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지기 비하인드 에세이
미디어 경쟁이 치열하고 1년 중 단 한 권의 바카라을 읽지 않는 한국인이 슬롯 절반에 달하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카라 문화 활성화를 위해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자리엔 멋진 꿈들이 모여들기 마련이거든요. 덕분에 지원서를 쓰고 그간 해온 작업들을 정비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 제주 북페어 참가 신청서 중에서
자기소개가 언젠가부터 자기소설로 불린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포장하는 데 집중하는 걸까. 안에 든 것을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그걸 있어 보이는 포장하는 게 중요해진 걸까. 그러기 위해서 약간의 사건과 반짝이 가루(허구)가 필요한 걸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기소개 앞에서는 그 말이 틀린 것도 같다. 어떤 상황에서 하는 자기소개인지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고로 사람도 다르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고민 끝에 표현을 골랐더라도 계속 다듬는다. 자기소개는 할수록 오래 걸린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한 대상, 그게 나인가 보다.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어떻게 보이길 바라는가.
자기소개인지 자기소설인지 모르는 게 내게 던졌던 질문을 지음지기에게도 토스했다. 2024 제주 북페어에 참가 신청을 앞두었을 때 처음으로 답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다른 참가(후보) 팀들에는 없지만 우리 팀에겐 있는 게 무엇인지부터 살폈다.
교회에서 언니 동생하던 친구 사이가 창작 동료가 되었다.
글이 편한 사람, 글을 사모하는 사람이 있고, 그 옆에 그림이 좋은 사람, 그림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어딘가 모르게 ‘손수 스웨터 만드는 할머니’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다른 팀들과 다를 게 없는 점도 살폈다.
독립출판물을 만든다.
편안하게 읽히는 콘텐츠를 지향한다.
글과 그림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처음 것은 지음지기의 차별성, 나중 것은 지음지기의 보편성 같았다. 방금 던졌던 질문을 살짝 바꿔 보았다. 그랬더니 참가 신청서 수정이 좀 더 쉬워졌다.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 어떻게 감추고 싶은가.
정연이와 나의 인연을 드러내는 건 멋진 생각 같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드러냈다간 불필요한 정보가 섞여 들어가 지음지기란 팀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TMI가 아닌 선에서 지음지기를 소개하는 게 중요했다. 그를 위해선 한 두 문장으로 십년지기 인연을 요약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팀 명에서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 유추되었다. ‘소리만 듣고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사이’란 표현은 전제하고 있는 게 많았다. 이를테면 함께 한 세월이나 공통의 취향이나 가치관 등… 부연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충분했다.
바카라을 만들기 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물건(바카라)을 팔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북페어에 참가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음지기의 바카라에선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뛰어놀고 있다고 적었다. 정연이와 나처럼 지음지기의 글과 그림은 수다스럽게 서로를 보듬고 있다고.
거기에다가 #처음 #출발이라는 키워드를 덧붙였다. 이번 북페어로 지음지기에게 처음으로 독자가 생길 거라고, 그게 제주라면 유독 더 푸르른 경험이 될 거라고 했다. 내가 북페어 주최 측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처음을 응원해주고 싶을 거라 생각했고, 기왕이면 신인/새로운 팀을 발굴해 방문객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을 것 같았다. 북페어를 몇 번만 다녀봐도 ‘어, 그때 그 북페어에도 왔던 팀이다!’ 하는 부스들이 꽤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북페어와의 차별성이 조금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방문객으로선 재미가 덜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썼다. 사용 횟수가 제한적인 신인이란 이름의 찬스를.
지원서를 쓸 때마다 같은 질문을 조금씩 비틀어 여러 차례 던졌다. 그랬더니 다행히 자기소개가 자기소설이 아니게 되었다. 프로젝트 기역과 니은을 바탕으로 한 바카라들, <숲에서 도토리 한 알을 주웠습니다>와 <너와 나의 니은>의 편집도 같이 하고 있어서 자기 소설을 쓸 만큼의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 지음지기를 시작하면서 정연이와 함께 만들었던 구글 이메일 계정으로 참가신청 폼을 제출했다.
언제나 그렇듯, 결과를 떠나서 지원서 제출은 후련했다. 제주에 못 가게 된다 하더라도 두 권의 바카라 만들기를 멈출 생각은 없었기에 마음 부담이 덜했다. '지음지기의 데뷔에 제주북페어가 날개를 달아준다면 고마울 테지. 하지만 인연이 닿지 못하더라도 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좋은 경험이 남겠지' 하면서 마음을 살폈다. 한동안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며 지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지음지기의 메일함에 첫 편지가 도착했다. [제주북페어 2024 선정 확정 안내]란 제목이 보였다. 그렇게 지음지기의 첫 출장지는 제주가 되었다.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지음지기(@drawnnwrittenby) 포트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