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시흥문학상 수상작
갈색 바탕에 금색 실로 수를 놓은 자태가 예사롭지 않아 절로 욕심이 났다. 병풍처럼 육중하게 공간을 가로막지 않고, 두 조각씩 짝을 지어 놓아 어디에든 무난하게 어울릴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손수 수를 놓은 매듭 끝단이 어찌나 정교한지, 그저 무언가를 가리는 용도로만 쓰기엔 아까울 지경이었다.
온라인 게임에 인사이동이 있고 나니 구내식당도 새 단장에 들어갔다. 새로 부임한 지사장은 안목이 남달랐다. 부임 첫날부터 식당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더니, 팀별로 밖에서 외식하던 관례 대신 식당 내부에 가리개를 설치해 오붓한 식사 공간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인터넷과 가구점을 며칠이나 헤매다 발견한 것이 바로 그 은은한 갈색 가리개였다. 고풍스러운 빛깔은 지하 식당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단숨에 레스토랑처럼 우아하게 바꾸어 놓았다. 가리개 하나 들였을 뿐인데 식당이 환해졌다며 동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언가를 가린다는 것은, 단순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곳을 채우고 분위기를 완성하는 일임을 그때 알았다.
마흔을 넘기니 시간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결혼 20주년이라는 숫자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저 여느 해처럼 꽃바구니 하나 배달되겠거니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이 더우니 메밀국수나 한 그릇 하자는 소박한 제안이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딸아이까지 데리고 나온 남편과 셋이서 단출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선물로 구두나 사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신발 많으니 됐다”며 무뚝뚝하게 일어섰다. 남편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나 역시 볼일을 본 뒤 딸과 함께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분명 늦는다던 남편의 차가 먼저 와 있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남편은 혼비백산하며 당황했다.
“아니, 왜 벌써 와? 좀 더 천천히 오지!”
남편은 나를 따돌리고 혼자서 깜짝이벤트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내가 문을 여는 순간 밀려든 바람을 타고 온 집안엔 알록달록한 풍선들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거실 중앙에는 하트 모양 풍선과 함께 ‘결혼 20주년 축하’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상상도 못 한 풍경에 얼떨떨해지고 있는데,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낯익은 남자가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남편이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이젠 웃어요”라는 자작시를 읊조리던 남편은 이내 김종환의 ‘백 년의 약속’을 서툴게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엉거주춤 서서 울음만 삼키고 있는데, 딸아이는 신이 나서 ‘샤방샤방’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녀가 감쪽같이 모의한 20주년 축하쇼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고 야속하게 눈물만 차올랐다. 가끔 영화에서나 보던 멋진 장면의 주인공이 되고 나니, 나는 되레 입이 얼어붙은 바보가 되었다. 고맙다는 표현 대신 툭 튀어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뭐야, 아이스크림 케이크 다 녹겠네!”였다.
딸아이는 “우리 엄마 정말 애교 없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좀 좋아?”라며 타박을 놓았고, 남편도 내심 섭섭한지 “그러게 말이다. 너희 엄마는 글밖에 모른다. 생전 말로는 표현 못 하고 글로만 쓰는 사람이다”라며 못내 서운함을 덮었다.
그랬다. 지난 20년을 사는 동안 무뚝뚝한 성정 탓에 남편에게 따뜻한 애정 표현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살았다. 타고난 성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늘 불만스러워했다. 왜, 아니겠는가. 강산을 두 번이나 돌리는 시간 동안 서로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상처의 편린이 박혔을까.
부부는 눈빛만 봐도 속내를 안다더니, 내 눈물 바람에 남편의 눈가도 어느새 발그레해졌다. 그 모습을 보니 며칠 전 사들인 가리개 생각이 났다. 지난 20년, 남편이라는 든든한 가리개가 없었더라면 나의 존재감이 이토록 온전했을까.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아등바등 얽혀 사는 동안 딸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반평생을 함께한 남편의 머리칼엔 듬성듬성 흰 눈이 내렸다. 애교 없는 아내를 여자로서 매력 없다 타박하던 남편도, 이제는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지’ 하며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해 준다. 나는 남편이라는 그늘 속에서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했는데, 남편은 내 진심을 알기나 할는지.
말수 적고 잔정 없는 나의 허물을 가려주고 덮어주는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빛날 수 없었으리라. 시댁 어른들께 인정받고 며느리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남편이 버팀목처럼 내 곁을 지키며 나의 모난 구석을 가려준 덕분이었다. 20년을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빛났던 모든 순간의 배후에는 남편이라는 가리개가 있었음을.
가리개는 제 혼자서는 절대 빛나지 않는다. 가려야 할 곳을 가리고, 막아야 할 곳을 막으며 놓일 자리에 맞게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 칙칙했던 구내식당을 우아하게 바꿔놓은 저 가리개처럼, 내 삶을 보석처럼 빛내준 일등 공신은 바로 남편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 그 멋진 가리개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그의 생을 온 마음으로 품어주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