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시선이 나를 훑고 지나가는 듯해 눈을 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내가 잠든 순간에도 누군가는 잠들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결에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천장의 묵묵한 시선이 밤마다 알 수 없는 상상을 불러왔다.
나를 따라다니며 삶의 궤적을 묵묵히 담아온 것은 바로 저 천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네모난 하늘을 향해 가끔은 씩 웃어준다. 지난밤 못난 잠버릇과 뒤척임까지 고스란히 지켜본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길로 올려다보면 별것 없다. 그저 반듯한 네모일 뿐이다. 눈에 띄는 장식 하나 없다. 그런데도 참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웬만한 허물은 한 번쯤 눈감아 줄 법도 한데, 이 녀석은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살아오며 이렇게 속 좁고 융통성 없는 존재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어설픈 곡선이라도 품고 있었다면 사정이라도 해볼 텐데, 자로 잰 듯 반듯한 모양새는 오히려 나를 주눅 들게 한다.
한때, 나도 저 완강한 네모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 갑자기 쓰러지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 마음은 늘 절룩거리며 비틀거렸다. 어머니의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니터 수치에 따라 내 감정선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육중한 철문이 굳게 닫힌 중환자실의 상황은 늘 예측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정상이던 혈압이 불과 몇 분 만에 바닥으로 내리꽂히면 병원은 다급하게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사방에서 혼비백산한 가족들이 달려오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모니터의 숫자는 스르르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자식들이 보고 싶어 숫자가 부린 심술 같았다. 조금 전까지 웃던 사람이 금세 주저앉아 통곡해도 아무렇지 않은 그 기이한 공간에서, 나는 매일 영혼을 조금씩 깎아먹었다.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내가 손을 놓으니 집안도 금세 궤도를 이탈해 헝클어졌다. 옷도 벗지 못한 채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차가운 아침을 기다리던 나를, 방 안의 천장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그가 모르는 내 내밀한 삶의 자국이 무엇이 있었을까. 정신을 놓고 걷다 넘어져 부러진 손목에 코끼리 다리만 한 깁스를 하고 끙끙대던 일, 사소한 서운함에 격앙되어 남편에게 목소리를 높이던 일, 불면의 밤이면 위로 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순간조차도 저 네모는 다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우리가 이렇듯 네모난 시선 아래 놓여 살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이라는 돋보기 아래 주인공이 되어 평가받고 재단당하는 일이 흔한 시대다. 슬롯가 만들어낸 안경을 쓴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그 시선 때문에 삶의 바닥으로 밀려난 이들의 쓸쓸함은 누가 헤아려줄 것인가.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무성한 말들 속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연들이 세상의 천장을 어지럽게 뒤덮는 시절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따뜻하게 감싸기보다 손가락질하기 바쁜 차가운 천장 아래에서 나는 가끔 숨이 막히는 듯하다.
그럴 때면 어릴 때 친정집 방마다 있던 그 허술한 천장이 사뭇 그리워진다. 종이 도배지 위로 외풍이 지나간 얼룩이 노랗게 번져 있던 천장. 덧바르고 또 덧발라 누렇게 바랜 그 낡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 육 남매는 누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저마다의 꿈을 키웠다.
사방에 어둑살이 내리고 밤이 깊어지면 안방 천장은 마치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쥐 선생들은 도통 겁이 없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동생과 이불속에서 소곤소곤 비밀 이야기라도 나누는 날이면, 쥐들도 천장 아랫동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찍찍 소리를 내며 참견을 해댔다.
그런데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28색 크레파스가 갖고 싶어 일부러 멀쩡한 크레파스를 부러뜨린 일,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비닐 바카라 커버를 사고 싶어 멀쩡한 달력을 내다 버린 일까지, 지난밤 동생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을 어머니는 신통하게도 다 알고 계셨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쭤보면, 어머니는 “세상엔 비밀이 없단다. 천장 위 쥐 선생들이 다 전해주더구나” 하며 빙그레 웃으셨다.
나중에야 알았다. 비밀을 지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한 동생이 그새를 못 참아 눈뜨자마자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일러바친 것을 말이다. 연필 살 돈으로 군것질하고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쓴다던 동생 자신의 비밀은 쏙 빼놓은 것이 얄미워 부아가 치밀었지만, 어머니는 말하지 않아도 내 속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저 웃으실 뿐이었다.
쥐가 듣고 전해 주었다던 어머니의 그 다정한 거짓말을, 나도 어머니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깊이 이해한다. 그것은 감시가 아니라, 자매들이 다툴까 봐 어린 딸들을 번갈아 감싸 안아 주던 어머니만의 따뜻한 묘약이었음을. 서로의 허물을 따뜻하게 덮어주던 지혜로운 사랑이었음을 말이다.
방 안의 차가운 네모를 다시 올려다본다. 세상의 야박한 시선에 상처받고 돌아와 그 앞에서만은 가면을 벗어던지는 나를 저 천장은 지금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소곤소곤 자매들이 나눈 부끄러운 비밀을 훔쳐 먹고 몰려다니던 쥐 가족이 살던 곳. 얼룩진 도배지 아래 누워 부모님과 함께 가난하지만 소박한 꿈을 꾸던 친정집 안방의 따뜻한 천장이 오늘 밤 유난히 서럽도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