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 부스 앞에서 나 혼자 다른 걸 물었다

몰라서가 아니라, 내 농장에 안 맞고 비싸서였다

by경소정

작년에 농업인 대상 교육과 농가 경영 컨설팅을 하는 석사 동기생이 스마트팜 박람회를 다녀왔다며 전화가 왔다. 실제 농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더라는 이야기였다. 특히 벼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물관리를 AI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논에 수위와 수온을 측정하는 센서를 설치하고, 스마트폰이나 PC로 급수 밸브를 원격으로 열고 닫는 기술이었던 것 같다. 이외에도 병해충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나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벼 상태를 분석하고 비료를 뿌리는 기술도 전시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AI가 발전하고 나서 현장에 바로 적용해도 될 만큼 스마트팜 기술들이 정밀해지고 정확해졌어. 그런데 농민들은 이런 기술의 존재조차 모르니까 못 쓰는 거야." 동기는 농민들이 이런 기술을 알게 되면 도입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농민과 기술 개발 업체를 이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농사짓는 내 생각은 달랐다.


기술이 내 노동력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가.
설치 비용이 노동 비용보다 적게 드는가.

물론 동기의 말대로 몰라서 못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농민들은 왜 애초에 신기술에 관심을 안 가질까. 나는 그 이류를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로 현장에 맞지 않는 기술이다. 나도 농사를 짓기 전엔 스마트팜 기술에 혹했다. 기술 관계자 설명을 듣다 보면 '오, 정말 많은 일을 기계가 해주는구나. 이러면 농사가 쉬워지겠네' 싶었다. 그런데 직접 귀농해서 농사를 지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병해충을 빠르게 감지하고 정확도도 90% 넘는 카메라가 있다고 해보자. 밭에 설치하면 실시간으로 촬영해서, 피해가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준다. 그럼 나는 밭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방제하면 된다. 누가 들어도 효율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설치 비용이 얼마인가요?"


비용이 바로 두 번째 이유이다. 물론 병해충 감지 기술이 좋고 편리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제 막 귀농해서 1,000평 남짓 농사짓는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1,000평 정도 되는 밭에서 옥수수를 키워 500만 원 벌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몇백만 원짜리 장치를 설치하겠는가. 이건 나만의 사정이 아니다. 2024년 농림어업총조사를 보면, 1ha도 안 되는 땅에 농사짓는 영세 소농 비율이 74%다. 1ha가 3,000평 남짓이니, 그보다 작은 땅에서 농사짓는 농가가 대다수라는 뜻이다. 어차피 내 농장에 들일 수 있는 가격의 스마트팜 장비가 없는데 무슨 관심을 갖겠나.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오는데. 이게 내가 보는 농촌 현장의 실태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는 거였다.


밭에서 일하고 축사에서 소 밥을 주다 보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일을 줄일 수 있을까, 일을 못 줄인다면 어떻게 최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해마다 농축산업 분야의 논문과 신기술은 쏟아지는데, 왜 정작 내 농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찾기 힘든지 자꾸 되뇌게 된다. 이런 질문들을 붙들고 논문을 뒤지다 올해 초 나온 리뷰 한 편을 찾았다.


2025년 미국 코넬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IEEE Transactions on Automation Science and Engineering에 논문을 냈다. 농업 분야에서 대규모 언어모델인 생성형 AI가 어디까지 쓰이고 있는지를 정리한 리뷰다. 다섯 개 데이터베이스에서 460편을 모으고, 그중 207편을 골라 깊이 분석했다. 웬만한 농업 AI 연구는 다 훑은 셈이다.


207편이 그려낸 농업 AI의 풍경은 꽤 화려했다. 작물 병해충을 사진 한 장으로 진단하고, 언제 물을 줘야 할지 예측하고, 위성과 드론 데이터로 밭 전체를 분석한다. 인도에서는 KissanAI라는 챗봇이 힌디어, 영어, 구자라트어로 농업인에게 음성으로 농사 조언을 해준다. 글자를 모르는 농부도 말로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강화학습과 언어모델을 결합해 옥수수 농사 수익을 49% 넘게 끌어올렸다는 시뮬레이션 연구도 있었다. 농업 AI 시장이 2031년까지 138억 달러 규모로 커질 거라는 전망도 함께였다.


