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안에서 세계를 읽다
나는 왜 커피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직업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왜 하필 커피였는지, 왜 커피가 내 삶의 중요한 언어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나는 커피를 하나의 음료에 머물지 않고 문화와 학문, 나아가 인간과 슬롯를 읽는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커피를 의식한 순간에는 맛이 없었다. 카페도, 바리스타 교육장도, 로스팅 머신도 없었다. 대신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중학생 때 혼자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고, 그중 상당 부분을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혼자 바카라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더 편했다. 낯선 나라에서 바카라은 내가 머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였다. 나는 바카라 자체뿐 아니라 바카라이 놓인 방의 공기와, 무언가를 오래 읽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집중과 고독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특히 좋아했던 문학 선생님이 있었다. 이탈리아와 독일계 배경을 가진 미국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주말에 캠퍼스를 걷다 보면 종종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는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담배가 있었다. 어떤 날에는 신문을 읽었고, 어떤 날에는 바카라을 펼쳐놓았으며,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한 장씩 넘겨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세계처럼 보였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곁에 늘 커피가 있었다.
나는 아마 커피의 맛보다 커피가 놓이는 풍경을 먼저 좋아했던 것 같다.
커피는 생각하는 사람의 곁에 놓이는 음료처럼 보였고, 지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작은 표식처럼 느껴졌다. 훗날 대학원에서 커피학을 공부할 때 한 교수님이 “커피는 지적인 음료이고 카페는 사유의 공간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새로운 개념을 배웠다는 느낌보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있었던 생각에 비로소 문장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 커피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
문학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커피라면 가능했다. 당시의 나에게 커피를 주문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에 조금 가까이 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말에 시내를 걷다가 한 카페에 들어갔고 처음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카푸치노였다.
잔 위에는 우유 거품이 소복하게 올라와 있었고 그 위에는 시나몬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나는 함께 나온 설탕을 거품 위에 조금 더 뿌렸다. 커피의 쌉싸름함과 우유의 부드러움, 설탕의 단맛과 시나몬의 향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당히 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맛은 오래 남았다.
처음부터 블랙커피를 즐겼던 것은 아니다. 카푸치노와 라테를 마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으며, 핸드드립 커피의 향과 질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에스프레소처럼 훨씬 응축된 형태의 커피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커피를 오래 마시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취향이 바뀌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달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 안에 이미 존재하는 산미와 단맛, 쓴맛과 향, 질감과 여운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나의 ‘커피 맛’으로 느꼈던 것 안에 여러 층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각은 어느 날 갑자기 정교해지지 않았다. 마시고, 비교하고, 다시 마시는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졌다.
커피는 나에게 먼저 마시는 법을 가르쳤고, 그다음에는 느끼는 법을 가르쳤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느낀 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법까지 요구했다.
돌이켜보면 첫 카푸치노에는 이후 내가 걸어갈 커피의 긴 시간이 조용히 들어 있었던 셈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약 1년 동안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는 산업을 숫자와 시장, 경쟁과 전략의 언어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하나의 기업을 이해하려면 그 기업만 보아서는 안 되었다. 시장을 보고 소비자를 살펴야 했으며, 경쟁자와 산업의 구조를 함께 읽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 커피기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커피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커피가 지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었다면 컨설턴트 시절의 커피는 거대한 산업이었다. 한 잔의 커피 뒤에는 생산국과 농장, 무역과 유통, 로스팅과 브랜드, 소비자의 취향이 연결되어 있었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흐름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잔에 담긴 갈색의 액체가 사실은 세계의 여러 지역을 통과해 내 앞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일에는 식물과 농업이 있었고, 그 뒤에는 국제무역과 시장이 있었다. 그 커피를 어떤 이미지와 언어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지 결정하는 브랜드가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선택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 경험은 이후 내가 카페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카페가 커피를 제조해 판매하는 장소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카페는 상품과 문화, 공간과 브랜드, 사람의 취향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커피는 잔 안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잔에 도착하기 전에도 하나의 세계가 있었고, 잔을 떠난 뒤에도 또 다른 세계가 이어졌다.
