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역'에선 열차가 달리지 않는다.

김해 진영 나들이

by정현미

지난 주말엔 창원에서 가까운 김해 진영을 찾았다.

이전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진영역(철도 박물관)을 한 번 더 가보자고 한 건데, 기실 흑심은 딴 곳에 있었다. 여행 전 날, 유튜브를 한참 서핑하던 남편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맛집 리스트를 뽑아 나에게 내밀었다.


당일 아침에 구미가 당기는 대로 가자며 유보했던 선택지는 다음날이 되자 저절로 결장이 되었다. 진영은 가깝기도 하거니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출발 시간을 늦은 오후로 잡은 게 화근이었다. 2개로 추린 맛집중 한 곳인 순대전골집이 거의 1시에 파장을 하는 곳이란 걸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차선바카라으로 순두부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내친김에 유명하다는 만두집을 들러 포장한 후 진영역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식당에 도착했다. 다행히 브레이크 타임이 없었다. 이미 2~3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삼삼오오 식당으로 들어왔다.



국산콩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순두부는 혀 끝에서 감도는 고소함이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깔끔하고 정갈한 찬들과 솥밥을 먹고 나서 부른 배를 잡고서라도 먹게 되는 누룽지 숭늉은 포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다음에 다시 한번 오자며 의견의 일치를 본 후 우린 진영역으로 차를 몰았다.


역 근처에 주차한 후 다음 목표였던 만두집의 위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5시를 넘긴 시각을 보며, 그때서야 우리 몫의 만두가 남아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진영역에서 만두집까진 차로 5분, 도보로는 20분 정도 걸렸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지만 배도 부르고 해서 산바카라 삼아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발길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후회가 밀려왔다. 습기를 동반한 더위가 스멀스멀 몸을 타기 시작하더니 곧 온몸 구석구석을 잠식해 갔다. 하지만 되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와버린 뒤라서 제법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진영읍내를 돌아보는 것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목적지에선 더 큰 실망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명세를 타는 곳이라기에 예상은 했지만 '만두 매진'이라고 써붙인 글귀에 망연자실한 나는, 여전히 열려있는 출입문과 남편을 번갈아 보며 약간의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려 했다.

하지만 얄짤없는 주인의 대답을 듣고서야 현타를 느끼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출발지인 진영역으로 향했다. 습기를 머금은 더위의 공격은 더 심했지만 올 테면 오라지 아이러니하게 무장해제를 한 듯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견딜만했다.




지금은 철도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옛 진영역은 1905년 군용 철도로 개통되어 100여 년 동안 운영되었다고 한다.

경선선의 지선인 마산선 건립시기부터 많은 열차와 사람을 실어 나르며 제 역할을 해오다가 2010년 경전선 복선화 작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지금의 KTX 진영역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폐선되었다. 이대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이곳은 진영 소도읍 재활사업을 통해, 역사는 철도 박물관으로, 그 일대는 공원으로 꾸며져, 근현대 한국사의 일부를 품은 사람들의 휴식처로 널리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진영역 입구에서 더위를 식히느라 잠시 앉았다. 오래전 철도 박물관과 성냥 박물관을 둘러본 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길게 이어진 공원을 산바카라한 추억에 다시 찾은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 해는 졌지만 더위는 가실 즐 몰랐다. 우린 그 위용을 드러내며 우뚝 서있는, 지금은 달리는 것 대신, 이곳의 마스코트며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열차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곳을 나왔다.


차 안의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생각했다. 찬 바람이 불 때 다시 와서 공원을 맘껏 누비리라.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먹지 못한 순대전골과 만두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