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극이 꺼진 뒤에 마주하는 나
일주일을 다 채우기도 전에 나의 감각은 부재를 맞이한다.
어둠은 색의 부재가 아니듯, 침묵 역시 소리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밀도와 무게를 가지고 공간을 채운다. ‘없음’이라고 부르는 상태는 사실 그 공간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현존(現存)이다.
이런 감각의 부재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을 감각하는 일에 지쳐 있으면서도, 감각이 사라지는 순간 시작되는 감각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무지하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빛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빛을 받아들이던 눈동자의 떨림이 멈추고, 대신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미풍의 촉각과 귓가를 스치는 내면의 숨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감각의 부재는 무(無)로의 추락이 아니라, 거대한 차원의 전환이다.
‘느낀다’고 믿는 많은 것들은 실상 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에 불과하다. 붉은색을 보면 열정을 느끼고, 차가운 감촉에는 몸을 서리는 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인류의 생존 기억이 남긴 유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공된 자극들이 모두 꺼진 상태, 즉 완전한 감각의 부재 속에 놓일 때 비로소 개별적인 인간의 사유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빛이 차단된 아침에 깨어난 이는 시간을 피부의 온도 변화로 읽어낸다. 소리가 지워진 거리에서 걸어가는 이의 발걸음은 자신의 체중과 지면이 맺는 가장 정직한 대화가 된다. 외부에서 쏟아지던 감각의 폭포수가 멈추면,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존재가 일으키는 미세한 진동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직 감각이 부재할 때만 초대받을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자기 고백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느라 자신을 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소리를 들으느라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감각의 과잉은 삶을 타인의 세계로 유인하지만, 감각의 부재는 인간을 가장 근본적인 고독의 중심에 앉힌다. 그 고독은 쓸쓸함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언어로 덧칠해지지 않은, 자신이라는 존재의 순수한 원형과의 만남이다.
결국 감각의 부재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더 깊은 방식으로 세상과 재연결되는 역설의 통로다. 시각을 잃은 뒤에야 우주의 윤곽을 비로소 마음으로 그려내고, 청각을 잃은 뒤에야 세상 모든 소음 뒤에 숨은 가장 거대한 평화를 깨닫는 것처럼. 비어 있음으로써 가득 차고, 사라짐으로써 마침내 존재하는 것. 감각이 모두 끊겨 나간 그 아득한 정적 속에서, 인간은 ‘있음’의 진정한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낸다.
그렇다면 감각이 완전히 꺼진 그 정적 너머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자극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의식의 앙상한 뼈대다.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더 이상 외부의 풍경을 실어 나르지 않을 때, 마음은 비로소 인지라는 이름의 환영에서 벗어난다. 외부를 향해 뻗어 있던 모든 안테나가 부러져 나간 뒤에야 시작되는 온전한 내부로의 귀환이다.
이 귀환은 평화롭기만 한 여정이 아니다. 아무런 자극도 유입되지 않는 완전한 암흑과 정적 속에서 인간은 종종 극심한 현기증을 느낀다. 마땅히 의지해야 할 외부의 표지판이 지워졌을 때, 비로소 자기 존재의 무게를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붙잡을 손잡이도, 바라볼 이정표도 없는 공간. 그곳에서 비로소 자아는 타인의 시선과 슬롯적 기호로 만들어진 허물을 벗어던진다.
이 텅 빈 상태야말로 모든 창조와 사유가 싹트는 진정한 원초의 토양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 무엇이든 새로이 깃들 수 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비로소 가장 근본적인 울림에 집중할 수 있다.
결국 감각의 완전한 부재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자극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아니라, 모든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무언가를 견뎌내고 사유하는 그 자체라는 것을.
비어 버린 무대 위,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모두 떠난 뒤에야 배우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듯, 감각이 지워진 고요 속에서 인간은 드디어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실체와 마주 선다.
결국, 감각의 부재가 다다르는 마지막 지점은 비움이 아니라 완전한 수용이다.
모든 촉각이 무뎌지고, 눈앞의 시야가 닫히며, 귀를 채우던 세상의 소란이 마침내 침묵으로 가라앉을 때, 인간은 비로소 세상과 나를 구분 짓던 경계선마저 희미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나를 둘러싼 외부를 감지하려 애쓰던 과잉의 감각들이 내려놓아진 자리에, 비로소 존재하는 모든 것과의 깊은 동화(同化)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소멸이 아니다. 자극에 얽매여 있던 작은 자아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정적 그대로의 우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보이지 않기에 온 우주를 품을 수 있고, 들리지 않기에 모든 침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감각이라는 비좁은 창문을 닫고서야 비로소 가닿는, 거대한 무한(無限)의 영역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모든 감각이 하나씩 꺼져갈 때, 그것은 결코 빼앗기는 과정이 아닐 것이다. 지친 감각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온전히 안식에 들어가는 순간이자, 비로소 존재 그 자체의 순수한 평화로 돌아가는 마지막 문이다.
감각이 모두 지워진 그 아득한 정적 속에서, 마침내 하나의 완성된 마침표가 찍힌다. 그리고 그 침묵은 그 어떤 화려한 언어보다 더 묵직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을 가만히 보듬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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