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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기 싫은 곳에는 이유가 있다

by여운

어제는 연가를 쓰고 하루 쉬었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모처럼 혼자 있는 집에서 뭘 할까 하다가 청소를 하기로 했다.

집을 쭉 둘러보니 치울 데가 천지였다. 그런데 내 손은 늘 같은 곳으로 간다. 그것도 제일 깨끗한 곳으로.

안방과 둘째 방이다.

두 방은 시작하는 데 부담이 없다. 물건이 많지 않아서 제자리에 놓는 데 1분이면 충분하고, 바닥에 있는 물건 몇 개만 치우면 바로 청소기를 돌릴 수 있다. 청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청소하기까지 고민할 게 없다.

그다음은 화장대, 거실, 드레스룸이다. 안방만큼 간단하진 않아도 금방 끝난다. 뭘 어디에 둬야 하는지 알고, 치울 물건도 감당할 만하다.

문제는 주방과 첫째 방이다.

첫째는 물건을 버리는 걸 싫어한다.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친구가 그려준 그림, 예쁜 포장지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먹다 남은 과자도 있다. 아이에게는 다 이유가 있는 물건이겠지만, 내 눈에는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물건이 한가득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다. 내게는 종이 쪼가리여도 아이에게는 중요할 수 있으니까. 하나를 치우려 해도 이건 버려도 되는지, 어디에 둬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방은 또 다르게 만만치 않다.

전날 저녁 흔적에 아침 흔적까지 쌓여 있다. 설거지하고, 조리대 닦고, 여기저기 놓인 물건도 제자리에 넣어야 한다. 물건수를 줄여보려 해도 매일 쓰는 것만으로 이미 한가득이다.

안방에서는 1분이면 끝나는 정리가 주방에서는 끝이 안 보인다. 같은 집, 같은 사람이 하는 정리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나는 청소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깨끗한 집이 좋았다. 그래서 깨끗해지기까지 할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으면, 시작하기가 싫어진다.

안방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얼마나 치워야 하는지도 한눈에 보인다. 첫째 방은 물건 하나 치울 때마다 판단해야 하고, 주방은 해야 할 일이 줄줄이 기다린다. 청소가 싫은 게 아니라, 청소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거다.

그동안 물건을 줄일 때는 주로 공간을 봤다. 서랍에 여유가 있는지, 옷장에 옷이 잘 들어가는지, 바닥에 나와 있는 건 없는지. 그런데 공간에 들어간다고 내가 다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랍에 들어가는 양과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양은 다르다.

물건을 꺼내 쓰고, 다시 넣고, 닦고, 가끔은 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걸 부담 없이 해낼 수 있는 만큼이 나한테 맞는 양이다.

물론 주방은 매일 쓰는 곳이라 안방처럼 단순해지기 어렵고, 첫째 방 물건도 내 마음대로 줄일 수 없다. 모든 공간을 똑같이 비울 이유도 없다.

다만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내가 자꾸 미루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내가 감당하기에 물건이나 일이 너무 많았던 거다.

자리가 있다고 다 둘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랍에 들어가는 것과 내가 챙길 수 있는 건 다른 얘기니까.

안방과 둘째 방을 청소할 땐 별생각이 없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금방 끝난다. 다른 공간도 조금씩 그렇게 만들고 싶다.

물건이 하나도 없는 집은 바라지 않는다. 어디를 청소하든 시작하기 전에 한숨부터 나오지 않는 집이면 좋겠다.

기왕이면 주방 앞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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