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완벽한데 신뢰는 깎이는 자리 · HR 담당자의 실무 노트
실무 AI 활용 · 4편 (무료 · 실무 신뢰 편)
상사에게 보내는 이메일,
답장은 두 줄이었습니다
"누가 쓴 거지?"
"다시 써서 보내."
보낸 메일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인사말이 정중했고, 문장이 매끄러웠고, 오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락도 깔끔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어떤 국어 선생님이 봐도 잘 쓴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무는 두 줄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신입사원이 저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장이 이상한가요?"
문장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문장만 있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상사는 당신의 문장을 읽지 않습니다. 당신의 판단을 읽습니다.
AI는 문장을 아주 잘 만듭니다. 그런데 판단은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AI가 쓴 메일은 읽는 순간 묘하게 비어 있습니다. 읽는 사람은 그 빈 곳을 정확히 느낍니다. 무엇이 빠졌는지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빠졌다는 것은 압니다.
이 글은 그 '빈 곳'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메일의 어디까지는 AI에게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통의 가장 큰 착각은,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이다." — 조지 버나드 쇼
조직에서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감각이 있습니다. 메일을 세 줄 때쯤 읽으면 '이거 본인이 쓴 게 아니다'라는 느낌이 옵니다.
그 감각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제가 수백 통의 보고 메일을 받으며 정리한 것은 네 가지였습니다.
네 가지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세 번째입니다.
주어가 흐릿한 메일은 읽는 사람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저는 바카라임지지 않겠습니다." 본인은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닌데도 그렇게 읽힙니다. AI는 단정을 피하도록 학습되어 있습니다. '~로 보입니다', '~일 수 있습니다',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가 기본값입니다. 이 말투는 논문에서는 미덕이지만, 보고 메일에서는 바카라임 회피로 읽힙니다. 신입사원이 가장 많이 잃는 신뢰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갑니다.
상사는 메일을 글로 읽지 않습니다. 네 개의 질문에 답이 있는지를 봅니다. 길어야 15초입니다.
AI는 이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판단을 모르고, 조직의 바카라임 구조를 모르고, 지난 분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당신이 상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메일은 완성됩니다. 네 칸이 비어 있는 채로 매끄럽게 완성됩니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빈 그릇이 예쁘게 포장되어 나옵니다. 받는 사람은 열어 보고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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