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는 흔히 사랑을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고, 마음의 벽을 허물어 서로의 곁에 안착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완성이라 믿곤 하죠.
하지만 연극 <올모스트 메인>의 프롤로그는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가까움'의 정의를 엉뚱하고도 서글픈 논리로 뒤흔들어 놓습니다.
여자 : 우리 세상에서 제일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
남자 : 근데, 그게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다르게 생각해보면 말이야. 지금 너하고 나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게 아닐 수두 있다? 사실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거 일수도 있어! 좀 다르게 생각해보면 물리적으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고, 이렇게 눈덩이처럼. 그럼 가장 옆에 있는 게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거잖아! 봐.
남자는 공의 한 지점을 가리킨다.
남자 : 내가 여기 있고, 니가 여기 있고. 이만큼 멀어!
공의 한 지점을 가리킨다. 사실은 거의 같은 지점이다. 남자는 지금 여자와 자기 사이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갈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여자는 마음이 상해서 남자의 곁에서 조금 물러선다.
남자 : 어? 아까보다 가까워졌다.
남자의 논리에 따르면 분명히 아까보다 가까워졌다. 그렇게 여자는 점점 멀어져 가나 남자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여자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우리 세상에서 제일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라고 속삭이는 여자의 곁에서, 남자는 지구의 둥근 곡선을 그려 보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지금이, 사실은 지구 한 바퀴를 꼬박 돌아야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엉뚱한 가설. 여자는 서운함에 뒷걸음질 치며 멀어지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자는 그럴수록 우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천진하게 웃습니다.
처음 이 장면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남자의 서툰 논리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그 문장들'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킵니다. 어쩌면 관계의 본질은 붙어 있는 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소한 오해와 말실수로 서로가 한없이 멀어지기도 합니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린 거리감에 좌절하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죠. 하지만 남자는 그 멀어짐조차 사랑의 한 형태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지구는 둥글기에, 반대편으로 멀어지는 발걸음조차 결국은 서로의 등 뒤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 된다는 믿음 말입니다.
덧)
극 말미에 이르러,
[에필로그] 는 따뜻한 반전으로 돌아오는데요,
어이없는 실수와 어긋남으로 그녀를 떠나보낸 뒤, 남자는 홀로 남겨진 눈밭 위에서 하염없이 기다림을 이어갔습니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되뇐 것은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지금 그녀는 나에게 더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라는 엉뚱하지만 간절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지구 한 바퀴를 다 돌기라도 한 듯
여자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을 때, 피트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거봐, 멀어질수록 가까워진다니까."
가장 멀리 돌아온 사랑이 사실은 가장 단단한 가까움이었음을 증명하는 순간.
그렇게 <올모스트 메인>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지금 누군가와 멀어져 있다면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가까워지는 중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