회사를 나온 뒤인 2016년, 나는 종로 익선동에서 아마츄어작업실이라는 카페를 시작했다.
나는 바리스타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카페를 연 사람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커피 기술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카페를 준비할 때 내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추출 기술보다 공간과 브랜드였다.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지, 그 공간을 찾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이 카페가 다른 카페와 어떤 방식으로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당시 내게 카페는 커피를 판매하는 장소인 동시에 하나의 문화적 공간이었다.
그래서 카페의 슬로건을 “인문학을 팝니다”라고 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꽤 과감한 문장이었다. 카페를 열어놓고 커피가 아니라 인문학을 판다고 했으니, 상호와 공간만 보고 이곳이 정말 카페가 맞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디자인 회사나 인테리어 사무실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커피를 통해 하나의 취향과 세계관을 전달하고 싶었다.
메뉴의 이름과 공간에 놓이는 물건, 벽에 걸린 그림과 사진, 음악과 문장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하려 했다. 커피와 문학이 만나고, 공간과 사유가 만나며, 사람들의 대화가 그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를 바랐다.
물론 카페는 사업이다. 매출을 만들어야 하고 임대료를 내야 하며 손님이 다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 현실을 부정하면서 문화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사람들은 왜 어떤 카페를 오래 기억하는가. 왜 비슷한 가격의 커피를 마시면서도 특정 공간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고 느끼는가. 한 잔의
커피와 하나의 공간이 어떻게 개인의 취향과 기억으로 남는가.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들이 점점 많아졌다.
2016년의 익선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오래된 서민 한옥이 이어져 있었고, 낡은 시간과 새로운 감각이 아직 정돈되지 않은 채 한 곳에 섞여 있었다. 상업적으로 완성된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여백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커피를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커피란 무엇인가.
카페는 무엇을 하는 공간인가.
그리고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처음에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생겨난 실무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질문은 기술이나 경영의 영역을 넘어갔다.
나는 좋은 커피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커피를 마시는지 알고 싶었고, 왜 굳이 집을 나와 카페라는 공간을 찾아오는지 궁금했다. 커피의 맛뿐 아니라 커피가 인간의 감각과 관계, 문화와 생활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기사 하나를 보내주었다.
대한민국에 커피학 석사과정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곧바로 학교와 학과를 찾아보았다.
당시에도 커피와 바리스타를 가르치는 교육과정은 존재했다. 그러나 내가 찾고 있던 것은 기술교육과 조금 달랐다. 커피를 어떻게 추출하는가도 중요했지만, 나는 그보다 커피가 왜 인간의 문화가 되었는지, 카페가 왜 사람을 머물게 하는지, 한 잔의 커피가 어떻게 하나의 경험이 되는지를 공부하고 싶었다.
특히 커피학이 조리나 식품 분야가 아니라 문화예술대학원 안에서 다뤄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내가 현장에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질문을 공부의 언어로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원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내가 커피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커피는 하나의 전공 안에 얌전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생두를 이해하려면 식물과 농업을 알아야 했고, 로스팅을 이해하려면 열과 물질의 변화를 살펴야 했다. 향미를 이야기하려면 인간의 감각과 언어를 생각해야 했으며, 커피의 역사를 따라가면 무역과 종교, 식민주의와 산업화의 문제까지 만나게 되었다.
카페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건축과 디자인, 도시와 슬롯, 사람들의 관계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나는 이 과정에서 커피가 유난히 많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익선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막연하게 느꼈던 생각들이 조금씩 언어를 얻기 시작했다.
커피가 기술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문화이고, 산업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감각과 슬롯를 들여다볼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먼저 질문이 생겼고 공부는 그 질문을 설명할 언어를 주었다.
그 이후 나는 커피를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훨씬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한 가지 이유만으로 내가 지금까지 커피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커피의 매력은 한 방향으로 깊어질수록 다른 방향의 문이 계속 열린다는 데 있었다.
생두를 따라가면 농장을 만나게 된다. 품종과 토양, 고도와 기후를 생각하게 되고, 생산자의 노동과 커피가 거래되는 구조까지 보게 된다.
