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하루

by여운

공휴일이었다.
아침은 대충 차려 먹었다.

먹고 난 그릇은 싱크대에 넣어두고, 의자를 식탁 위로 올렸다.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고 가족들과 집을 나섰다.

오늘은 멀리 가지 않았다. 가족들과 카페에 갔다.
도착해서는 넷이 각자 하고 싶은 걸 했다.

남편은 만화바카라을 봤다.
나는 빨간머리 앤을 읽었다.
첫째는 그림을 그렸다.
둘째는 카페 정원을 돌아다녔다.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이것저것 구경했다.

넷이 함께 왔지만 굳이 같은 걸 하지는 않았다.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여행을 가는 것도 좋아한다.
낯선 곳에 가고, 맛있는 걸 먹고, 아이들과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대신 여행에는 앞뒤로 일이 붙는다. 가기 전에는 짐을 챙겨야 한다. 아이들 옷부터 세면도구까지 하나씩 넣는다. 다녀오면 가져간 짐을 다시 풀어야 한다. 빨랫감이 나오고, 세탁기를 몇 번씩 돌리는 날도 있다. 캐리어에 남은 물건을 꺼내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여행이 정말 끝난다.

그런 날도 좋다. 그리고 오늘처럼 별다른 준비 없이 나갔다가 가볍게 돌아오는 날도 좋다.

오늘은 돌아가서 정리할 짐이 없다. 가방도 없고, 밀린 빨래도 없다.

집에 도착하면 아침에 싱크대에 넣어둔 그릇을 정리하고 씻으면 된다. 그러고 나면 오늘 할 일은 거의 끝이다.

잘 놀고 왔는데 뒤에 따라오는 일이 별로 없다.
이게 생각보다 편하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좋아하게 된 것도 이런 가벼움이다.

집에 물건이 적으면 치울 게 적다. 식탁 위에 물건이 없으면 닦기 쉽고, 바닥에 물건이 없으면 청소기를 바로 돌릴 수 있다. 그래서 아침에도 의자만 올려놓고 로봇청소기를 켠 채 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 노는 것도 비슷한 날이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하루 일정을 빼곡하게 채우지 않아도 된다. 카페 하나 정해서 나가면, 거기서 각자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별것 없는 하루다.

그런데 이런 날에는 이상하게 여유가 남는다. 오늘 하루를 즐기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지 않아서 좋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이 가볍다.

다만 오늘은 적게 준비하고, 적게 움직이고, 각자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한 날이었다. 집에 돌아가서도 씻고 자면 그만이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이런 하루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하고, 그 밖의 수고는 별로 없는 하루.

오늘은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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