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12년 10월 27일 밀비우스 다리 전투 전야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서쪽 하늘은 피처럼 붉었고, 티베르 강 위로 번지는 노을은 마치 내일 흘릴 피를 미리 비추는 듯했다. 로마 북쪽의 평원에는 수천 개의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병사들이 피운 화덕의 불, 무기 손질을 위해 세운 등잔불, 장교들의 천막 앞에서 흔들리는 횃불. 그 불빛들은 멀리서 보면 별들이 땅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 하나하나가 불안과 공포와 야망으로 타고 있었다.


서기 312년 10월 27일 밤.

밀비우스 다리 전투 전야.

콘스탄티누스는 홀로 천막 밖에 서 있었다.

갑옷은 이미 벗어 두었으나 몸은 여전히 전쟁 속에 있었다. 어깨에는 하루 종일 갑주를 걸친 듯한 무게가 남아 있었고, 손에는 검자루를 오래 쥔 사람 특유의 긴장이 배어 있었다. 그는 멀리 로마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 도시의 기척은 느껴졌다. 제국의 심장. 카이사르들의 도시. 수많은 승자와 패자를 삼켜 온 돌의 괴물.

내일이면 그 문턱 앞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 속에 젖은 흙냄새와 말 냄새, 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디선가 부상병의 신음이 들려왔고, 어디선가 병사들이 일부러 큰소리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웃음이었다. 승리를 믿는 자들보다,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승리를 말하는 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콘스탄티누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천막 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로마 지도와 정찰 보고서, 지휘관들의 의견이 적힌 밀랍판이 놓여 있었다. 다들 같은 말을 했다. 막센티우스의 군세가 많다. 로마 성벽과 도시 민심은 그에게 유리하다. 다리와 강은 위험하다. 내일은 단지 싸움이 아니라 모험이다. 아니, 무모한 도박일지도 모른다.

콘스탄티누스는 그 말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를 떠올렸다. 북방의 거친 군인, 과장 없이 명료한 사람이었다. 정치는 늘 탁했고 궁정은 믿을 수 없었지만, 군대만큼은 눈에 보이는 진실이 있다고 믿던 사람. 그의 죽음 이후, 아들은 군대의 환호 속에서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제국은 하나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아니었다. 황제는 하나가 아니었고, 왕관은 언제나 둘 이상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동방에도, 서방에도, 궁정마다, 군단마다 제각기 ‘합법적’ 황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로마에는 막센티우스가 있었다. 로마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자. 원로원과 민중을 손에 쥐고, 전통과 신들의 이름을 방패로 삼은 자.

반면 자신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에서 군대의 사랑을 받은 장군. 승리로 자신을 증명해 온 사람. 그러나 아직 완전히 로마를 소유하지는 못한 사람.

그는 문득 씁쓸하게 웃었다.

황제가 되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로마를 다스리려면 먼저 로마 앞에서 죽지 않아야 한다.


발소리가 들렸다. 천막 옆에서 부관이 조심스레 멈추었다.

“폐하.”

“말하라.”

“정찰병이 돌아왔습니다. 막센티우스 군이 내일 출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리 쪽 방어도 강화된 듯합니다.”

“알겠다.”

부관은 물러가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병사들 사이에 말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지?”

“로마가 우리를 삼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막센티우스는 도시 안에 틀어박혀 버틸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나와 싸우려 한다고… 그것이 어떤 징조인지 다들 수군댑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관은 잠시 더 기다리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쪽 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푸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별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자 오래전, 아직 젊은 장교에 불과하던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정. 권력은 화려했고 사람들은 사나웠다. 누구도 영원하지 않았고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신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만, 정작 그 신들이 누구 편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제국은 수많은 제단을 세웠으되, 그만큼 많은 공포도 함께 길렀다.

그는 신들을 믿어 왔다. 정확히는 제국의 질서를 떠받치는 신들의 이름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다. 군대는 그렇게 움직였고 황제는 그렇게 통치했다. 태양신도, 승리의 여신도, 로마를 지키는 옛 신들도 필요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기도는 자주 피 냄새에 삼켜졌다. 승리한 자의 신이 참신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하게도, 그는 다른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리스도.

