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이 좀더 사랑받기 위한 거 아냐?
영화 <비포 선라이즈>
시작은 이러했다. 형제자매 사이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이 기울어지는 것을 볼 때면 애꿎은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마음. 질투에서 비롯된 사랑이었다.
어릴 때의 나는 사랑이 한정된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 더 많이 가져가면, 내 몫은 줄어드는 줄 알았다. 부모님의 시선이 나를 오래 향해 있으면 안심했고, 다른 곳으로 향하면 괜히 불안해졌다. 사랑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쥐고 있어야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잘했다”는 말 한 마디와 따스한 손길을 받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순수한 마음에 시작된 행동은 없었다. 배려, 나눔, 존중, 기다림 전부 인정욕구에서 시작된 사랑에 대한 갈증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랑받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닐까 하고. 어떤 아이는 조용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어떤 아이는 밝게 웃는 방법을 배우고, 어떤 아이는 계속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사랑받기 위해서.
학교라는 작은 슬롯에 가면서부터는 인기를 얻고 싶었다. 많은 친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교실에는 이상한 질서가 있었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척했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누가 더 웃긴지, 누가 더 많은 친구와 다니는지, 누가 더 사랑받는 사람처럼 보이는지. 그 시절의 우리는 아직 어렸지만, 이미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확인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사랑받는 사람은 쉽게 외로워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성의 사랑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점점 거리가 생기고, 혼자가 되어가는 외로움에 내 편이 필요했다. 존재 자체로 무한한 사랑을 갈구했다.
전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기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오래 이해받고 싶었다. 하루를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내 표정 하나만으로 알아봐 주는 사람. 세상이 다 멀어지는 날에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
하지만 사랑은 생각보다 자주 불안과 닮아 있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오래가지 않았고, 사람은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괜히 서운해지고, 괜찮은 척하면서도 자꾸 상대의 말투를 들여다봤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 자체보다도,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텅 빈 속을 채워주고 싶다. 나의 속을.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바랐다. 부족한 마음도, 외로움도, 흔들리는 자존감도 전부 관계 속 사랑으로 메워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을 타인으로 견디는 일은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왜 이렇게 사랑에 목마른 사람처럼 살아왔는지. 왜 늘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 안심하려 했는지.
아마 사람은 평생 사랑을 배우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 사랑을 받는 방법, 그리고 끝내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방법까지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이 정말 조금 더 사랑받기 위한 것은 아닐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