논문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기술은 이미 농사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지을 수 있을 만큼 발전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체감하기로 국내 농가에 실제로 도입돼 쓰이는 스마트팜 기술은 아직 손에 꼽는다. 우리나라 농업 환경과 잘 안 맞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이 논문은 로봇과 함께 사는 미래도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례만 늘어놓지 않고 한계도 분명히 짚었다. 연구진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데이터였다. AI를 제대로 학습시키려면 현장에서 나온 질 좋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농업에는 그런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역마다 기후와 토양이 다르고 재배 기술도 다 다르니 한 곳에서 만든 AI를 다른 곳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미국 중서부 옥수수밭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강원도 영월에서 키우는 옥수수의 사정을 알 리 없다. 지금까지 발전해 온 AI는 지역 농업의 관행과 농업인이 몸으로 쌓은 경험을 거의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연구진도 논문에 명시했다.


게다가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모델을 학습시키고 돌리는 데는 어마어마한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 인프라가 약한 지역일수록 그림의 떡이다. 농업인이 이 장비나 기술을 다룰 줄 아느냐도 문제다. 여기에 연구팀은 불편한 가능성 하나를 덧붙였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지금 현장을 지키는 농업지도사나 전문가의 자리가 오히려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돕겠다는 기술이 사람을 밀어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리하면 지금 우리나라 농업이 처한 상황은 이렇다. AI를 믿기엔 신뢰가 쌓이지 않았고, 도입하기엔 부담스러운데, 기술마저 내 현장 사정을 모른다. 믿음도, 편의도, 맞춤도 아직 하나도 준비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 마을에서는 송아지가 아플 때 수의사를 부르고 파밤나방이 콩잎을 갉아먹으면 농약상담사를 찾아간다. 아직은 GPT도 Claude도 사람만큼 믿음직스럽지 못한 게 내가 보는 농업의 현실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비관만 하고 싶진 않다. 이 논문이 말하는 건 기술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은 됐는데 그 기술이 우리나라 농장에 맞게 적용되기까지의 길이 아직 안 뚫렸다는 이야기다. AI 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기에 농축산업도 이 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 맞게 저비용으로 도입할 수 있는 AI도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 믿는다. 다만 아직 그 기술을 연구하는 개발자와 농업인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농업 AI 기술의 정확도나 정밀도를 1% 더 올리는 일보다, 한국 농업 현장 특성에 맞게 지역별·품목별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 미국 옥수수밭 데이터 100만 건보다 강원도 옥수수 농장 100곳의 재배 데이터가 우리에겐 훨씬 값지다. 그러니 정부나 연구기관이 현장 농업인의 경험과 데이터를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제하는 일이 먼저다. 이 논문의 연구팀도 같은 말을 한다. 농업인을 개발 과정에 참여시키고 그 피드백을 모델에 반영해야 비로소 현장의 진짜 문제를 푸는 기술이 나온다고.


내가 박사과정에서 파고들려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다. 기술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잇는 일. 아무리 좋은 기술도 우리 농장까지 닿지 않으면 소용없고, 현장의 목소리도 개발자에게 닿지 않으면 기술은 연구실의 전리품일 뿐이다.


P.S. 그런데 이 논문을 계속 읽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스마트팜 기술이 신뢰도, 부담도, 현장 적합성도 다 갖췄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 기술을 농장에 도입하는 일이 남는 장사일까. 결국 농업인이 가장 궁금한 건 통장에 찍히는 돈이다. 다음 편에서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보려 한다. 아직 우리나라 사례를 다룬 연구는 찾지 못해서 이번엔 아프리카 농가들의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AI를 도입한 뒤 수확량과 소득이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다룬 해외 연구다.


Sapkota, R., Qureshi, R., Hadi, M. U., Hassan, S. Z., Sadak, F., Shoman, M., ... & Karkee, M. (2025). Multi-modal LLMs in agriculture: A comprehensive review. IEEE Transactions on Automation Science and Enginee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