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자 아내가 되어, 10년 전의 글을 다시 읽으며
10년 전, 나는 엄마와 아내가 호랑이가 되는 이야기에 대해 글을 썼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속 어머니와 〈김현감호〉에 함께 실린 신도징의 아내 이야기.
나는 그 여성들이 왜 호랑이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무섭다고, 배반했다고 말하기 전에 그녀들의 속사정을 듣고 싶었다.
아이를 먹이고 지키느라 바빴던 어머니에게도,
남편과 함께 살아가던 아내에게도 자기만의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 혼자 있고 싶은 순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끝내 삼킨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곁에 지친 마음이나 다른 삶을 꿈꾸는 마음이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그들을 엄마와 아내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 이름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궁금했다.
누군가를 돌보고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동안,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얼마나 말할 수 있었을까.
호랑이가 된 뒤에야 드러난 마음이 있다면, 나는 그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나는 엄마이자 아내가 되어 그 글을 다시 펼쳤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기꺼이 원했다.
연우를 만난 일은 기쁘고 감사하다. 아이가 내 삶으로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원했던 삶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무게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안다.
연우를 만나기 전과 이후의 삶은 너무도 다르다.
전에는 주말이 오면 푹 쉬거나 예쁜 카페에 갔다.
보고 싶은 공연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시간이 남으면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허나 지금은 시간이 생기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한다.
주말에는 연우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을 찾아 나선다.
공동육아를 하고, 새로운 곳에서 체험하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풍경을 만나러 간다. 작은 눈에 하나라도 더 담아주고 싶어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즐거웠던 기억과 함께 피로가 남는다.
아, 어느새 피로는 가끔 찾아오는 손님보다 늘 곁에 있는 동반자에 가까워졌다.
평일에는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올까 마음 한편이 긴장해 있다.
갑자기 잡히는 저녁 약속은 선뜻 응하기 어렵다.
오늘의 내 시간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도 일상이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 연우가 아프면 나도 함께 아프다.
마음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기를 옮아 앓기도 한다.
엄마까지 하나 더, 아빠까지 둘 더. 우리 집의 아픔은 종종 1+2가 된다.
10년 전의 나는 역할 속에서 지워지는 여성을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그 역할을 살아내며 내려놓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안다. 늦잠, 조용한 식사, 갑작스러운 약속, 끝까지 읽는 바카라, 아무 계획 없이 보내는 오후. 작은 것들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내가 좋아하던 삶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 안의 호랑이는 지금 불행할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호랑이는 제법 신나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연우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려고 나섰는데, 내 세계도 함께 넓어졌다.
공동육아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였다면 지나쳤을 장소에 가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풍경 앞에서 다시 멈춘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동안 내가 몰랐던 즐거움도 발견한다.
어제 못 하던 것을 오늘 해내는 모습, 뜻밖의 순간에 꺼내는 새로운 말, 하루하루 달라지는 표정. 가까이에서 한 사람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감격스럽다. 연우로 인해 내 주변은 더 환하게 물들어간다.
내 안의 호랑이도 그 빛을 좋아한다.
연우와 함께 보내는 날들에 웃고, 다음에는 어디에 가볼까 궁금해한다.
엄마가 된 나의 삶에도 호랑이가 즐길 만한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10년 전에는 미처 쓰지 못했다.
물론 즐겁다고 덜 피곤한 것은 아니다.
소중하다고 늘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육아는 쉽지 않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어느 날에는 정말이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 간절하다.
내 안의 호랑이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바카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쉬는 것도 좋아한다.
엄마가 되었다고 그 취향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잠시 뒤로 밀렸을 뿐,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래서 이제는 호랑이에게 자주 안부를 묻고 싶다.
요즘은 어떠니.
많이 피곤하지.
오늘은 무엇을 하면 네가 조금이라도 기쁘겠니.
사실 잘 알고 있다, 그 대답들이 그리 대단할 것 없다는 것을.
바카라 몇 쪽을 읽는 것, 쓰고 싶었던 문장을 적는 것, 잠깐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 그저 누워 있는 것. 그런 시간을 내 하루에도 의식적으로나마 조금씩 남겨두고 싶다.
연우의 행복을 살피는 만큼, 내 행복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호랑이 모드를 켰다 껐다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연우와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나가기도 하고, 잠시 혼자 조용히 쉬기도 한다.
다만 스위치를 끈 날에도 호랑이가 편히 누울 자리는 있었으면 한다.
연우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나는 연우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기다리는 법, 마음을 말하는 법,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내어주는 법.
‘길들인다’는 말을 쓴다면, 나는 우리가 서로의 리듬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나도 내 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고 있다.
10년 전의 나는 이야기 밖으로 떠난 호랑이의 다음 삶이 궁금했다.
지금의 나는 연우를 안고 있는 호랑이의 다음 삶을 쓰고 싶다.
아이를 사랑하며 새롭게 넓어진 세계를 누리고, 가끔은 제 자리로 돌아와 바카라을 펼치는 호랑이.
많이 피곤한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호랑이.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는 내 안에, 여전히 내가 있다.
오늘도 내 안의 호랑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너도 잘 지내고 있니.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도 잊지 않을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우리,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