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를 두 번 죽이는 말, 핏(Fit)

나는 청바지가 아니라고.

by예나빠


몇 년 전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의 한 회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최초 그 회사의 HR 직원이 링크드인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해당 포지션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무려 FAANG이기에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해봤다. 두 차례 인터뷰가 끝나고 직감적으로 '안 됐군'이라는 감이 왔다. 해당 부서의 일과 내 이력과 접점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였는지, 인터뷰 내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No라는 대답은 확실히 빨리 해줬다. 바로 당일 HR 직원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우리에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이 자리가 너에게 적합하지 않지만, 또 다른 새로운 자리가 나올 때를 위해 너를 기억하고 있겠다"


부드럽게 거절을 알리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메일에서 한 가지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Its not a fit for this role'


급하게 쓴 건지 뭔가 문법적으로 틀린 영어였다. 그래서 뭐 알아서 해석하면 한 마디로 '너는 아니야'라는 말. 그런데 '핏(fit)'이라는 단어가 좀 오묘했다. 같은 의미라도 '네가 부족해서 거절한다'가 아닌 '네가 이 역할과 맞지 않다'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절을 당하는 입장에서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후 내가 인터뷰어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면 나도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가령 지원자가 내가 판단한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면 "He is not a good fit for this position"라는 식으로 매니저에게 평가의견을 전달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로 상세히 기술했다. 내 의견이 그대로 지원자에게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1차 평가자로서 지원자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를 담으려 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신을 거절하지만, 그 이유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서로의 필요가 다를 뿐이다라는 의미를 핏(fit)이라는 이 짧은 단어로 함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조금은 무바카라임한 표현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소위 '핏이 안 맞아'라는 말을 해석해 보자면,


너의 역량은 차고 넘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와는 달라

네 배경은 우리랑 맞지만 이 포지션을 위한 너의 스킬 셋은 부족해


라는 두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 첫 번째의 경우 말 그대로 서로의 필요가 다를 뿐이라 별다른 피드백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라면, 단순히 핏이라는 말로 끝내기보다 인터뷰에서 발견한 문제점들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지원자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싶다. 지원자에게는 상처받지 않을 누군가의 배려만큼이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뷰어가 보는 관점들을 통해 자신의 현 상태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게 된다면, 다음 인터뷰 기회에서 더 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핏, 즉 적합성이라는 말은 '스킬 셋의 보유 유무'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성격, 인격, 성향, 관심 사항, 인간관계, 지향성, 가치관 등 계량할 수 없는 사람의 여러 단면들 말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원자가 회사의 조직 문화와 잘 융합할지도 상당히 중요히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자가 우리 조직에서 팀원과 잘 섞일지, 커뮤니케이션을 잘할지, 시너지를 내고 팀에 잘 기여할 수 있을지까지 미루어 짐작해 '적합하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회사(가령 페이스북, 즉 메타)는 인터뷰에서 소위 '행동 면접(Behavioural Interview)' 세션을 따로 갖는다. 상사 또는 동료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나요? 업무 수행 중 여러 장애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했나요? 압박감이 있는 프로젝트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나요? 등 회사에서 발생할만한 여러 곤란한 상황을 질문하고, 그 대답을 통해 지원자의 성향을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일종의 압박 면접인 셈.

너네가 사람을 뽑고 있잖아? 그 이유를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출처=인터넷밈


