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을 조금 앞두고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회사야?”
“응.”
“밥은?”
“아직.”
“오케이.”
뭐가 오케이라는 건지 물어보기도 전에 다시 연락이 왔다.
“나 근처.”
회사 밖으로 나가보니 정말 서 있었다.
“나 보고 싶었구나.”
“밥 먹으러.”
친구가 메뉴판을 펼쳤다.
“여기 맛있을 것 같아.”
“그래?”
“응.”
피식.
이런 사람을 고등학교 때부터 봤다.
서로 가장 예뻤던 시절보다 조금 이상했던 시절을 더 많이 본
사이였다. 앞머리가 망한 날도 봤고, 시험을 망쳐놓고 학교
앞 떡볶이는 잘 먹던 날도 봤다.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굴다가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하던 것도 봤다. 그러니까, 서로 꽤 많은 버전을
알고 있다. 가끔 친구가 말한다.
“너 그때 진짜 이상했어.”
“너도 만만치 않았거든.”
“나는 괜찮았어.”
피식.
그때는 약속하지 않아도 매일 만났는데, 지금은 얼굴 한번
보려면 서로 캘린더부터 연다. 회사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각자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오랜만에 만나면 처음
몇 분은 업데이트 시간이다.
“그래서 그 일은?”
“끝났지.”
“벌써?”
“응.”
몇 가지를 확인하고 나면 금세 예전처럼 된다.
“괜찮아.”
“아닌 것 같은데.”
“조금 안 괜찮아.”
“그럴 줄 알았어.”
힘든 날에는 이유를 끝까지 묻기보다 말없이 한 번 꽉
안아준다. 좋은 일이 생긴 날에는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좋아한다.
“나 있잖아.”
“됐어?”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얼굴이 그런데.”
내가 웃으면 친구도 웃는다. 오래 봤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아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 처음 보는 모습이 나온다. 생각이 달라지고, 좋아하는 것이 바뀌고, 전에는 하지 않던 선택을 한다. 그럴 때마다 예전의 모습에 지금의 사람을 굳이 맞추지는 않았다. “너답네.” 한마디 하고, 지금의 버전을 하나 더 알아갔다. 며칠 전에도 만났다.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근데 우리 진짜 오래됐다.”
“그러게.”
“고등학생 때부터잖아.”
둘이 잠깐 계산하다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계산하지 말자.”
피식.
친구가 휴대폰을 들었다.
“우리 다음엔 어디 갈까?”
“여행?”
“응.”
“좋지.”
방금까지 지난 시간을 세던 사람 둘이 이번에는 앞으로 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음. 오래된 관계의 좋은 점은 과거를 많이 안다는 데만 있지 않았다. 이미 서로의 꽤 많은 버전을 봤는데도 아직 처음 가는 곳이 있고, 처음 보는 모습이 있고, 다음에 할 이야기가 있다. 오래 알아서 더 볼 게 없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다음에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남겨두는 사이. 생각해 보면 오래된 친구보다 이쪽이 조금 더 맞겠다.
오래된 편.
Light,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