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에게 체크카드를 만들어줬다.
요즘은 아이 명의로도 체크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카드를 건네주니 첫째는 제 이름이 적힌 카드를 한참 바라봤다. 아직 잔액은 0원이었지만, 아이는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지갑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보기를 반복했다.
카드를 만든 이유는 대단치 않다.
복직을 하고 나니 아이가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마다 챙겨주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는 금방 해결해 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회사에 있으면 그럴 수 없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카드를 만들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용돈을 어떻게 주는 것이 좋을까. 매달 일정한 금액을 줄까. 필요할 때마다 줄까. 용돈기입장을 쓰게 할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답은 없었다.
생각하다 보니 내가 정말 고민하는 것은 용돈의 방식이 아니라, 돈을 대하는 태도라는 걸 알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참 풍족한 시대를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부터 장난감이 있었고, 생일이면 선물을 받았고,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부모와 상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 아이들도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자라고 있다.
그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풍족함은 쉽게 당연함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사주는 것.
아빠가 결제하는 것.
필요하면 돈이 생기는 것.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한 가지는 꼭 알려주고 싶다. 엄마 아빠의 돈은 원래 내 돈이 아니라는 것. 부모의 돈은 당연히 자녀에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라는 것.
그리고 용돈도 마찬가지다.
내 통장에 들어온 순간 아무 제약 없이 마음대로 써도 되는 돈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믿고 맡긴 바카라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용돈을 단순히 나눠주는 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아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먼저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왜 필요한지.
얼마나 오래 사용할 건지.
더 좋은 선택은 없는지.
친구가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자기에게 가치 있는 물건인지.
엄마를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투자자가 되고, 아이는 자기 생각을 설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는 힘.
상대를 설득하는 힘.
기다릴 줄 아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은 누군가의 노력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나는 아이가 돈을 아끼는 아이보다 돈의 가치를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만원이 적은 돈인지, 많은 돈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 만원에도 누군가의 한 시간, 혹은 하루의 노동이 담겨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았으면 좋겠다.
첫째의 체크카드에는 아직 잔액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카드에 돈보다 먼저 한 가지가 채워졌으면 좋겠다.
'당연한 돈은 없다.'
그 생각 하나만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면, 언젠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었을 때도 돈을 귀하게 쓰는 어른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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