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위한 찬가
기차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간이역의 플랫폼에는 늘 고유한 종류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서 있는 사람의 옷깃을 흔들지만, 결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풍경을 흔들 뿐, 풍경의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나는 국경을 건너는 야간열차의 창문에 이마를 대고 밤의 지평선을 바라본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간헐적으로 반짝이던 타인의 창불들, 이름 모를 마을의 등대, 그리고 짧게 스쳐 간 이정표들. 그 모든 빛은 순간적으로 내 눈동자에 담겼으나 단 한 순간도 나의 것이 된 적이 없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지나간다는 것은, 머물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어디론가 속하기 위해 애쓴다. 특정한 도시의 주소지, 누군가의 마음, 혹은 일정한 집단의 이름표 아래에 자신을 묶어두려 한다. 소속감은 안도를 주고, 안도는 두려움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거대한 현상 앞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방인이다. 청춘은 지나가고, 열정은 마모되며, 한때 삶의 전부였던 사랑조차도 언젠가는 아득한 기억의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다. 지나가는 것들은 어제에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다가올 내일에 온전히 속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이라는 찰나의 칼날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을 뿐이다.
나무는 계절을 고스란히 통과시키지만, 어떤 계절에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봄의 꽃잎을 떨어뜨릴 때 나무는 서러워하지 않고, 겨울의 가호 없는 추위 속에서도 자신을 겨울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무가 푸른 것은 여름에 속해서가 아니라, 단지 여름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만난 절망에 너무 깊이 뿌리를 내리면, 우리는 그것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통과하는 자는 통과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지나간다는 것은 속하지 않는 것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를 의미한다.
어둠이 깊어지면 모든 색채는 경계를 잃고 하나의 어둠으로 섞인다.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고향의 흙에도, 지나온 날들의 문장에도, 앞으로 다가올 추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이 마음.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정직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머물지 않고 지나쳐 가기에 눈부시다. 노을이 하늘에 속하지 않고 순식간에 스러지듯, 강물이 강둑에 속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듯.
지나간다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일. 그것은 그리하여 마침내 온 세계를 온몸으로 통과해 내겠다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서약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은 유난히 번잡하지 않다.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눈동자 속에 담긴, 무언가를 통과해 온 자만의 묵직한 정적을 읽어낼 뿐이다.
길 위에서 만난 두 명의 이방인은 서로에게 주소를 묻지 않는다. 어차피 서로가 머무는 곳은 잠깐의 쉼터일 뿐이며, 내일이면 다시 각자의 바람을 따라 떠나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들이 나누는 그 한 잔의 따뜻한 차, 짧은 눈인사는 그 어떤 연대보다 깊고 투명하다.
소속을 요구하지 않는 관계, 서로를 소유하려 들지 않는 문장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나는 너에게 속하지 않고, 너는 나에게 속하지 않기에,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온전한 하나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다.
모든 지나가는 것들은 끝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 자신만의 궤적을 남긴다. 바람은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며 소리를 남기고, 비는 땅을 적시고 지나가며 흙의 향기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이라는 짧은 여행을 지나가며,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의 이름을 영혼의 벽에 가만히 새겨 넣는다. 속하지 않았기에 스쳐 지나갈 수 있었고, 스쳐 지나갔기에 그 모든 풍경을 아프도록 깊이 안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외로운 방황이 아니다.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울타리도 나를 전부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나의 삶이 거대하고 자유롭다는 증거다.
오늘 밤도 지구라는 작은 간이역을 지나가며, 나는 나지막이 주문을 외운다. 지나갈 것. 묶이지 말 것.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풍경의 연인이 될 것.
결국 삶이란 집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아니라, 내가 나라는 유일한 집을 짓기 위해 수많은 세계를 거쳐 가는 일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길 위에 서 있으면 지쳐버린 마음을 달래줄 절대적인 안식처를 갈망한다. 돌아갈 고향, 나를 기억해 줄 사람들, 완벽한 이해와 온기가 보장된 울타리. 그러나 지나가는 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옛 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물들었던 시선은 이전의 순진함으로 돌아갈 수 없고, 한번 발을 내딛은 발자국은 지나온 길의 흙을 묻힌 채 결코 이전의 흰색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픔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지나온 수많은 밤과 바람, 그리고 아침의 빛을 통해 더 이상 예전의 좁은 방 안에 갇힐 수 없을 만큼 넓어졌음을 뜻하므로.
이제 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또 어디에서든 머물 수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 던져짐이나 불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이 곧 길이자 목적지이며, 거처가 되었다는 가장 우아한 자각이다.
기차가 멀어지며 남긴 철길의 진동처럼, 내 삶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표면 위에 아주 옅은 파문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세계의 그 어떤 모서리도 나를 거절할 수 없다.
창밖으로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명명되지 않은 새벽의 빛이 지평선 너머에서 소리 없이 차오른다. 나는 여전히 통과하는 중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러나 이 순간 세상의 모든 빛과 어둠을 온전히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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