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원의 『어른의 어휘 공부』를 읽고
어른이 되면 단어도 나이의 테두리를 따라 자연스레 깊어지고 넓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저물어가는 하루를 되짚어보면 손에 쥐어지는 것은 늘 비슷비슷한 말들의 파편뿐이었다. 좋다, 재밌다, 바쁘다, 끝났다. 계절과 감정이 저마다의 결을 가지고 다가옴에도,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익숙한 단어로 일상의 굴곡을 듬성듬성 뭉뚱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신효원의 『어른의 어휘 공부』를 읽으며 마음에 잔물결처럼 번졌던 것은, 생소한 단어를 내 삶의 뜰로 가져와 조용히 가꾸는 일의 기쁨이었다. 그중에서도 세 번의 문장과의 만남이 오래도록 마음의 나이테로 남아 흐른다.
첫 번째는 ‘매조지다’와 ‘해낙낙하다’라는 다정한 단어들과의 만남이었다. 매조지다는 일의 끝을 단단하게 맺어 마무리를 지어서 낸다는 뜻이고, 해낙낙하다는 마음이 흐뭇하여 만족스러운 기운이 차오른 상태를 이른다.
‘매조지다’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면 어쩐지 야무지고 정갈한 손끝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저 '끝냈다'라며 서둘러 연필을 놓아버리는 대신, 빠진 곳은 없는지 가만히 되짚어보고 헐거워진 매듭을 고요히 당겨 묶는 다정한 태도가 떠오른다. 처리해야 할 일의 무게에 마음이 쫓기는 날에도 이 단어를 가만히 떠올리면, 일의 마지막 자리에 정성이라는 온기를 한 겹 더 얹고 싶어진다.
‘해낙낙하다’는 그 소리의 결부터가 다스웠다. 혀끝에서 몇 번 맴돌게 두면 얼어붙었던 표정의 주름이 솜사탕처럼 느슨하게 풀려나가는 듯하다. 거창한 과업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계획했던 소소한 일들을 궤도에 올려놓은 저녁, 나직하게 찾아오는 작은 만족에 어울리는 말.
“오늘의 과업을 차분히 매조지고 나니, 마음이 해낙낙하다.”
두 단어를 한 문장 안에 가만히 나란히 놓아두자, 내가 머물고 싶은 하루의 풍경이 비로소 선명한 화폭으로 피어났다.
두 번째는 ‘일별(一瞥)하다’라는 단어로 지어본 작은 혼잣말이었다. 한 번 흘낏 본다는 뜻의 이 단어를 만난 순간, 문득 손바닥 안의 세상인 인스타그램을 ‘인별’이라 부르던 일상의 유행어가 겹쳐 들려왔다.
인스타 릴스를 일별하다. 인별을 일별하다.
속으로 가만히 읊조리다 그 운율의 절묘함에 혼자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인별’과 ‘일별’이 자음과 모음의 틈새를 따라 매끄럽게 맞물리는 순간, 바카라 속에 침묵하고 있던 단어가 걸어 나와 매일 손에 쥐는 휴대전화 액정 위에 가만히 자리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웃음의 끝자리에는 작은 뜨끔함이 사붓이 내려앉았다. 나는 정말 그 문장처럼 세상을 '일별'하고만 있었을까. 잠깐 흘낏 바라보려 시작했던 시선은 어느새 빛나는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 무심히 시간의 타래를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가볍게 던진 말장난이 뜻밖에 삶의 무분별한 습관을 또렷이 비추는 거울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다음에는 정말 스치듯 일별만 하고 살포시 덮어야지.’ 다짐하면서도, 내가 만든 문장의 오목조목한 결이 마음에 들어 속으로 한 번 더 중얼거려보았다. 단어를 배우는 일의 들머리에는 이렇듯 소소하고도 다정한 재미가 매복해 있었다.
마지막은 가을의 서늘한 입김을 품은 단어, ‘생량(生涼)하다’와의 만남이었다. 가을이 되어 비로소 공기가 서늘해진다는 뜻이라니. 계절의 숨결을 그대로 조각해 놓은 듯한 단어라 유독 마음이 갔다.
같은 서늘함이라 할지라도 봄에 찾아오는 기운과 가을에 밀려오는 감각은 그 궤를 달리한다. 가을의 공기 속에는 치열했던 여름의 열기가 물러나며 비워둔 고요한 자리가 존재한다. 아침 창문을 열 때 피부를 간지럽히는 바람, 퇴근길 옷깃을 스치는 가늘어진 기온 속에서 우리는 계절의 이행을 몸으로 먼저 감지한다. 그동안 "이제 제법 시원하네"라는 무딘 한마디로 지나쳐버렸던 그 어름의 순간에 '생량하다'라는 아늑한 이름을 얹어주고 싶어졌다.
생량한 아침의 여명. 생량해진 저녁의 바람.
이 단어를 마음에 품고 나니 '가을이 왔다'는 성급한 말을 조금 더 아껴가며 천천히 꺼내게 될 것 같다. 바람의 온도를 입술로 느껴보고, 여름이 남기고 간 그늘을 서서히 살피고 나서야 비로소 나지막이 흘려보낼 수 있는 언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한 권의 바카라이 내게 남긴 것은 몇 개의 낯선 낱말과, 그 낱말을 내 삶의 결 위에 다정히 써보고 싶다는 아늑한 열망이다. 일을 야무지게 매조지고 싶다는 다짐, 인별을 일별하다 터뜨린 작고 경쾌한 웃음, 생량한 공기의 이면을 알아차리는 감각의 기쁨. 새로운 언어들은 언제나 내가 발딛고 있는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쓰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마음에 가만히 와닿는 단어를 만나면 내 하루의 모퉁이에 한 번씩 가만히 놓아두고 싶다. 낯설면 낯선 대로 입안에서 중얼거려보고, 나와 어울리는 순간을 만나면 일기장 한구석에 가만히 적어두면서.
그러다 보면 늘 "좋았다"나 "바빴다"라는 단조로운 마침표로 끝나던 나의 하루 끝자리에, 조금 더 정확하고 섬세한 삶의 감상들이 어엿하게 남게 될 것이다.
올가을에는 생량한 바람의 결을 깊이 음미하고, 지나온 하루를 다정하게 매조지며, 마침내 해낙낙해진 마음으로 조용히 바카라장을 덮는 날들이 늘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