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시작된 디자인

칼 라르손의 그림이 이케아를 떠올리게 한 이유

byMansongyee


일본 우에노 공원 안에 자리한

도쿄도 미술관(東京都美術館, Tokyo Metropolitan Art Museum)에서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북유럽의 신비로운 빛》전을 보았을 때였다.


1870년대 후반, 스웨덴의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향했다. 그들은 리얼리즘과 외광파 기법을 배우고 돌아와 자신들만의 풍경과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친 자연, 짧은 여름의 빛, 긴 겨울의 저녁,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


이번 전시의 테마인

'일상의 반짝임(日常のかがやき)' 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담고 있었다.


그림들은 북유럽 특유의 빛과 자연,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오래 발길을 붙잡은 그림이 있었다.


칼 라르손(Carl Larsson)의 《Getting Ready for a Game》(1901).


그림 속 아내 카린과 아이들은 이웃들과 즐길 카드 게임 비라(Vira)를 위해 차와 술을 준비하고 있다.

정성껏 차려진 식탁과 촛불, 오일램프의 은은한 불빛은 바깥의 차가운 겨울 풍경과 대조되며 집 안의 온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칼 라르손은 거창한 역사나 영웅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가족의 시간,

낯익은 사람들,

반복되는 하루를 그렸다.


그는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한 집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하는 듯하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입니다."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보다 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햇빛이 드는 창가,

정갈하게 놓인 의자,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마룻바닥,

식탁 위의 꽃 한 송이.


그의 그림에는 특별히 비싼 물건도,

화려한 장식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풍요롭다.


그 풍요로움은 물건의 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흔적이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 문득 한 브랜드가 떠올랐다.

이케아(IKEA).


생각해 보면 조금 엉뚱한 연결이다.

한쪽은 100여 년 전의 수채화이고,

다른 한쪽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거대한 가구 브랜드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닮은 기운이 있었다.

왜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 조금 더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칼 라르손의 그림 속 공간은 사실 그의 아내 카린 라르손(Karin Larsson)이 만들어 낸 세계였다.


카린은 원래 화가를 꿈꾸었지만 여덟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집 안으로 가져왔다.

그녀는 커튼을 만들고, 식탁보를 짜고, 쿠션을 수놓았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무겁고 장식적인 빅토리아 양식 대신 밝고 단순하며 실용적인 공간을 추구했다.


햇빛을 최대한 들이기 위해 벽을 밝게 칠했고, 생활에 꼭 필요한 가구를 직접 설계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가족이 함께 머무르기 편한 구조를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북유럽 인테리어의 특징들이 이미 그 집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칼이 그 공간을 그림으로 남겼다면,

카린은 그 공간 자체를 디자인했다.


한 사람은 삶을 그렸고,

한 사람은 그 삶이 머물 자리를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집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케아가 떠오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케아가 판매하는 것은 단순히 가구가 아니다.

실용성, 효율성, 단순함.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케아는 대량생산의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이고, 라르손의 집은 단 하나뿐인 생활공간이었다.


둘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비슷한 질문이 흐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화려한 건축물보다 식탁을 먼저 바라보게 만들고,

비싼 장식보다 창가의 의자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집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공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현대인은 종종 멋진 소파를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칼 라르손의 그림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요한 것은 소파가 아니라 그 위에 누울 아이들이고,

중요한 것은 식탁이 아니라 그 둘레에 모여 앉을 사람들이다.


가구보다 먼저 삶이 있고,

디자인보다 먼저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공간은 낯선 나라의 집인데도 어딘가 익숙하다.


누군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바카라을 읽고,

아이들은 제 할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 평범한 풍경이 아무일 없다는 듯 조용히 이어진다.


전시장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남았다.

어쩌면 어떤 브랜드의 시작은 공장이 아니라 식탁일지도 모른다.


한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무엇을 편안하다고 느꼈는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했는지.


그 오래된 취향의 뿌리가 세월을 건너 하나의 디자인이 되고,

그 디자인이 다시 세계 곳곳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칼 라르손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나는 뜻밖에도 이케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가구가 아니었다.

오래전 한 가족이 만들어 놓은 생활의 풍경이었다.



좋은 디자인은 먼저 의자를 만들지 않는다.

그 의자에 누가 앉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이 시선은 도쿄도 미술관에서 시작되었다.
『지구 위를 한 바퀴 돌다 2편』

28화 <북유럽의 빛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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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디자인 #식탁에서시작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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