로스팅으로 들어가면 커피는 과학이 된다. 열과 시간, 수분과 밀도, 물질의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추출에서는 다시 물과 온도, 압력과 입자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향미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인간은 어떻게 맛을 느끼는지, 하나의 향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보이지 않는 감각을 어떤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카페로 시선을 옮기면 공간과 도시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왜 카페에 머무는지, 어떤 공간은 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지, 브랜드와 취향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커피라는 하나의 대상이 계속 다른 질문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커피는 내게 하나의 닫힌 직업이 아니라 계속 확장되는 주제가 되었다.
카페에서 시작한 관심은 제조와 교육으로 이어졌고, 다시 콘텐츠와 글쓰기, 축제와 지역문화로 넓어졌다.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의 질문을 따라가면 다음 질문이 나왔고, 그 질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는 작은 잔 안에 담기지만, 그 잔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세계를 통과한다.
그리고 누군가 그 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커피학을 종종 ‘총체적 학문’이라고 표현한다.
커피 자체를 철학과 동일시하려는 말은 아니다.
내가 흥미롭게 보는 것은 커피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결국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철학은 오랫동안 인간과 자연, 지식과 윤리, 아름다움과 슬롯를 함께 질문해 왔다. 오늘날 학문은 세분화되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어 있지 않다.
커피 역시 그렇다.
농장에서 자라는 식물을 과학의 문제로만 볼 수 없고, 생산자의 노동을 경제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다. 좋은 맛은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왜 어떤 향이 한 사람에게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는지는 화학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카페 역시 공간의 크기와 좌석 수만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어떤 사람은 혼자 앉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한 잔의 커피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자연과 과학, 기술과 경제, 감각과 예술, 공간과 인간을 함께 보아야 한다.
내가 말하는 커피학의 철학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커피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뜻이 아니라, 커피라는 작은 대상을 통해 서로 떨어져 보이던 세계들이 실제로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왜 커피를 하는가.
예전에는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꼭 하나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시작하게 만든 것은 문학 선생님의 손에 들려 있던 한 잔이었을 수도 있다. 첫 카푸치노의 낯선 향이었을 수도 있고, 컨설턴트 시절 발견한 거대한 산업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익선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시작된 질문 때문일 수도 있고, 대학원에서 커피를 학문으로 다시 만나면서 느꼈던 지적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만 이 모든 경험을 지나면서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졌다.
커피는 나에게 세계를 읽는 매개가 되었다.
커피를 통해 자연을 보고, 과학을 만나고, 인간의 감각을 생각한다. 카페를 통해 도시와 공간을 보고 사람들의 관계를 관찰한다. 커피의 유통을 따라가면 시장과 노동을 만나고, 향미를 이야기하다 보면 언어와 기억의 문제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내게 커피는 하나의 언어에 가깝다.
아직도 제대로 읽지 못한 단어가 많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문장도 많다.
그것이 오히려 커피를 계속하게 만든다.
유학 시절 테라스에서 커피를 들고 신문을 읽던 문학 선생님과 처음 마셨던 카푸치노, 컨설턴트 시절 접했던 세계 커피산업, 익선동에서 시작한 카페와 대학원에서 만난 커피학은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을 살아갈 때는 서로 관계없는 사건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장면들 사이에 커피라는 하나의 선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의 관심은 카페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육으로 이어졌고, 커피를 매개로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행사와 축제로 확장되었다. 커피를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언어에 가두기보다 시민들이 함께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카페인문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페인문학은 커피 위에 철학이나 문학의 문장을 얹는 일이 아니다.
한 잔의 커피를 출발점으로 인간의 감각과 기억, 노동과 취향, 공간과 관계, 도시와 문화를 읽어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커피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을 만나고, 인간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슬롯와 세계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태국의 학교 테라스에서 나는 커피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세계를 읽고 있던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가르치고, 카페를 만들고, 커피에 관한 글을 쓴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커피에 대해 내가 채운 것보다 아직 비어 있는 자리가 더 크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커피를 한다.
모든 것을 알게 될 것 같아서가 아니다. 한 잔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아직 읽지 못한 세계가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