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존재하지 않는 보고서를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AI에게 답을 묻기 전에, 문제를 다시 보라 【16편】
— PART 4.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라 —
"숫자는 고문하면 무엇이든 자백한다. 중요한 것은 그 자백이 어디서 왔는 지다."
— 로널드 코스 (Ronald Coase)
몇 해 전, 제가 쓴 보고서 3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국내 중견기업의 73%가 향후 3년 내 인사제도 전면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경영연구원, 「중견기업 인사제도 실태조사」
숫자가 있었습니다. 기관명이 있었습니다. 조사 제목까지 있었습니다.
믿을 만했습니다. 저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보고 일주일 뒤, 한 임원이 물었습니다. "그 73% 자료 좀 보내 주세요. 다른 데도 쓰려고요."
그때부터 추적이 시작됐습니다. 기록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1단계 조사 제목으로 검색
결과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찾을 수 없음. 비슷한 제목 두 건은 다른 기관 발행
판정 보류 — 제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2단계 기관명으로 검색
결과 유사한 명칭의 연구기관 세 곳 확인. 세 곳의 발행물 목록에 해당 조사 없음
판정 의심 — 기관과 문서가 연결되지 않음
3단계 가장 유사한 기관에 직접 문의
결과 담당자 답변: "저희는 그 주제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판정 확정 — 해당 보고서는 존재하지 않음
4단계 AI에 출처 재확인 요청
결과 "해당 보고서는 실재하지 않을 수 있으며 확인이 필요합니다"라는 답변
판정 처음부터 물었어야 할 질문
네 단계.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반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한 시간 반을 보고서를 쓸 때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문장은 이미 임원 보고에 두 번 들어갔습니다. 그중 한 번은 외부 제안 자료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저는 존재하지 않는 숫자를 근거로 설득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불편한 사실이 있습니다.
73%라는 숫자는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견기업의 인사제도 개편 수요가 높다는 방향 자체는 현장에서 체감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제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맞았다면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운으로 넘어간 보고는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AI가 만든 가장 위험한 문장은 틀린 문장이 아닙니다. 확인되지 않았는데 확인된 것처럼 생긴 문장입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면 대응이 쉬워집니다. 세 가지가 겹쳐서 일어납니다.
AI는 수많은 문서를 읽었습니다. 그 문서들에는 "○○연구원, 2024, 실태조사" 같은 인용 형식이 수없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AI는 출처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형태를 만들어 내는 일은 매우 잘합니다.
형태를 아는 것과 그 문서가 실제로 있는 것은 다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보다 "○○에 따르면 73%"가 더 도움이 되는 답처럼 보입니다. 질문에 답하려는 성질이 빈칸을 메우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 바카라임입니다. "구체적인 수치를 넣어 달라"라고 요청하면 수치가 나옵니다. "출처를 붙여 달라"라고 하면 출처가 나옵니다.
요청한 대로 나온 것입니다. 그 요청에 "확인된 것만"이라는 조건이 빠져 있었을 뿐입니다.
출처를 지어내는 AI를 고치려 하기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하게 만드는 쪽이 빠릅니다.
실무에서 가장 효과가 컸던 습관은 단순했습니다. 근거를 세 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쓸 수 있는 자리를 정해 둔 것입니다.
"중견기업 73%가 개편을 검토 중"은 3급입니다. 이것을 "중견기업의 인사제도 개편 수요가 높다는 지적이 있다"로 바꾸면 쓸 수 있습니다.
숫자를 지우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지지만, 지우지 않으면 문서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문서에 들어간 숫자 하나가 틀리면, 읽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숫자를 의심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있습니다.
"출처가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답이 돌아옵니다. 그 답의 모양을 보면 신뢰도를 거의 바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줄을 특히 기억하십시오. 같은 질문을 두 번 했을 때 출처가 달라지면,
그 숫자는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검사입니다. 10초면 됩니다. 같은 질문을 두 번 하십시오.
"그 숫자의 출처를 다시 한번 정확히 알려 주십시오."
두 번째 답이 첫 번째와 다르면, 거기서 멈추면 됩니다.
보고서나 제안서를 올리기 전에 돌려 보는 목록입니다. 전부 확인하는 데 20분이면 충분합니다.
