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에 남은 아내와의 추억
요즘 가을 날씨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카이블루빛 하늘은 유난히 더 높아 보인다. 말도 아닌 나도 최근 체중이 조금 늘었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살면서 요즘처럼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보고 싶은 아내가 그 어디엔가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하늘로 눈이 간다.
연휴 다음 날인 오늘은 아버지 치과 진료 예약이 있어서 이번 연휴 내내 서울 아버지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예약 시간을 30분쯤 앞두고 96세 아버지께서 갑자기 치과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결국 예약을 취소했다.
오후에는 서울에서 또 다른 약속이 있어 용인 집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생각지 않게 반나절의 빈 시간이 생겼다.
아버지 집에서 가까운 한강공원으로 산바카라을 나갔다. 아내와 함께 자주 산바카라하던 곳이어서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찾는 곳이다. 아내와의 추억이 너무 많이 서려 있는 동네에서 계속 사는 것이 힘들어 멀리 이사까지 했는데, 정작 나는 아직도 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완전히 떠나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틀 전에도 같은 곳으로 산바카라을 나갔었다.
그날은 연휴라 행사가 열리고 있어 공원 곳곳에 임시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연휴가 지난 오늘 다시 가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부스들이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한강공원에 갈 때마다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사람이 거의 없는 잔디밭을 보는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한적하고 차분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그 고요함에 잠겨 있으니 또다시 아내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내와 수도 없이 찾았던 공원이었다. 봄에는 꽃을 보려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려고, 드론쇼를 보려고 찾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냥 걷기 운동을 하러 갔다.
그 많은 기억 가운데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맨발 걷기'다.
아내와 한강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자주 했던 것은 2023년이었다. 당시에는 맨발 걷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온라인이나 신문, 방송을 통해 맨발 걷기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와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암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특히 ‘맨발로 땅을 밟으면 지구의 전자가 몸으로 들어와 염증을 줄이고 혈액을 정화한다’는 이른바 어싱(earthing) 효과가 많이 소개됐다. 지금 다시 찾아보면 그런 치료 효과가 충분히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맨발 걷기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면 발의 근육을 사용하고 균형감각과 감각을 자극하는 효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던 아내에게 그런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을 테니까.
아내가 먼저 맨발 걷기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실행에 옮겼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재활치료에 동행하는 일이 많았는데, 아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서라도 한강공원에 가서 맨발로 걸었다. 물론 내가 시간이 될 때는 함께 걸었다.
공원 안의 맨발 걷기가 가능한 곳에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걷고 있었다.
막상 해보니 발바닥이 꽤 아팠다. 나는 걷다가 발바닥이 너무 아프면 벤치에 앉아 묵주기도를 하며 아내가 걷기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아내는 나보다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이 훨씬 절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이 아파도 참고 나보다 훨씬 열심히 걸었다.
한 시간쯤 맨발로 걷고 나면 공원 안 수돗가에서 발을 씻었다.
나와 함께 걸었을 때에는 내가 아내의 발을 씻겨주곤 했다. 수돗가 옆에는 어르신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의 플라스틱 의자를 잠시 빌려왔다. 아내를 의자에 앉히고 발을 물로 깨끗이 씻긴 뒤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다시 양말과 신발을 신겨주었다. 물론 아내도 내 발을 씻어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사람이 있었나 보다.
어느 날 처형이 아내와 함께 맨발 걷기를 하러 갔는데 한 아주머니가 처형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저분 남편분은 오늘 안 오셨나 봐요? 매번 아내 발을 자상하게 씻어주시던데... 저는 환자인데 우리 남편은 어디서 뭘 하는지 한 번도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부러웠어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웃었다.
괜히 나 때문에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 집에 가서 구박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아내의 발을 씻어주던 내 마음이 생각난다.
물을 끼얹고 발가락 사이까지 씻어주고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면서 나는 아내의 병이 낫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바랐던가.
그 마음만큼은 아내에게도 분명히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수돗가에는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이 있다.
어느 날 아내가 캐나다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지인과 함께 맨발 걷기를 한 뒤 나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식당 앞에서 만난 지인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공원 수돗가에 두고 온 것 같다며 당황했다. 업무에 필요한 자료가 많이 들어 있던 데다 새로 산 고가의 휴대전화였다.
아내는 식당에 남겨두고 그 지인과 공원으로 거의 뛰다시피 되돌아갔다.
그런데 수돗가 옆 벤치 위에 휴대전화가 그대로 놓여 있는것이 아닌가!
거의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그날은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정반대의 경험도 했다.
내가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던 중국인 유학생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아이패드가 든 가방을 두고 나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졸업 논문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들어 있어 무척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가방 안에는 연락처까지 있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한 시간 가까이 놓여 있던 고가의 휴대전화가 그대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연락처까지 들어 있던 가방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 두 경험만으로 한국인이 정직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어느 나라 사람인가의 문제라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도덕과 윤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신독(慎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남이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자신의 양심과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자세를 뜻한다. 누가 지켜보고 있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기대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우리에게 한강공원은 무엇보다 맨발로 함께 걷던 곳이었다.
우리는 한강공원뿐 아니라 아차산, 석촌호수, 분당중앙공원에 조성된 황톳길을 찾아다니며 맨발로 걸었다.
심지어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도 맨발 걷기를 했다.
맨발 걷기를 시작한 것은 여름이었는데 겨울이 되자 땅이 너무 차가웠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걸어보기도 했지만 한겨울의 맨땅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인터넷을 검색해 신발을 신고 걸어도 어싱 효과가 있다는 보조용품을 사보기도 했고, 집 안에는 접지된 발판을 깔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2023년 한 해 동안 열심히 했던 맨발 걷기는 겨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들해졌고, 이듬해 봄이 왔을 때에도 다시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맨발 걷기가 아내의 치료에 실제로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병이 낫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있다면 해보고 싶었다. 아내는 맨발로 한 걸음이라도 더 걸으려 했고, 나는 그런 아내를 따라 함께 걸었다. 그리고 걷기가 끝나면 아내를 의자에 앉혀 발에 묻은 흙을 씻어주고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오늘 한강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하는 것은 맨발 걷기의 효능이 아니었다.
아내의 발을 씻겨주던 내 손과,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발을 맡기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맨발 걷기의 효과를 믿었던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간절함으로 우리는 함께 걸었다.
지금은 그 길을 나 혼자 걷는다.
가끔 걸음을 멈추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내가 그 어디엔가에서 내가 걷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아서다.
맨발로 함께 걷던 시간은 끝났지만 그때 아내의 발을 씻겨주며 품었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그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 아내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