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커피를 생각하고 설계하는 학교로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를 시작했을 때 그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새로운 디자인 스타일을 가르치는 학교만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우하우스를 기하학적인 형태와 간결한 건축, 현대적인 가구 디자인으로 기억하기 쉽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혁신은 당시 아카데미 안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던 순수미술과 공예, 예술가와 장인의 세계를 다시 연결하려 했다는 데 있었다.
바우하우스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물건을 만드는 사람, 미적인 형태를 고민하는 사람과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의심했다. 예술과 제작, 생각과 기술을 다시 하나의 작업 안에서 만나게 하고, 새로운 산업슬롯에 필요한 창작자는 이 둘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우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특정한 의자나 건축양식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있었다.
나는 커피학을 가르치는 학교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우하우스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커피교육은 직무와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바리스타는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로스터는 생두를 볶는 기술을 익히며, 센서리 교육에서는 향과 맛을 구별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 모든 영역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커피를 깊이 공부할수록 한 가지 사실이 점점 분명해진다.
커피는 어느 하나의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한 알의 생두에는 농업과 식물학, 유전과 환경이 들어 있고, 발효와 가공에는 미생물과 식품과학이 작동한다. 로스팅에는 열과 물질의 변화가 있으며, 추출에는 물과 용해, 입자와 온도, 시간과 압력의 문제가 들어 있다. 사람이 그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는 미각과 후각뿐 아니라 기억과 기대, 감각생리와 심리가 작동하고, 커피가 카페라는 공간에 놓이면 건축과 디자인, 음악과 서비스, 브랜드의 문제가 더해진다. 다시 그것이 상품으로 생산국과 소비국을 이동하기 시작하면 경제와 무역, 노동과 윤리, 기후와 지속가능성까지 연결된다.
그렇다면 커피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 역시 커피를 만드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잔의 커피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 전체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바우하우스는 1923년 ‘Art and Technology – A New Unity’, 즉 ‘예술과 기술, 새로운 통합’을 중요한 방향으로 제시했다. 산업과 기계생산을 새로운 시대의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예술을 기술에 종속시키지 않았고, 기술 역시 예술과 대립하는 영역으로 보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영역을 연결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형태를 만들어내려 했다.
오늘날의 커피교육에도 이와 같은 통합이 필요하다.
Coffee, Science and Art – A New Unity.
커피와 과학, 예술의 새로운 통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커피는 과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정교한 로스팅 그래프를 얻고 추출농도와 수율을 계산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좋은 커피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마지막에는 인간의 감각이 그 결과를 다시 경험하고 판단해야 한다.
반대로 오랜 경험과 감각만으로 커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태도 역시 한계를 가진다. 왜 같은 생두가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반응하는지, 물의 조성이 추출과 향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로스팅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가 왜 특정한 감각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려면 측정과 실험, 과학적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로스터는 데이터를 읽으면서도 맛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생두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면서도 그 재료를 어떤 향미와 질감으로 표현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바리스타 역시 추출이론과 감각, 서비스와 공간경험을 서로 분리된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객 경험 안에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감각, 기술과 예술은 서로 경쟁하는 영역이 아니라 한 잔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서로를 보완하는 지식이다.
커피학은 바로 그 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이어야 한다.
바우하우스를 커피교육과 연결할 때 특히 흥미로운 것은 건축을 바라보았던 방식이다. 정규 건축과정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바우하우스 역사에서 비교적 후기에 해당하지만, 그로피우스는 초기부터 건축을 여러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총체적인 결과로 바라보았다.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면만 그릴 줄 알아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재료와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가구와 금속, 직물과 색채, 타이포그래피와 공간의 관계를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 하나의 건축물에는 서로 다른 분야의 판단이 동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커피도 정확히 그런 대상이다.