갈리아의 도시들, 궁정의 변두리, 군대의 막사, 상인들의 입에서 떠돌던 이름. 황제들의 박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신. 제국의 신전에서는 향을 피우지 않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몇몇은 바보 같았고, 몇몇은 광신적이었지만, 또 몇몇은 설명할 수 없는 평정을 지니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잊지도 못했다.

그는 천천히 평원 끝으로 걸어갔다. 경호병들이 거리를 두고 따랐다. 밤바람은 더 차가워졌고, 말들은 가끔 코를 울렸다. 어느 언덕 위에 이르자 야영지의 불빛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불길이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하늘 한가운데, 해가 이미 진 자리 위로 이상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눈의 피로가 만들어 낸 잔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졌다. 창백한 빛의 선들이 서로 교차하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불타는 표지가 새겨지는 듯했다. 수직과 수평, 혹은 꺾인 두 획이 서로 만나는 형상. 그리고 그 주변으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자가 빛처럼 떠올랐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변이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바람도, 말의 울음도, 병사들의 기척도 멀어진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이고 하늘만 바라보는 듯했다.

“저게 보이느냐?”

뒤따르던 장교 하나가 숨을 삼켰다.

“예… 폐하. 저것은…”

그러나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빛나는 표지는 어둠 위에 걸린 불꽃 같았다. 어떤 신전의 상징 같기도 했고, 어떤 죽음의 표식 같기도 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집중을 느꼈다. 그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지만 마음 한가운데에는 칼날 같은 고요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빛 아래에서 말이 아닌 말이, 소리가 아닌 소리가 그에게 다가왔다.

“이 표징으로 승리하리라.”

누가 말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바람이 말한 것도 아니고, 장교가 속삭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들었다. 아니, 들은 것보다 더 깊게, 그것은 그의 안에 각인되었다.

이 표징으로 승리하리라.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하늘에서 드리운 보이지 않는 줄이 그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눈앞의 표지는 잠시 더 빛나다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별들은 다시 별자리로 돌아갔고,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의 얼굴을 되찾았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이전의 밤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장교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누구도 먼저 말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방패를 가져오게 하라.”

“폐하?”

“지금 본 그 표징을 그려 넣을 것이다.”

장교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 신의 상징입니까?”

콘스탄티누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아직 그 이름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랜 의심과 단편적인 기억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순교자들의 눈빛, 그리스도인들의 침묵, 제국의 칼날에도 꺼지지 않던 이상한 확신. 그리고 조금 전 하늘에서 본 빛.

그는 낮고 또렷하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표징이다.”


말이 끝나자 장교들 몇몇의 표정이 흔들렸다. 놀람인지 두려움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보다 명령이 먼저였다. 곧 장인들과 병사들이 불려 왔고, 횃불 아래에서 방패와 군기에 낯선 표식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서로 교차하는 글자, 그리스도의 이름을 압축한 듯한 형상.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수군댔다. 그러나 명령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날 밤, 콘스탄티누스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천막 안에 누워 눈을 감으면 하늘의 빛이 다시 떠올랐다. 환상이었을까? 피로가 만들어 낸 환각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신의 계시였을까?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확신보다 더 강한 것이 있었다. 내일의 전투가 단지 왕좌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감각. 제국의 오래된 질서가 갈라지고, 그 틈새로 새로운 무엇이 밀려들고 있다는 예감.

새벽이 오기 직전, 그는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빛나는 형상이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말없이 그 표징을 가리켰다. 마치 “잊지 말라”는 듯, “두려워 말라”는 듯. 콘스탄티누스는 꿈속에서 검을 쥐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검보다 표징이 더 선명했다.

그는 해 뜨기 전 일어나 갑옷을 입었다.

막사의 바깥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말들은 안장을 얹고 있었고, 병사들은 이미 정렬을 시작하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군기 끝에 새겨진 낯선 표식이 새벽빛을 받아 번뜩였다. 병사들은 그 깃발을 쳐다보며 술렁였다. 어떤 이는 십자가라 불렀고, 어떤 이는 황제의 새 부적이라 말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말을 탔다.

