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까지
2021년, 수능점수에 맞춰 노어과에 입학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우 전쟁이 발발했다.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2023년, 대학교 2학년을 수료한 나는 잔뜩 방황하며 휴학을 결정했다.
2학년 즈음 지나면 전공언어 국가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는게 우리 대학의 학풍이었다. 나는 한때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럽을 향한 표트르 대제의 야심과 함께하는 교환생활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났고, 그 날이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다는 사실에 의미부여를 하며 어쩐지 러시아가 내 운명이 아니라고 느꼈다.
전공도 잘 모르겠고, 딱히 꿈이란걸 가져본 적 없는 성실한 한국 학생이었던 나는 휴학부터 하고 돈 벌 궁리를 시작했다. 선배들의 취업후기를 수없이 읽으며 느낀 건 한가지. 문과가 돈을 벌려면 돈을 만지는 직업을 가져야되겠구나! 세상의 혁신에 앞장서는 멋진 일을 하고싶었지만 그 영광은 이과생들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굴러가는 곳'이면 당연지사 뉴욕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학교 국제교류부서의 교환학생 페이지를 정독하며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캠퍼스를 목표로 정하고 토플시험을 쳤다. 결과는 74점이라는 작고 귀여운 점수. 최소 점수가 80점, 같은 곳을 지원한 친구들과 면접에서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영어에 한학기 짜리 휴학계획을 일년짜리로 늘렸다.
당시 나는 올리브영 종로 YBM 지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뉴욕은 비싼 곳이기에 교환학생 자금도 마련해야 했으므로 주5일 7시 출근 4시 퇴근으로 근무시간을 늘렸다. 그중에서도 주2일은 동네 카페에서 마감 일을 했고, 카페 일이 없는 날에는 올리브영 길건너 해커스에서 토플강의를 들었다. 그 해 여름 겨우 영어점수를 만들어놨더니만... 2024년 1학기 모집 대학 리스트에서 목표 캠퍼스가 제외됐다!
SFSU, San Francisco State University
반년을 바라봤는데 사라져버린 뉴욕주립대를 보며 배신감을 느낀 나는 뉴욕에게 빈정이 상했다. 동부가 싫으니 서부를 가볼까,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주립대를 지원해버렸다. 어찌 보면 내가 내 인생에서 마음 가는 대로 내린 첫 번째 결정이다. 대학에는 가야된다고 그래서 수능을 쳤고, 딱히 하고싶은게 없으면 간판이 중요하다 그래서 관심도 없는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상경학사가 필요하대서 복수전공을 했고, 돈을 벌려면 금융권이라고 그러길래 뉴욕을 가고싶었던 내가 예기치 않은 변수로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했다.
막상 학교가 결정되고 나니 무서웠다. SFSU의 강의 목록을 보며 자연스럽게 투자론, 금융기관론, 회계수업을 장바구니에 넣었지만 투자의 ㅌ자도 모르는 내가 과연 영어로 이 수업들을 들을 수 있을까?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한국의 펀드매니저 관련 자격증인 '투자자산운용사'시험을 무작정 등록했다. 한국어로 알면 가서도 알아듣겠지.
공부할 것이 생겼으니 몸을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신용보증기금 신설동지점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바야흐로 순풍의 시작이었다. 이곳에서 가을을 지내며 시험도 한 번에 합격하고, 비자도 승인되었다. 금융권의 각 분야를 거쳐 온 사무실 직원분들의 응원 속에서 미래에셋의 장학생이 되었으며, 돈도 충분히 모였다.
2024.01.20 ICN → SFO
가족들이 공항에 바래다주었다. 처음 싸보는 6개월치 짐에 기대와 불안을 가득가득 담아 부쳤다. 인사를 마치고 우리나라지만 낯선 공항에서 혼자 출국수속을 마친 뒤 게이트로 이동하는 무빙워크 위에서 눈물을 쏟았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혼자 살아본 적도 없는 내가 스물한 살에 그것도 처음 가보는 아는사람 하나 없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니 눈물이 펑펑났다. 이게 나 스스로 벌인 일이라니!
보딩을 기다릴 때의 심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비행에 익숙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원어민의 영어발음에 속이 울렁거렸다. 출국일을 알던 친구들이 하나 둘 조심히 다녀오라며 안부연락을 주었다. 할머니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비행기모드를 켜고, 이륙하는 소음에 묻히길 바라며 또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더랬다.
그렇게 울다가 기내식으로 나오는 쌈밥도 먹고 영화도 보면서 생애 첫 장거리 비행을 했다. 너무 긴장해서 허리가 아픈지 무릎이 저린지도 몰랐다. 내려서 손을 벌벌 떨며 첫 입국심사를 마쳤고, 캐리어는 한쪽이 부서진 채로 도착했다. 기숙사 입구를 잘못 찾아서 비 오는 날 언덕을 낑낑거리며 25kg짜리 캐리어 두 개를 옮겼다. 처음 가 본 타겟에서는 이불을 못 샀다. 솜이 죽은 베개를 베고 혹시 몰라 챙겨온 담요를 덮고 지쳐 쓰러진 첫날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내가 생각했던 캘리포니아가 아니었다. 비가 계속 오고, 햇빛은커녕 우중충했으며 날씨는 쌀쌀했다. 도착한 다음날 생필품을 비로소 다 갖추고 처음으로 샌프란 시티를 마주했다. 나름 금융의 꿈을 안고 날아온 터라 Financial District를 구글맵으로 찍어 기숙사 키를 챙겨 나갔다. 축축한 거리를 거닐며 Ferry Building까지 다다랐고, 너무 추워서 그 안 블루보틀에서 따뜻한 라뗴와 쿠키를 샀다. 바다 앞에 있던 벤치에 앉아 시계를 보니 한국은 새벽시간이었다. '시차'라는 또 하나의 낯섦을 느끼며 Bay Bridge를 바라봤다.
분명히 빨간색 다리가 유명했던 것 같은데, 내가 보는 다리는 하얀색이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왔구나 생각하며 다리에 걸린 달을 바라봤다. 한국에 있는 누구와도 연락이 안 되는 시간, 옆 벤치 아저씨들의 못 알아듣겠는 대화, 뚱뚱한 갈매기와 바다. 그 고요 속에서 처음으로 가슴이 설렜다. 무서워도 내가 마음에 이끌려 내린 선택이고, 지금까지의 나를 아는 사람도 여기엔 없다. 자유다.
그렇게 도착한 다음날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Ferry Building과 Bay Bridge는 아직도 내 최애 스팟이다. 나는 금문교보다 Bay Bridge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