□ 문서에 들어간 숫자를 전부 표시했는가 — 표시하지 않으면 빠뜨립니다
□ 각 숫자에 1급·2급·3급 등급을 붙였는가 — 3급이 본문에 있으면 수정
□ 1급 숫자의 원본 문서를 실제로 열어 봤는가 — 제목만 보고 넘기지 않기
□ 그 원본의 발행 연도가 3년 이내인가 — 오래된 자료는 현재형으로 쓰지 않기
□ 원본의 조사 대상이 우리 상황과 같은가 — 대기업 자료를 중소기업에 적용하지 않기
□ 같은 주제의 반대 결론 자료를 한 건이라도 찾아봤는가 — 유리한 것만 모았는지 확인
□ 질문을 받으면 30초 안에 원본을 펼칠 수 있는가 — 펼칠 수 없으면 아직 준비 안 된 것
마지막 항목이 가장 실용적인 기준입니다. 회의에서 "그 자료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반드시 나옵니다.
그 질문에 "찾아서 보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순간, 그 안건은 대개 다음 회의로 넘어갑니다.
근거를 확보한다는 것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질문받은 그 자리에서 펼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 주제에 대해 설명하되, 내용을 세 묶음으로 분리해 제시하라.
[확인 가능] 특정 기관의 공개 문서로 확인되는 내용
→ 기관명·문서명·발행연도를 함께 적어라
[일반적 통설] 널리 통용되지만 단일 출처를 지목할 수 없는 내용
→ 숫자를 쓰지 말고 방향만 적어라
[추정] 네가 추론한 내용
→ 추론의 근거가 된 전제를 적어라
주제: [질문]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인 가능으로 분류하지 마라.
출처가 떠오르지 않으면 통설이나 추정으로 내려라.
다음 조건을 지켜 답하라.
1. 출처를 지목할 수 없는 숫자는 쓰지 마라.
퍼센트, 금액, 건수 모두 해당한다.
2. 숫자 대신 방향과 정도로 표현하라.
(늘고 있다 / 상당수 / 일부에서)
3. 숫자가 꼭 필요한 지점에는 이렇게 표시하라.
[확인 필요: 어떤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질문: [질문]
주장: [내가 쓰려는 주장]
두 가지를 동시에 제시하라.
A. 이 주장을 지지하는 자료
B. 이 주장과 반대되는 결론의 자료
A와 B의 개수를 같게 하라. B를 찾지 못했다면
찾지 못했다고 적고, 그 이유를 밝혀라.
마지막에 적어라. B의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 주장의 약한 지점은 무엇인가.
두 번째 프롬프트를 가장 자주 씁니다. 숫자가 빠진 초안은 밋밋해 보이지만, 그 밋밋한 초안이 안전합니다.
숫자는 나중에 제가 직접 확인해서 넣습니다. 그 순서가 맞습니다.
출처를 확인하면 끝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출처가 실재하는데도 틀린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 시점 오류 — 과거 자료를 현재형으로 쓰는 것
2019년 조사 결과를 "현재 ○○%"로 인용하면 사실이 아닙니다.
그 사이 제도와 시장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구분법: 문장에 조사 시점이 함께 적혀 있는가.
⚠ 대상 오류 — 다른 집단의 숫자를 가져오는 것
대기업 1,000곳 조사 결과를 50인 기업 판단에 쓰는 경우.
숫자는 진짜지만, 그 숫자가 설명하는 대상이 우리가 아닙니다.
구분법: 원본의 조사 대상 규모와 업종을 확인했는가.
⚠ 선별 오류 — 유리한 자료만 모으는 것
같은 주제에 반대 결론 자료가 있는데 지지 자료만 인용함.
개별 인용은 모두 사실인데 전체 결론이 왜곡됩니다.
구분법: 반대 결론 자료를 찾는 데 쓴 시간이 있는가.
세 번째가 가장 흔하고 가장 잡기 어렵습니다.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라,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15편에서 다룬 반대 역할이 여기서 다시 쓰입니다. 자료를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반대 자료를 같은 개수로 모으면, 선별 오류는 상당 부분 막힙니다.
몇 해 전,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지역 학교별 독서 지표 분석 자료였습니다. 그 표에 그 학교 이름이 있었고, 옆에 숫자가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학생 1인당 연간 독서량, 지역 평균의 54%.