좋은 커피를 이해하려면 커피나무에서 시작해야 하고, 품종과 유전, 토양과 기후, 수확과 가공을 공부해야 한다. 발효를 이해하려면 미생물과 식품과학의 지식이 필요하고, 로스팅에서는 열과 물질의 변화를 살펴야 하며, 추출에서는 물과 입자, 용해와 농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한 잔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사람이 왜 특정한 향을 좋아하고 다른 맛을 불쾌하게 느끼는지 이해하려면 심리와 감각의 문제가 필요하고, 향미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커피가 인간의 역사와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이해하려면 역사와 인문학이 필요하며, 카페를 만든다면 건축과 디자인을 알아야 하고,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미학과 경영,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까지 따라가면 가격과 무역, 노동과 윤리,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의 문제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커피학교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여러 커피기술을 한데 모아놓은 직무교육의 집합이 아니라, 커피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통섭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통섭적인 커피교육은 농학과 화학, 철학과 디자인 과목을 많이 개설해 시간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수업이 각자의 언어와 교재로 따로 진행되고 학생 역시 시험이 끝나면 그 지식을 서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과목 수는 많아져도 교육의 구조는 여전히 분절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여러 지식이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실제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에티오피아 커피를 학기 동안 연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두 수업에서는 품종과 재배지역, 고도와 기후, 수확과 가공방식을 조사하고, 로스팅 수업에서는 그러한 조건이 생두의 밀도와 수분, 열반응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살펴본다. 센서리에서는 로스팅 결과가 향과 산미, 단맛과 질감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 추출에서는 그 커피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과 분쇄도, 온도와 시간의 관계를 실험한다.
여기에 그 지역의 커피 역사와 생산자의 생활, 커피산업의 경제적 구조를 공부하고, 마지막에는 이 커피를 소비자에게 어떤 언어로 소개할 것인지, 어떤 잔과 서비스 방식으로 제공하며 어떤 공간에서 경험하게 할 것인지까지 연결할 수 있다.
그 순간 하나의 커피는 여러 과목에서 반복해서 사용하는 교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학문을 연결하는 중심이 된다.
바우하우스에서 여러 예술과 기술이 하나의 총체적인 작업을 향해 모였다면, 커피학교에서는 ‘The Cup’, 즉 한 잔의 커피가 그 중심에 놓일 수 있다.
한 잔을 중심으로 자연과 과학, 기술과 감각, 역사와 철학, 예술과 디자인, 산업과 경제가 만나는 것, 나는 그것을 커피학의 통섭이라고 생각한다.
바우하우스 교육에서 중요한 과정 가운데 하나가 예비과정인 Vorkurs였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완성된 전문작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지 않고, 색과 형태, 재료와 질감 같은 기본적인 요소를 직접 다루면서 자신이 앞으로 사용할 세계의 원리를 경험했다.
커피학교도 이런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
학생에게 처음부터 유명한 에스프레소 레시피를 외우게 하거나 특정한 로스팅 프로파일을 정답처럼 따라 하게 하기보다, 먼저 커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생두와 물, 열과 시간, 입자와 향, 온도와 질감을 하나씩 관찰하고, 같은 생두를 서로 다른 조건에서 볶아 그 차이를 비교하며, 같은 원두를 여러 종류의 물과 분쇄도, 온도로 추출해 결과를 맛보게 할 수 있다. 산미와 단맛을 단어로 먼저 암기하게 하기보다 서로 다른 커피를 비교하면서 실제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확인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나는 이것을 ‘Coffee Vorkurs’, 즉 커피 예비과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과정의 목표는 초보자를 빠르게 숙련자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커피를 바라보는 눈을 만드는 데 있으며, 정답을 외우기 전에 무엇을 관찰해야 하고 어떤 차이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는 데 있다.
좋은 교육은 답을 가장 빨리 알려주는 교육이 아니라,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먼저 가르치는 교육이다.
기본적인 레시피와 기준은 커피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설계하게 하면 학생은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결과를 판단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한 추출비율과 분쇄, 기본적인 로스팅 진행과 커핑 방식 같은 공통의 출발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이 그 출발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에스프레소에서 특정한 투입량과 추출량을 배웠다면 다음에는 왜 그 비율을 사용하는지 이해해야 하고, 투입량과 분쇄도, 추출시간과 온도를 변화시켰을 때 농도와 향미가 어떤 방식으로 달라지는지 직접 실험해야 한다.