그의 시선은 강 쪽으로 향해 있었다. 멀리 막센티우스의 군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갑옷들이 햇빛을 받기 시작했고, 로마의 군기는 위엄 있게 펼쳐졌다. 상대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신탁과 점술, 도시의 힘, 전통의 권위가 그 편에 있다고 믿는 얼굴들이었다.

반면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더 단단하고, 더 말이 없었다. 오래 원정에 익숙해진 군인들. 추위와 먼지와 긴 행군에 단련된 자들. 그들은 황제의 새로운 표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은 느꼈다.

그는 군대 앞에 나아가 짧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로마를 향해 싸운다. 그러나 약탈을 위해서가 아니다. 제국을 위해서다.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의 오만을 무너뜨리고, 질서를 되찾기 위해 싸운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늘이 우리와 함께한다.”

그 마지막 한마디가 병사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전투는 빠르게 시작되었다.

먼저 창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어 기병대가 측면을 크게 돌아 적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밀비우스 다리와 티베르 강변은 지나치게 좁았고, 그 협소함은 수적 우위를 오히려 혼란으로 바꾸고 있었다. 막센티우스의 군대는 로마의 권위와 방어선에 의지해 버티려 했고,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압도적인 돌진과 기세로 그것을 밀어붙였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충돌음, 말들이 내지르는 비명, 병사들의 함성과 신음, 그리고 강물로 떠밀려 떨어지는 자들의 절규가 뒤엉켜 전장을 가득 채웠다.

콘스탄티누스는 앞줄 가까이에서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는 장군이었고, 승리가 어디서 기울어지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상대의 대형이 스스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았다. 후퇴와 진격이 뒤엉키며 막센티우스의 군이 다리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로마를 등지고 나온 자들이 이제 로마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서로를 짓밟고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무너집니다!”

실제로 그랬다.

한순간의 균열이 삽시간에 전면적인 붕괴로 이어졌다.

막센티우스의 호위대가 무너지자 공포는 군 전체로 번졌다. 사람들이 다리로 몰려들었고, 임시로 이어 놓은 구조물은 중량과 혼란을 견디지 못했다. 나무와 쇠사슬이 뒤틀리며 끊어졌다. 수많은 병사와 말이 강물 속으로 추락했다. 갑옷 입은 몸은 물 위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티베르 강은 검은 입을 벌리고 패주하는 자들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그 혼란 한가운데서, 막센티우스도 사라졌다.

전투가 끝났을 때, 강 위에는 부서진 방패와 창자루와 시체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로마로 향하는 길은 열려 있었다. 승리는 믿기 어려울 만큼 완전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환호 속에서도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말 위에 앉은 채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해는 이미 높이 떠 있었고, 병사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장교들은 축하를 고했고, 군기들은 바람에 펄럭였다. 그리고 그 군기 위에는, 바로 그 표징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 형상을 바라보았다.

이 표징으로 승리하리라.

그 말이 다시 마음속에서 울렸다. 이제 그것은 예감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 승리가 단지 한 전투의 승리가 아님을 어렴풋이 느꼈다. 오늘 무너진 것은 막센티우스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제국의 공포와 신들의 질서, 피로 지탱되던 권력의 언어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모든 것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제국은 여전히 잔혹했고, 궁정은 여전히 불안했으며, 정치의 계산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시작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를 향해 말을 돌렸다.

도시의 문은 곧 열릴 것이다. 원로원은 새 황제를 맞이할 것이고, 민중은 어제까지의 주인을 잊은 척 새로운 이름을 외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 승리의 기억 위에 자기 시대를 세울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미래의 중심에는 여전히 한밤의 하늘이 남아 있었다.

어둠 위에 타오르던 빛.

이름을 알지 못한 채 먼저 본 표징.

승리를 약속한 낯선 신의 침묵.

그는 낮게,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다.

“당신이 나를 택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이제야 당신을 본 것입니까.”

대답은 없었다.

다만 바람이 군기를 흔들었고, 그 위의 표징이 햇빛 아래에서 잠시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로마의 역사는, 그 순간부터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