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신 생각은 뭔데요?

팀원과 팀장에게 주도성은 같은 말일까.

by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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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안이 뭔데?"


한국 회사에서 팀원으로 일할 때였다. 팀장이 지시한 방법대로 일을 처리하다가 문제를 발견했다. 나는 즉시 이를 정리해 팀장에게 보고했다. 상황을 설명하면 팀장이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대안이 뭐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걸 당신이 정해야지. 내가 정할 거면 팀장이 왜 필요해?'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오히려 그가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답을 모르기 때문에 바카라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온 뒤에는 매니저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What's your recommendation?"

"What do you think we should do?"


물론 그사이 내 연차가 쌓였으니 매니저가 내 판단을 더 기대한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회사에서는 직급과 상관없이 서로의 생각을 묻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문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그중 무엇을 추천하는지까지 질문이 따라왔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급하게 답을 찾느라 바빴다. "어... 그건 깊게 생각해 본 적이..."라고 몇 번 대답하고 나니 곧 알게 되었다. 여기서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 뒤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보고나 발표에서 문제를 언급할 때는 최소한 두세 가지 대안을 함께 생각해 두었다. 가능하면 각 안의 장단점과 내가 추천하는 안, 그리고 그 이유까지 준비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대안일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발견한 곳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일할 때도 처음부터 수동적이지는 않았다.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그런 제안이 실제 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조직의 벽에 번번이 막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을 배우게 되었다. 어디까지가 내가 생각할 영역이고, 어디부터는 결정권자의 몫인지 말이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 역시 새로운 어젠다를 만드는 것보다는,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완수하느냐에 더 많이 달려 있었다.


한국 조직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항상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괜히 아이디어를 꺼냈다가 "좋네. 그럼 네가 해봐"라는 말과 함께 일이 하나 더 늘어나기도 했다. 내 제안 때문에 다른 팀원들의 일까지 늘어나면,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니라 괜한 일을 벌인 사람이 되기도 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운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굳이 먼저 꺼내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을.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조직문화의 차이'라고 단선적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 제안이 반영되지 못한 것이 조직의 정치, 위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부가 그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조직의 현실, 비용, 우선순위, 타 팀과의 관계, 가용 자원까지 충분히 보고 제안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서도 "네 생각은 뭐냐?"라고 묻는 것은 단순히 '의견을 많이 내라'의 의미가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디어를 꺼내면 바로 후속질문이 쏟아졌다. "왜?", "비용은?", "다른 대안은?", "누가 해야 하지?", "지금 이게 우선순위가 맞나?", "그래서 네 추천안은?". 즉 발언권을 주는 대신 생각의 완성도도 요구하는 것이다.


nay님께서 최근에 올리신 <업무의 주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글의 요지는 간단했다. 누군가 정해준 어젠다에 답을 잘하는 것보다, 조직의 현실과 자원을 이해한 상태에서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진짜 주도성이라는 이야기였다.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정리한다.


"업무의 주도성이란 내가 맡은 일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엔 조금 의외였다. '한국 회사에서도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한국 회사 = 시키는 문화, 미국 회사 = 주도적인 문화'라고 이분법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정리하다 보니, 그 생각이 너무 안일하고 단순했다고 느껴졌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내가 있던 조직에서도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매번 조직의 벽에 가로막힌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인정받고 중요한 일을 맡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했던 '주도성'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었다. 미국 회사의 조직문화를 접한 초반엔, 이들이 일하는 방식, 즉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는 것 자체'가 주도성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주도적인 사람이 손해를 보고, 미국에서는 주도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막연하게 결론 내렸다.


하지만 주도성은 단순히 시키지 않은 일을 먼저 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문제를 발견했다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안을 생각하고, 내가 볼 수 있는 범위에서 그 선택의 장단점과 제약까지 고민하는 것도 그 일부였다. 그리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생각해야 할 범위는 더 넓어진다.


물론 팀원 한 사람이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리더에게만 보이는 정보가 있고, 다른 조직과의 이해관계나 전체 우선순위, 인력과 자원의 배분까지 팀원이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어쩌면 '주도성'의 의미도 직급과 역할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지 모른다.


가령 팀원 단계의 주도성은 문제를 발견했을 때 대안을 함께 생각하고,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제약과 장단점까지 검토해 의견을 내는 것일 수 있다. 반면 팀장은 여러 문제와 제안을 조직 전체의 우선순위와 자원, 이해관계 속에서 검토하고 무엇을 실제 어젠다로 삼을지 판단해야 한다.


nay님이 최근에 팀장이 되신 것도 이 글을 다시 보게 했다. 어쩌면 이 글은 팀원들에게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하라"라고 요구하는 글이라기보다, 새로운 역할을 맡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해준 어젠다에 답을 잘하는 사람에서, 이제는 우리 팀이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뀐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며 배운 것도 이런 차이였다. 처음에는 문제를 발견해 보고하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대안을 함께 생각해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대안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안이 뭔데?"


오래전 내게 되물었던 팀장은 정말 무능했을까? 정말 몰라서 나에게 떠넘겼던 것일 수도, 아니면 그 문제를 들고 간 나에게, 내가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대안을 찾아보길 요구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 지금도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만일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단순히 '그걸 왜 나에게 물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예나빠



표지 이미지 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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