로스팅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진행과 안전한 범위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품종과 밀도, 수분과 가공방식이 다른 생두를 언제까지나 하나의 프로파일로 볶을 수는 없다. 재료가 달라졌다면 열을 사용하는 방식과 시간의 흐름 역시 다시 설계되어야 하고, 학생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로스팅교육은 프로파일을 정확히 복사하는 사람을 만드는 데서 끝날 수 없고, 주어진 생두의 상태를 읽어 목표를 세운 뒤 그에 맞는 방법을 스스로 설계하고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학교가 학생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정답의 목록보다 정답에 접근하는 사고방식이다.
커피학교는 레시피를 잘 따라 하는 사람만 만드는 곳이 아니라, 왜 이런 레시피가 필요한지 이해하고 상황이 달라졌을 때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바우하우스 교육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공방이었다. 학생은 강의실에서 이론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재료를 만지고, 만들고, 실패하며 자신의 생각을 물질로 바꾸었다. 생각과 제작이 서로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커피학교 역시 강의실과 실습실을 이렇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두학은 Green Coffee Lab이 될 수 있고, 로스팅은 Roasting Lab, 추출은 Brewing Lab, 감각교육은 Sensory Lab으로 운영할 수 있다. 커피의 역사와 철학, 슬롯와 문화를 탐구하는 Coffee Culture Lab과 커피를 메뉴와 공간, 브랜드와 시각언어로 표현하는 Coffee Design Lab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름 끝에 Lab을 붙인다고 수업이 실험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학생이 배운 이론을 실제 현상에서 확인하고, 실습에서 발견한 문제를 다시 이론으로 돌아가 설명하도록 만드는 교육구조에 있다. 로스팅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를 배웠다면 실제 배치에서 색과 향, 물리적 변화를 관찰해야 하고, 물의 화학을 공부했다면 서로 다른 물로 같은 커피를 추출해 감각적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감각과 심리를 공부한다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원산지나 가격, 브랜드 정보가 맛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게 할 수도 있다.
이론은 실습을 설명하고, 실습에서 발생한 예상 밖의 결과는 다시 이론을 의심하게 해야 한다.
좋은 커피교육은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한 뒤 시험을 보는 일직선의 구조보다 관찰하고 질문하고, 실험하고 기록하며, 결과를 이해한 뒤 다시 조건을 수정하는 순환에 가까워야 한다.
바우하우스 초기에는 예술적인 형태교육을 담당하는 마이스터와 실제 제작기술을 가진 장인이 함께 학생을 교육하는 구조가 존재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전문성이 하나의 작업을 중심으로 만났던 것이다.
이 방식은 현대의 커피학교에서도 중요한 힌트가 된다.
커피는 한 명의 교수가 모든 영역을 완전하게 다루기 어려울 만큼 넓고 복합적이다. 농학자와 실제 생산자가 품종과 재배, 농장의 현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식품과학자와 로스터가 발효와 열의 문제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감각과학자와 커퍼가 인간의 지각과 실제 커핑을 연결하고, 건축가와 카페 운영자가 공간과 운영의 관계를 함께 다룰 수도 있다.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설명하고 현장의 브랜드 오너가 자신의 실패와 선택을 이야기한다면 학생은 이론과 실제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볼 수 있다.
현장의 경험은 학문적 지식을 만나야 하고, 학문적 지식은 실제 세계의 문제를 만나야 한다.
학교는 한 방향에서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이 하나의 커피를 중심으로 만나면서 학생에게 여러 각도의 시선을 제공하는 장소여야 한다.
이런 철학을 가진 커피학교라면 최종 평가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졸업을 앞둔 학생에게 하나의 생두를 제시하고, 그 커피가 한 잔의 경험으로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설계하게 할 수 있다. 학생은 생산국과 농장, 품종과 재배환경, 가공방법을 조사하고 생두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한 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방향을 정해 로스팅을 설계한다.
커핑을 통해 결과를 평가하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한 뒤에는 적합한 추출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어떤 잔에 담아야 하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언어로 설명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제공할지, 어떤 서비스와 공간 안에서 경험하게 할지까지 설계할 수 있다.
