복제되고 전달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경험의 축적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고 조합해 자기 문제에 적용하느냐도 점점 중요해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경험이 적은 주니어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새로운 도구를 거리낌 없이 익히는 사람이라면,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격차를 줄일 수도 있다.
"AI를 써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이미 끝났다. 우리는 AI를 쓸 것이다. 나부터 쓰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다른 것이다. 우리가 20년 동안 쌓아온 경험 중 무엇은 AI를 통해 압축해서 다음 세대에게 넘길 수 있고, 무엇은 여전히 직접 겪어봐야 하는가.
나는 아직 그 경계를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진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살아온 20년을 그대로 반복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들이 사용할 도구가 다르고, 문제를 푸는 방식이 다르고, 일을 배우는 속도도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몇 년 걸려 얻었던 지식을 몇 달 만에 얻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는 당연히 알고 있던 어떤 감각을 끝내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과거의 방식을 보존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내가 배운 방식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과, 다음 세대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우리는 AI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돌아갈 필요도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거의 학습법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AI가 있는 세상에서도 사람이 어떻게 경험을 쌓고 숙련될 것인지 다시 알아내는 일이다.
- 예나빠
* 표지 이미지 출처 = unsplash
* 참고문헌
[1] Koebler, J. (2025, July 29). Meta is going to let job candidates use AI during coding tests. WIRED. WIRED article
[2] King, E. (2026, February 16). Meta's AI-enabled coding interview: How to prepare. Hello Interview. Hello Interview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