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경남 고성으로 출발!(1)

by정현미


7월의 첫 토요일 아침, 마실 물과 휴지등, 최소한의 필수품만 챙겨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우리가 향한 곳은 경남 고성, 얼마 전 남편과 함께 계획한 토요일 당일치기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였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이전처럼 빽빽한 일정 탓으로 시작부터 지치거나,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런 여행은 하지 말자며 애초에 선을 그었다. 그저 가까운 곳에 마실 다녀오듯 가볍게 갔다 오자고 했다.


8시쯤 일어나 평소처럼 외출 준비를 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한 장소로 출발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와 달리 날은 화창했다.

SNS로 검색해서 낙점된 그 식당의 음식 맛은 어떨까? 때마침 울리는 배꼽 알람 시계 소리에서 오랜만에 맡아보는 기대와 셀렘의 냄새가 묻어났다.



50대 초반에 뒤늦게 재개한 사업에서 우린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은 신도시라는 사실 이외에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 외곽에, 당시 거금(?)을 들여 호기롭게 시작한 학원이었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과 결코 같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4~5년의 교육 공백기와 점점 그 주기가 짧아지는 트렌드의 변화는, 아이들의 학습 역량뿐만 아니라 젊은 부모들의 가치관 또한 크게 바꿔놓았다.


굶어도 아이들의 교육엔 진심이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아이들이 하기 싫다면 굳이 시킬 이유가 없다며 그저 31가지 아이스크림 맛 중 하나를 선택하듯 신세대 부모들에게 있어 공부는 차고 넘치는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교육의 비중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 상황의 심각성도 무색하게, 위험의 조짐은 우리 자신에게서 왔다. 세월과 함께 나날이 소진되어 가는 중년의 체력이 정신까지 잠식해 가면서 쉬 지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상황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사업장을 따라 옮겨와 현재 거주 중인 집의 전세 기한이 올 8월 만기를 앞두고 있었다. 최소한 2달 전에 재계약 여부를 알려야 한다기에 6월 한 달 내내 고민이 깊어졌다.

때마침 지인의 소개로 학원자리를 보러 다닌다는 사람까지 만나고 보니 마음은 더욱 스산해졌다.

이 참에 모든 걸 접고 본집으로 돌아가 여행이나 다니며 살자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며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약이 끝난 마당에 전셋집이라도 옮기면 마음이 좀 다잡아질까?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한 두어 달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영화를 알게 되었다.

'박하경 여행기"

사라지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일상에 지친 주인공 박하경이 무언가 깨달은 듯 내뱉는 그 한 마디가 묘하게 가슴에 와 박혔다.


그래, 나도 한 번 해보는 거야. 지금은 시간이 없다고, 피곤하다고, 온갖 핑계를 대며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먼 미래로 미루기만 하고, 그 사이 일상과 세월에 지친 내 몸은 점점 더 노쇠해져만 가니...

그리고 그토록 열망해서, 모든 일을 접고 올인한 여행이 정작 나에게 안 맞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


나는 한동안 방황하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부터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2년의 유예 기간을 갖기로 했다.

지금 사는 집의 전세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면서 그 기간 동안 학원의 존폐 여부를 천천히 논의해 보는 걸로 남편과도 의견을 모았다.

대신, 주말의 하루는 가보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퇴직한 후로 미루기만 했던 것들을 2년의 유예 기간 동안 하나씩 예행 연습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의 시험이 끝난 7월 초 첫 주말, 우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한 주 동안 틈틈이 여행지를 물색하고 하루 전에 대략적인

루트를 정했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고 모처럼 가슴 두근거림도 느껴보았다.


일상이 지루할 때, 탈출하고 싶을 때,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주말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