표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독서 지표 하위 학교에 대해 도서 예산 재배분을 검토함."
회의에서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숫자는 명확했고,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몇 사람은 "요즘 아이들이 바카라을 안 읽으니"라고 했습니다.
국어 교사 한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그 숫자는 무엇을 세서 나온 숫자입니까?"
아무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공문에는 결과만 있었고 산출 방식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그 숫자를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추적은 사흘이 걸렸습니다.
• 교육청 담당자에게 산출 기준을 문의했습니다.
•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 전산 대출 기록 건수.
• 그 학교는 3년 전부터 학급문고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 교실마다 바카라장을 두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꺼내 읽고 제자리에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 대출 기록이 남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분은 2주 동안 각 학급 담임들과 함께 실제 이용 현황을 세었습니다. 학급문고 바카라별 손때, 반납함 기록, 교사 관찰 일지를 모았습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그 학교의 실제 독서량은 지역 평균보다 높았습니다.
그분은 그 자료를 교육청에 제출했습니다. 예산 재배분 검토는 철회됐습니다.
나중에 동료가 물었다고 합니다. 사흘을 들여서 숫자 하나를 왜 그렇게 따라갔느냐고.
그분이 답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바카라을 안 읽는다는 말을, 그 아이들이 듣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숫자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대출 기록은 정말 적었습니다.
틀린 것은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아이들에 대한 평가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근거를 따라가는 일은 정확성을 위한 작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때로 그 일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 됩니다.
이듬해 그 교육청의 독서 지표 양식이 바뀌었습니다. 학급문고 이용 항목이 추가됐습니다.
한 학교의 한 교사가 숫자 하나를 사흘간 따라간 결과였습니다.
출처를 확인하는 일은 내 문서를 지키는 일에서 시작하지만, 끝에서는 그 숫자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됩니다.
지금 작업 중인 문서를 여십시오. 그리고 숫자가 들어간 문장만 찾아보십시오.
그 숫자 하나하나에 이 질문을 해 보십시오.
"이 숫자의 원본 문서를, 내가 직접 열어 봤는가."
열어 본 것은 그대로 두십시오.
열어 보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하십시오. 지금 열어 보거나, 숫자를 지우고 방향만 남기십시오.
숫자 하나를 지우는 일은 문서를 약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서 전체를 지키는 일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 하나가 무너지면, 읽는 사람은 나머지 전부를 의심합니다.
근거를 확보하는 일은 자료를 모으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 전편 돌아보기
15편 「AI에게 반대하게 하십시오」에서는 7분 간격으로 정반대 두 안을 물었더니 같은 AI가 둘 다 칭찬한 대화 기록으로 시작했습니다. AI가 반대하지 않는 구조적 이유, 반대 역할 네 가지, 공격 강도 3단계, 반대를 받을 때의 방어 반응 다섯 패턴을 다뤘습니다. 야간 교대 개편에 혼자 반대해 새벽 네 시의 어르신들을 지킨 요양보호사의 이야기와, 그 요양원이 반대 역할 좌석을 「새벽 네 시의 자리」라 부르게 된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다음 17편 「해결바카라을 고르는 자리에 감으로 앉지 마십시오」에서는 PART 4의 마지막으로 해결바카라 평가 매트릭스를 다룹니다. 세 가지 안 중 하나를 고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효과와 비용 말고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네 번째 축은 무엇인지, 그리고 평가 결과가 내 직감과 다를 때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를 정리합니다.
1. Ronald Coase, Essays on Economics and Economists (1994) — 자료 해석과 인용의 바카라임에 관한 논의
2. Darrell Huff, How to Lie with Statistics (1954) — 참인 숫자가 거짓 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조
3. Tim Harford, How to Make the World Add Up (2020) — 통계를 접할 때의 열 가지 점검 원칙
4. Stuart Ritchie, Science Fictions (2020) — 출처 추적이 실패하는 지점과 재인용의 누적 오류
5. 한국언론진흥재단, 「인용 정확성 실태와 개선 방향」(2024) — 2차 인용 과정의 변형 사례 분석
6. Anthropic, Claude Model Limitations and Citation Practices (2025, claude.ai/docs) |— 출처 생성 현상과 확인 절차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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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Claude와 함께 세계를 읽고, 개인의 생존 전략을 설계하는 25편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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