생산자의 이야기와 가격, 유통과 지속가능성, 브랜드와 소비자 경험까지 연결한다면 이 과제는 더 이상 단순한 로스팅이나 추출시험이 아니다.
한 잔을 중심으로 자연과 과학, 감각과 기술, 디자인과 문화, 산업과 사람이 연결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설계하는 프로젝트가 된다.
이때 학생이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커피지식을 암기했는지가 아니다. 하나의 실제 문제를 마주했을 때 서로 다른 지식을 어떻게 불러오고 관계를 맺게 하며, 자신의 판단을 어떤 결과로 구현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런 졸업작품을 ‘The Cup’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 잔이 곧 교육 전체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바우하우스가 오늘날까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몇 개의 유명한 의자와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던 분야를 다시 연결하면서 새로운 산업슬롯에 필요한 창작자를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 것인지 질문했고, 그 질문 자체가 이후의 디자인과 예술교육에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커피학교가 바우하우스에서 배워야 할 것도 바로 이러한 교육적 태도다.
바리스타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커피학 전체일 수는 없고, 로스팅 역시 매우 중요한 전문기술이지만 한 알의 커피가 가진 세계 가운데 하나의 과정이다. 센서리와 추출, 가공과 재배 역시 서로 분리된 자격이나 직무가 아니라 하나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커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한 알의 생두가 자연에서 출발해 사람의 감각과 문화에 도착하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커피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단순히 커피를 능숙하게 만드는 기술자를 배출하는 데만 둘 필요는 없다.
커피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과학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감각으로 결과를 판단하며, 역사와 문화를 읽고,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며, 시장과 슬롯 속에서 자신의 판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을 ‘커피지성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커피지성인은 커피에 관해 어려운 말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한 잔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농장의 문제와 로스팅의 문제를 따로 보지 않고, 향미와 소비자의 경험을 분리하지 않으며, 좋은 커피와 지속가능한 산업, 좋은 기술과 좋은 문화 사이의 관계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우하우스는 새로운 건축과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건축과 디자인의 결과만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재료와 구조, 색과 형태, 공예와 기술, 예술과 산업을 함께 경험하도록 교육의 구조를 만들었다.
커피학교 역시 좋은 커피를 가르치기 위해 커피기술만 가르쳐서는 충분하지 않다.
농업과 생물, 화학과 물리, 미생물과 감각과학을 다루어야 하고, 동시에 역사와 철학, 심리와 언어, 미학과 디자인, 건축과 경영, 경제와 무역을 커피라는 실제 대상과 연결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학생에게 가능한 한 많은 학문을 가르치자는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지식이 결국 한 잔에서 어떻게 만나고, 어떤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지를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 커피학은 여러 학문을 커피 주변에 전시해 놓는 분야가 아니라 커피를 중심으로 흩어진 지식을 관계 맺게 만드는 학문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커피학교는 기술학교인 동시에 연구소이고, 실험실인 동시에 작업실이며,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곳이면서 인간과 문화에 대해 질문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하나의 완벽한 커피 정답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대신 어떤 생두와 문제를 만나더라도 먼저 관찰하고, 필요한 지식을 찾고, 질문을 만들며,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자신의 감각으로 판단한 뒤 다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바우하우스가 예술과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연결하면서 현대교육의 가능성을 넓혔다면, 오늘의 커피학교 역시 농업과 과학, 기술과 감각, 인문학과 예술, 산업과 문화를 한 잔 안에서 다시 만나게 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The Cup’이 있을 수 있다.
한 잔 안에서 자연과 인간이 만나고, 농업과 과학이 만나며, 기술과 예술, 감각과 철학,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된다. 학생이 그 한 잔이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다시 설계할 수 있게 된다면 커피학교는 더 이상 커피 만드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
좋은 커피학교는 한 잔을 만드는 방법만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한 잔 안에 들어 있는 세계를 읽고 다시 설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여야 한다.
바우하우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질문도 결국 이것인지 모른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보다, 그것을 만들어낼 사람에게 세계를 어떻게 보고 연결하는 법을 가르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