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빠른 서평, 황보름 작가 '신작: 윗집부부'

큰 사건 하나 없는 소설이 왜 이렇게 짠하지...

by아호파파B

온라인카지노가 발굴한 작가, 황보름.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녀의 신작이 나오는 날을.


2022년 온라인카지노×밀리의서재 공모전 당선을 통해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등장했고, 그녀의 진가도 함께 세상에 드러났다.


국내에서만 25만 부 넘게 팔린 데 이어 영국·미국·호주 등 해외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4년에는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4년 만에 새로운 신작이 나왔다.


『윗집부부』


그런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그때 그 시절 제목만으로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평정시켰던... '옆집 여자', '앞집 남자'… 제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미 소설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고 궁금증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하다.
도저히 보지 않고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6월 4일, 종이바카라으로 출간되기 전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으로 먼저 선공개를 하였다.

누구보다 그녀의 팬인 나는 빠르게 정독(?) 아니... 청취를 하고 팬심을 가득 담아 서평을 적어본다.





일흔이 넘은 남자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묻는다.


"내가 그렇게 못마땅한가?"


30년간 온라인 게임 생활, 정년퇴직 후 경비 일마저 이제 그만둔 70대 남성, '경직'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부린 추태를 곱씹으며 경직은 또 한 번 느낀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카드키로 바뀐 현관, 커피 한잔 주문조차 힘든 키오스크,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매일 쌓여 간다.
세상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지만 경직 자신은 그 흐름 속에서 소외되어 간다.


"늙어간다는 건 매일매일 따지고 싶은 일이 늘어가는 것이었다. "

- 윗집부부, 1장 중에서


그의 일상에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왔던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수시로 엄습한다.


결혼한 걸 후회한다고 말하는 아내 '화정',
아버지의 훈계에 실망감을 토로하는 아들 '대호',
결혼도 출산도 거부하는 딸 '선지'
가족 안에서조차 경직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노인,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이 밀려났다는 걸 알게 된 노인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 윗집부부, 2장 중에서


그런 그가 여느 때처럼 뉴스를 보던 중 한국이 '극'초저출산 국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라를 위해 직접 나서보기로 마음먹는다.
딱 한 명. 젊은 사람 딱 한 명만 설득해 보기로.

엉뚱해 보이는 이 결심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그러나 바카라장을 넘길수록 우리는 알게 된다.

경직이 설득하려는 대상은 사실 어느 젊은이가 아니라, 세상 앞에서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여러 인물을 통해 지금 한국 슬롯가 앓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담아내고 있다.


고령화, 독거노인, 저출산, 청년 실업, 고용 불안, 세대 격차, 벼랑 끝의 소상공인, 육아와 1인가구 돌봄 문제까지.


우리는 이 문제들을 안다. 사실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잘 알아서, 이젠 오히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자칫 무겁고 어려울 수 있는 이런 슬롯문제들을, 황보름 작가는 '사람'으로 풀어낸다.

뉴스 속 헤드라인 한 줄이 아니라 이름과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인물로. 그리하여 독자를 슬롯문제의 옳고 그름의 잣대로 바라보는 시청자로써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 살아 내는 사람의 곁에 잠시 앉혀놓게 만든다.


딸 '선지'를 통해,

아들 '대호'를 통해,

경직의 오랜 친구 '항구'를 통해,

얼마 전 윗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 '봄'과 '가을'을 통해.


이 소설이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는 뉴스나 토론회에서 말하는 슬롯 문제 해법 같은 것이 아니다.

평생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던 주인공 '경직'이 가족, 친구, 이웃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 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설득하러 다가갔던 경직은, 도리어 그들의 삶을 알아 가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고 천천히 그들의 안으로 스며든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삶.

경직은 그들의 아픔을 마주하면서, 처음으로 자기 바깥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황보름 작가는 그 변화를 '앉는 자리'로 묘사해 낸다.
윗집 남자 '가을'이 자기 집을 다녀간 날, 경직은 늘 앉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앉으며 생각한다.


"방금 가을이 앉던 자리에 앉았다.
이 집에 살게 된 날부터 경직은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도 같은 자리를 고수했다. (...) 늘 시선에 부엌 싱크대와 그 위 작은 창문이 걸렸다.
4인용 식탁에서마저 한 자리만 고수하며 살아온 것이다.
오늘은 거실 창 앞에 놓인 화초들과 창밖이 보였다. "

- 윗집부부, 17장 중에서...


수십 년간 싱크대만 바라보던 사람이, 의자 옮겨 앉았더니 창밖이 보인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일이었다.

늘 앉던 내 자리에서 한 번 일어나,

다른 자리에 앉아 보는 것.


나에겐... 이 부분이 소설 전체가 말하려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사실, 더 깊게 작품을 다루고 서평을 작성하고 싶었지만 새로 나온 신작에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하게 될까 봐 많은 내용들을 담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마음에... 좋았던 문장들 몇 개 남겨본다.


서울에서의 삶을 턱걸이에 비유했다.
"턱걸이를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팔 힘은 점점 빠지고 몸은 부들부들 떨리는데 끝까지 끝까지 버티는 거예요. "

- 윗집부부, 12장 중에서


생각해 보니 순리라는 게 별 건가 싶네. (...)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지금껏 자연스럽게 생존 본능과 번식 본능에 따라 이어져 왔어. (...) 아빠가 말하는 순리는 번식 본능에 가깝네. 나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본능. 맞지? 그런데 아빠, 번식 본능보다 더 강력한 게 뭔 줄 알아? 생존 본능, 동물은 생존이 위협받으면 번식을 하지 않아.

- 윗집부부, 8장 중에서...


그 여자와 남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떤 사건들을 겪으며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모조리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끝까지 모질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항구는 고집을 꺾었다.

- 윗집부부, 20장 중에서...


가장 최악의 부모가 어떤 부모인 줄 알아? (...) 걱정만 많고 능력은 없는 부모래. 딱 우리잖아.

- 윗집부부, 22장 중에서...



4년 만에 나온 황보름 작가의 신작 '윗집부부',

살인도 없고, 불륜도 없고, 반전도 없는 큰 사건이 하나도 없는 소설이지만

바카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문체와 섬세한 감정선으로 사람을 끝까지 붙잡아 둔다.


이번 소설도 흥행의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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