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눈앞이 캄캄했다. 초보자도 사용하기 편리하다더니,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낭패를 보기 딱 좋은 기구였다.
나는 눈썹 숱이 제법 많은 편이다. 유난히 검고 빽빽해서 배추도사처럼 답답해 보인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워낙 화장에는 젬병이라 손질은 엄두도 못 냈다. 지인들이 인상이 바뀐다며 눈썹 문신이라도 하자고 조르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예전에는 파마나 염색을 하면 서비스로 눈썹을 다듬어 주곤 했는데, 이사 온 신도시에서는 그런 정겨운 미용실을 찾기가 어려웠다.
자라나는 새싹처럼 눈썹은 왜 이리 잘 자라는지. 거울을 볼 때마다 삐져나온 털들이 거슬리던 차에, 초보자도 사용하기 쉽다는 말에 홀려 전동 눈썹 정리기를 사고 말았다.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유독 숱이 많은 중앙 부분에 살짝 기기를 갖다 댔다. 그런데 아뿔싸,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0.1초의 찰나를 스쳤을 뿐인데 눈썹 부위가 훤해졌다. 숱을 조금 솎아 내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정중앙이 고속도로처럼 뻥 뚫리고 만 것이다.
참 묘한 일이다. 고작 눈썹 하나 망가졌을 뿐인데 거울 속엔 낯선 이가 서 있었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것 같은 그 얼굴에 황망해하고 있자니, 딸아이가 눈썹연필을 사다 주며 끊긴 부분을 이어 그려보라고 했다. 하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눈썹을 잇는 일은 보통 정성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깔끔하게 눈썹 손질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갑자기 존경스러워 보였다. 휑한 자리를 채워 앞과 뒤를 잇는 일이 이토록 만만치 않을 줄이야.
색을 맞추느라 수십 번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야, 연필로 채운 ‘이음새’가 간신히 눈썹의 형체를 복원해 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를 그 가느다란 선을 보며 혼자 헛웃음을 삼켰다.
지난달, 오랜만에 친정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큰오빠가 시골집을 개조해 지은 별장으로 동생들을 초대한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한번 다녀왔는데, 그사이 오빠는 몰라보게 집을 단장해 놓았다. 허리 굽혀 가꾼 정원의 야생화며, 육 남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마루 깊숙이 들여놓은 넉넉한 탁자까지 오빠의 세심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육 남매를 위해 구석구석 신경 쓴 흔적들을 보니 오빠의 깊은 마음이 읽혔다. 오랜만에 모인 동생들이 그리도 좋은지 오빠는 연신 고기를 굽고 먹을 것을 내놓으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자식들을 바라보는 친정아버지의 눈빛처럼 애틋해 보여 자꾸만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다.
부모라는 구심점이 살아 계실 때는 명절이나 생신이면 일 년에 서너 번은 기어이 얼굴을 맞댔다. 자식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단단한 ‘매개체’이자 든든한 ‘이음새’가 사라지자, 우리는 저마다의 가정을 지키는 독립된 섬이 되어갔다. 각자의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형제는 뒷전이 되기 일쑤였고, 지척에 살면서도 경조사가 있어야 겨우 안부를 묻는 서먹한 사이가 되어갔다. 핏줄을 귀히 여기는 우리 세대도 이럴진대, 외동인 우리 딸 세대의 인연은 훗날 어떤 모양으로 남을지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진다.
장마 소식에 서둘러 잡힌 짧은 만남이었지만, 별장은 금세 떠들썩한 수다로 가득 찼다. 노래방 기계까지 동원되어 목이 터지라 노래를 부르며 형제들은 숨겨둔 끼를 원 없이 발산했다. 점잖던 우리 형제들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어 깜짝 놀라는데, 큰오빠는 벌써 내년 모임엔 프로그램을 제대로 짜서 만나자며 동생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았다.
열 명이나 되는 동생 부부들 먹이고 재우느라 오빠의 뒷모습엔 단잠을 설친 피로가 역력했다. 형제 많은 집 장남으로 태어나 평생 어깨가 무거웠던 큰오빠가, 이제는 부모님을 대신해 끊어져 가는 육 남매의 이음새 역할까지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즐겁게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지던 날, 별장을 통째로 털듯 바리바리 챙겨준 보따리를 싣고 떠나는 동생들의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오빠는 길목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오빠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마운 마음 한편으로, 언젠가 또 이 소중한 이음새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매일 아침 눈썹을 이어 붙이느라 연필 질이 제법 익숙해졌다. 다행히 잘려 나간 눈썹은 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있으니 언젠가는 연필이 없어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육 남매의 우애도 이 눈썹처럼 나날이 깊어지고 자라났으면 좋겠다. 이어 붙인 이음새가 행여 떨어질까 봐 애태우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가 서로의 비어 있는 자리를 기꺼이 메워주는 단단한 이음새가 되어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