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

파주 북소리 북페어

by볕뉘

인생은 역시 새옹지마라더니, 파주에서 제대로 배웠습니다.

인생은 늘 새옹지마라고 하지요.


좋은 일이 언제까지나 좋을 수 없고, 나쁜 일이라고 영원히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오는데, 문제는 그 순서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번 파주 북소리 북페어에서도 그랬습니다.


부스 자리 추첨에서 무려 185번!


거의 끝자락이 당첨되었습니다.


'아이고, 나는 어쩜 자리 운도 지지리 없을까.'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가운데로 몰리는데, 이 끝자락에서 바카라을 얼마나 팔 수 있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웬걸!


현장에 도착해 보니 우리 부스 바로 옆에 이벤트 부스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늘이시여!'


끝자리라고 투덜거렸는데 알고 보니 복이 굴러들어 온 자리였습니다.


이벤트에 참여하러 오신 분들 덕분에 많은 독자님들과 바카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예상보다 훨씬 즐거운 사흘을 보냈습니다.


역시 사람 일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니까요.


그렇게 기분 좋게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인생이 또 한 번 새옹지마를 가르쳐 줍니다.


마지막 날 아침이었습니다.


예쁜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나름 분위기도 잡고, 표정도 만들고, 발걸음도 사뿐사뿐.


그런데!


예쁜 건물만 보느라 제 발밑에 푹 파인 턱은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꽈당!


아이고야!


순식간에 우아한 출판사 대표에서 길바닥과 진한 포옹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시지요?


이 나이에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먼저라는 사실을요.


무릎보다 먼저 다친 건 민망함과 창피함이었습니다.


그때 주변에 계시던 분들이 놀라 달려오셨습니다.


"괜찮으세요? 일으켜 드릴까요?"


아이고, 그 마음은 너무나 감사한데 말입니다.


제가 또 한 덩치 하지 않습니까.


괜히 저를 일으켜 주시려다가 어르신 허리까지 나갈까 봐 얼른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잠시만요. 제가 일어나겠습니다!"


부축해 주시겠다는 분들을 정중히 밀어내고, 혼자 낑낑거리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넘어진 것도 창피한데 일어나는 모습까지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 손보다 지게차가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겨우 일어나 옷을 털면서도 제일 먼저 한 일은 주변 살피기였습니다.


'봤을까? 많이 봤겠지? 아, 제발 못 본 척 좀 해주세요.'


사진 한 장 멋지게 남기려다가 온몸으로 파주 땅의 단단함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날 아침부터 꽈당 넘어지고 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몸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민망함의 후유증이 오래가더군요.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넘어진 덕분에 몸을 좀 아껴야겠다 싶어 평소보다 일찍 부스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순차적으로 마무리를 해야 해서 평소대로 라면 거의 끝번으로 자리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끝자리인 줄 알았더니 명당이었고,

멋진 사진을 찍으려다 대자로 넘어졌고,

넘어져 속상했더니 일찍 쉴 명분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새옹지마입니다.


인생이 저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래도 웃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넘어지는 일에도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이 넘어집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고, 때로는 믿었던 마음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때로는 스스로 만든 기대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넘어지는 순간에는 아프고 창피하고 속상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원망도 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넘어짐 덕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낯선 사람이 선뜻 내밀어 주는 손이 얼마나 따뜻한지, 잠시 멈추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별일 아닌 일에도 웃을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무엇보다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도 좋고, 저처럼 괜한 고집을 부리며 혼자 낑낑거리다 일어나도 좋습니다. 조금 늦게 일어나면 또 어떻습니까. 잠시 주저앉아 아픈 곳을 살피고 숨을 고른 뒤 일어나도 괜찮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인생이 잘 사는 인생은 아닐 겁니다.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날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살다 보면 끝자리인 줄 알았던 곳이 명당이 되기도 하고, 행운인 줄 알았던 일이 뜻밖의 불운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 내 앞에 놓인 일이 좋다고 너무 들뜨지도, 나쁘다고 너무 낙심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오늘의 불운이 내일의 행운이 될지, 오늘의 넘어짐이 훗날 어떤 깨달음으로 남을지 우리는 아직 모르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넘어졌을 때 내 손을 잡아 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꽤 살 만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일어났지만 다음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도 좋겠습니다. 혼자 일어나는 것이 꼭 더 씩씩한 것은 아니니까요.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체면도 구기고, 자존심도 다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을 헛디딥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겠지요.
넘어진 자신을 향해 한바탕 웃어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보니 파주에서의 마지막 날도 마냥 속상한 기억만은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독자님들과 바카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지막에는 온몸을 던져 인생 공부까지 하고 왔으니 말입니다.

아이고, 인생아.

가르침도 좋지만 다음부터는 제발 말로 좀 해주렴.


내 몸이 이제 예전 같지 않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