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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잘할수록 내 일이 늘어난다

by여운

집을 정리할 때면 내가 모든 걸 결정한다. 물건을 어디에 둘지, 어떤 순서로 넣을지, 어떻게 구분할지. 머리를 써서 자리를 정하고 나면 꽤 뿌듯하다. 가지런해진 서랍을 보면 괜히 한 번 더 열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뿌듯함을 아는 사람은 우리 집에 나 하나뿐이다.

분명 자리를 정해뒀는데 가족들은 자꾸 엉뚱한 곳에 물건을 둔다. 찾는 물건이 안 보이면 나한테 묻는다.

"엄마, 이거 어디 있어?"

내가 알려주면 그제야 꺼내 쓰고, 다 쓴 물건은 원래 자리가 아닌 어딘가에 놓인다.

결국 나는 위치를 알려주는 사람이자, 제자리로 돌려놓는 사람이 된다. 우리 집 물건의 위치를 전부 외우고 있는 인간 내비게이션이다. 길 안내만 하면 다행인데, 목적지까지 직접 데려다줘야 할 때도 있다.

이러면 정리할수록 내 일이 늘어난다. 처음엔 정리하는 수고만 들였는데, 이제는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는 일까지 내 몫이다. 가족들이 아무 데나 두면 다시 정리해야 하고, 그게 반복되면 괜히 화가 난다. 편하려고 정리했는데 나는 더 바빠지고 더 예민해졌다.

가족들 눈에는 내가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가족들 잘못이 아니다. 내가 정한 자리를 설명도 없이 어떻게 다 알겠나. 설명해 줘도 매번 기억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내가 정한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라는 보장도 없다. 나한테 편해서 거기 뒀을 뿐이다. 그 물건을 자주 쓰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자리는 내가 정했다. 정리할 때 내 기준만 중요했지, 정작 쓰는 사람의 편의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하는 정리 말고, 아무나 해도 되는 정리를 하고 싶어졌다.

조건은 간단하다. 가족들이 매번 묻지 않아도 찾을 수 있을 것. 쓰고 나서 어디에 둘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꺼내기 쉽고, 넣기는 더 쉬울 것. 물건 하나를 제자리에 두려고 다른 물건 세 개를 들어내야 한다면, 아무리 보기 좋아도 오래 못 간다.

이를테면 자주 쓰는 물건은 손이 닿는 곳에 두고, 비슷한 물건은 한 곳에 모은다. 서랍 안도 지나치게 세세하게 나누지 않고,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구분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제자리에 안 두는 날은 있을 거다. 아무리 좋은 정리법도 사람의 귀찮음까지 없애주지는 못하니까. 그래도 적어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어질러지는 일은 줄일 수 있다.

나는 깔끔한 집도 좋지만, 그 깔끔함을 유지하느라 계속 신경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없어도, 며칠 집을 비워도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돌아왔을 때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않으면 더 좋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 한 명이 있는 집보다, 누구나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집이 좋다.

내가 없어도 유지되는 정리. 앞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그런 집이다.

우리 집 정리 담당자가 나 한 명인 시스템은 이제 좀 바꿔야겠다. 내가 집안 물건을 전부 바카라임지기에는, 물건도 많고 내 인생도 바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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