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직함 밖의 영향력이 AI 기업에 던지는 질문
거대한 기술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나 조직도 안에 있을까.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의 배우자 카미 클라크를 둘러싼 최근 관심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클라크는 앤트로픽의 공식 직원도, 임원도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아모데이의 조언자이자 외부 인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식 직함 밖의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한 개인의 이력이 흥미롭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빠르게 성장하는 AI 기업에서 실제 영향력은 어디에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훨씬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조직도 밖에서 만들어진 연결
카미 클라크와 다리오 아모데이는 2014년부터 교제했고 2022년 결혼했다. 클라크에게 앤트로픽의 공식 직바카라은 없지만, 아모데이에게 조언하고 외부 인사와의 연결을 돕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에릭 슈미트와의 연결이다. 클라크는 앤트로픽 초기 단계에서 슈미트를 아모데이와 연결하는 데 관여했고, 슈미트는 이후 앤트로픽의 초기 투자자가 됐다.
한 번의 소개가 기업의 네트워크가 될 때
앤트로픽은 2021년 5월 1억24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에는 슈미트도 참여했다.
물론 한 사람의 소개만으로 투자와 기업 성장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의 초기 단계에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연결되는지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AI처럼 기술과 자본, 정바카라이 동시에 움직이는 산업에서는 네트워크 자체가 하나의 자원이 될 수 있다. 공식 직함이 없어도 중요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은 기업의 바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식화되지 않은 역할이라는 문제
클라크는 2021년 슈미트와 함께 ‘Mother of AGI Fund’라는 벤처펀드를 조성하는 구상도 제안했다. 앤트로픽과 다른 AI 기업에 투자하고 자신의 앤트로픽 참여를 공식화하는 방안이 포함됐지만,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 역할이 공식 제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클라크가 앤트로픽의 경영 의사결정에 정확히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공식 직바카라도 없고 공개된 권한 구조도 없기 때문이다.
영향력과 권한은 같은 말이 아니다
누군가 CEO와 가까운 관계에 있고 중요한 사람들을 연결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영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공식 직함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영향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조언, 소개, 인간관계, 비공식적인 대화는 조직도에 표시되지 않지만 실제 기업의 방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클라크가 아모데이의 전략적 판단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입하는지는 주로 관계자 증언과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을 뿐, 앤트로픽이 공식적인 역할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지금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 ‘있다’ 혹은 ‘없다’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 제도 밖의 영향력을 어느 범위까지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로 볼 것인지에 있다.
과거 이력은 어디까지 현재를 설명할까
클라크의 과거 이력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그는 과거 여성 대상 성인 콘텐츠 사업을 공동 창업했고, 2011년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사업 투자를 요청한 적이 있다.
클라크는 사업 자료와 관련 내용을 전달하며 투자를 제안했지만 엡스타인은 최종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 클라크가 엡스타인의 성범죄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는 사실의 경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특정 인물에게 투자를 요청했다는 사실과 그 인물의 범죄에 연루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과거의 접촉 기록은 현재 인물을 이해하는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확인되지 않은 관계나 바카라임까지 확장하는 순간 사실과 추측의 경계는 쉽게 무너진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역할을 하는가
클라크는 다보스와 선밸리 등 주요 행사에서 아모데이와 함께 모습을 보이며 투자자와 정치권 인사들을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7월 선밸리 행사에서는 이방카 트럼프와 점심을 함께하고 재러드 쿠슈너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런 만남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클라크가 앤트로픽을 대신해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지는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단순히 ‘누구를 만났다’보다 중요한 질문은 그 만남이 실제 기업 활동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이다. 현재로서는 그 경계를 정확히 그을 만큼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AI 기업은 비공식 권력도 설명해야 한다
2026년 8월 중순 클라크의 역할과 과거 이력이 잇달아 조명되는 것은 앤트로픽이라는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AI 기업은 이제 단순한 기술 개발 조직을 넘어 막대한 자본과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런 조직일수록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누가 외부 네트워크를 연결하며, 실제 영향력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는지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공식 임원 명단만으로 모든 권력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기업은 많다. 창업자의 가족, 오랜 조언자, 투자자, 개인적 네트워크가 공식 구조 바깥에서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 자체가 곧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업의 슬롯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공식 권한과 비공식 영향력 사이의 경계를 더 투명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도 커진다.
카미 클라크를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도 결국 여기에 있다.
그녀가 얼마나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를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AI 기업처럼 슬롯적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는 조직에서 우리는 어디까지를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조직도에는 이름이 없어도 기업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기업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조직도 밖까지 넓어져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