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가끔은 나라는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거울 앞에 선 얼굴보다, 마음속에 앉아 있는 기척을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깝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 앞에서 무너지고, 무엇 때문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일까. 살아온 날이 더해질수록 사람은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줄 알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알아가는 일은 해마다 숙제처럼 때론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마음은 계절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온전히 설명해 주지도 못한다.
성격은 꽤 즉흥적인 편이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도 하고, 앞뒤 재지 않고 무모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꼼꼼한 계획보다는 찰나의 이끌림의 결심으로 길을 나설 때도 많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이 많아 작은 인연에도 오래 마음을 둔다. 누군가 건넨 다정한 한마디를 오래 기억하고, 스쳐 지나간 사람의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때로는 쉽게 웃고, 또 쉽게 아파진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일이 생기면 가진 마음을 남김없이 쏟는 편이다. 적당히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서툴러도 진심이 먼저였고, 결과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미련하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조금 더 계산적이고, 조금 더 냉정한 사람에게 유리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마음을 다하는 일이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살아낸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사람 안에 남음을 믿는다.
내가 바라는 삶은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성공도, 모두의 박수도 아니다. 그저 한 세상 무탈하고 안온하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내가 아끼는 것들이 오래 곁에 머물며, 저녁이 되면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음을 감사할 수 있는 날들의 연속의 마음을 가지고 싶다.
어쩌면 이런 소망은 오히려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늘 조용한 평온보다 요란한 성취를 높이 평가하고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나는 아직 덜 성숙한 어른이다. 누군가에게 당연해지고 상처받는 일이 두려워 깊은 관계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가까워질수록 잃을 것이 많아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기대면 기쁨도 커지지만, 실망 또한 깊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웃는 법을 배웠다. 상처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어 빙빙 제자리를 돌며, 그것이 현명한 방식이라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다. 두려움 또한 살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나의 갑옷임을 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모양의 갑옷을 입고 세상을 건넌다. 누군가는 강한 척하고, 누군가는 웃음으로 숨기고, 누군가는 무심한 얼굴로 버틴다. 나는 조금 깊은 방식이 아닌 적당한 방식으로 나를 지켜왔을 뿐이다. 서툴고 미숙했지만, 그것 또한 나의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나름의 색깔로 세상을 칠하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선명한 원색으로 삶을 그리지만, 아마도 나는 흐린 수채화 같은 사람일 것이다. 금세 번지고, 쉽게 젖고, 겹쳐질수록 깊어지는 색. 남들 눈에는 희미해 보여도 분명 존재하는 색으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좋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최악이라 여겼던 시간이 뜻밖의 선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뭔가를 얻었다고 기뻐하던 것이 금세 잃어버리고, 다 끝났다고 울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했다. 결국 삶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모양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에 더 많이 요동친다. 같은 비를 맞아도 누구는 옷이 젖는다고 불만을 말하고, 누구는 꽃이 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완벽한 날만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좋은 날에는 겸손히 웃고, 나쁜 날에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믿으며 견디는 사람이고 싶다. 상처 없는 삶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다정할 수 있는 삶, 실패 없는 인생이 아니라 넘어지고도 다시 신발끈을 묶는 하루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만히 생각해보곤 해요. 여전히 서투른 게 많고, 수시로 흔들리며, 때로는 찌질한 모습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늘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기도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정이 많고, 매사에 진심을 다하며, 결국은 내 삶을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조금 투박한 색깔일지라도 나만의 방식대로 조용히 세상을 물들이며 살아가는 일. 그게 지금의 나이고, 앞으로도 내가 지켜가고 싶은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