하지만 행동 면접으로 사람을 걸러내는 것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 한국에 면접 학원이 있듯, 여기도 STAR (Situation, Task, Action, and Result)와 같은 행동면접 돌파 요령 등이 족보처럼 구직자들에게 회자된다. 예상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자가 면접에서 한 대답대로 회사에서 행동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행동 면접 무용론도 등장했고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이를 폐지했다. 차라리 이들은 직원의 레퍼런스를 더 선호한다. 이전에 함께 일해 본 사람의 의견에 더 신뢰를 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핏'이라는 말은 채용 측에서 지원자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기엔 뭔가 이상한 표현이다. 애초에 '적합하다'는 상호성(Mutuality)을 내포하는 말이다. A fits B라고 하면 A와 B가 '서로' 잘 어울리고 맞는 것이지, 어느 한쪽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 하체와 청바지가 서로 주인을 잘 찾을 때 우리는 '핏이 좋다'라고 하듯 말이다. 그 말대로라면, 지원자는 아직 회사가 나와 잘 맞는지 아닌지 파악하지 못했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론 내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회사가 지원자에게 탈락 이유로 '우리와 핏이 안 맞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이 '핏'이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탈락자를 배려하는 듯 하지만, 어쩌면 다소 오만한 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지원자도 이 회사와 나의 궁합을 적극적으로 살펴야 한다. 물론 회사의 조직 문화나, 정바카라, 업무 지원 등에 대해서는 실제로 다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면접관들에게 역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터뷰 때 질문만 하지 않는다. 지원자들이 회사에 대해 '어떤 궁금한 점이 있는지도 궁금해한다'. 따라서 이 시간을 이 회사가 미래 내 경력의 한 페이지를 작성해 줄 가치가 있는지 가늠하는데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면접은 회사와 지원자가 서로 간을 보는 일종의 상호 탐색과정이다.


그리고, '우리와 잘 맞지 않을 뿐'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정말 회사가 지원자를 인재라고 생각했다면 우리와 맞을지 안 맞을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지원자가 채용 포지션에서 필요한 스킬 셋과 고매한 인품을 보여줬다면 단지 이 사람의 배경이나 해온 일이 우리와 다르다고 탈락시키지 않는다. 100보 양보해서 정말 전공 일치도가 다른 이유라면 사내에 다른 부서를 찾아서까지 지원자를 소개한다.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앞에서 말한 '핏이 안 맞다'라는 말의 두 가지 해석에서:


너의 역량은 차고 넘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와는 달라

네 배경은 우리랑 맞지만 이 포지션을 위한 너의 스킬 셋은 부족해


첫 번째 경우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작 사유는 두 번째이면서 첫 번째로 포장해 지원자에게 고지할 뿐이다. 그래서 이 '핏'이라는 말은 지원자를 기만하는 셈이다.



사실 회사가 지원자에게 그대로 탈락사유를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하위 고과를 준 직원과의 고과면담을 회피하는 부서장의 마음이라 할까. 안 좋은 평가를 주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 상대는 누구나 그대로 수긍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되묻고, 반례를 들며, 반발한다. 특히 스킬 셋 부족 등 객관적 사실이 아닌, 행동 면접 결과와 같은 주관적 평가에 따른 이유라면 지원자를 더욱 광분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이 역할을 맡기에 인격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기적인 면이 다분하군요. 팀워크를 해칠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지원자에게 고지했다가 자칫 소송의 빌미까지 제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불미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회사는 지원자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친절함,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것을 기꺼이 포기한다. 하이어링 커미티에서 논의된 내밀한 속사정까지 지원자에게 알려줄 필요도, 아니 알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그럴듯하게 '안타깝습니다. 이 자리가 당신과 맞지 않았군요'라며 친절함을 가장한다.



이 핏(fit)이라는 표현에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우리와 맞지 않을 뿐'이라는 말로 구직자를 배려하는 척하지만 정작 실상은 '이유는 알아서 해석하라'라는 극도의 불친절한 표현이다. 그래서 간혹 인터뷰 결과 피드백을 잘 주는 회사가 있다면 정말 좋은 회사라 보면 된다. 그 회사는 임직원의 커리어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확률이 높다. 글을 쓰고 보니 나도 앞으로는 핏(fit)이라는 말을 남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우리와 핏이 안 맞는군요'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내 무언가가 이 회사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심기일전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이후 회사가 당신을 원한다 해도 만일 회사가 당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제안은 고맙지만, 귀사는 나와 핏이 안 맞는 것 같군요'라고 당당히 말해주면 된다.


- 예나빠



표지 이미지 출처 = 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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