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감정을 인질로 삼는 가장 비겁한 기술

정서적 인질극, 포기를 동의라고 부르는 사람

byDavidoff

정서적 인질극: 타인의 감정을 인질로 삼는 가장 비겁한 기술



사람을 통제하는 데 반드시 폭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죄바카라감 하나면 충분하고, 때로는 서운하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수잔 포워드(Susan Forward)가 제시한 정서적 인질극(Emotional Blackmail)은 상대방의 죄바카라감, 두려움, 의무감을 자극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통제하는 심리적 조종의 한 형태다.


이러한 관계에서 타인의 감정은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통제 수단이다.

상대가 어디에 약한지 파악하고, 그 약점을 적절한 순간에 건드리면 된다.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다.

상대가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정당한 거절에 죄바카라감을 느끼게 만들면 통제는 훨씬 우아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본인은 절대 조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사랑이 많고, 상처를 잘 받고,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조금 많을 뿐이다.


상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정서적 인질극은 대개 여섯 단계를 거쳐 반복된다.



1. 요구: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해줘야 하는 이유



모든 것은 요구에서 시작된다.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할 수도 있고, 한숨이나 침묵, 굳은 표정으로 상대가 알아서 눈치를 보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 정도도 못 해줘?”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많이 바라니?”


요구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누구나 관계에서 무언가를 바라고, 때로는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문제는 자신의 요구를 상대가 반드시 충족해야 할 의무로 여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상대의 상황이나 의사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해주는가이다.


말을 직접 꺼내지 않았으니 강요한 적은 없다.

상대가 알아서 눈치를 보고 맞춰준 것이니까.


참으로 편리한 방식이다.

요구는 했지만 요구한 적은 없고, 압박은 했지만 압박한 적은 없다.



2. 저항: 네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상대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거절 의사를 밝힌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할 기회가 된다.


그러나 상대를 통제하려는 사람에게 거절은 협상의 시작이 아니다.

자신의 통제권에 대한 도전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

“전에는 안 그랬잖아.”


상대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사실은 잠시 잊어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상대의 사정이 아니라 자신의 서운함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계는 존중해야 할 기준이 아니라 어떻게든 무너뜨려야 할 장애물이 된다.


상대가 왜 거절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어떻게 하면 그 거절을 철회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 훨씬 중요해진다.


이때부터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쪽의 의지를 관철하는 과정으로 바뀐다.



3. 압박: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다음 단계는 압박이다.


이제 요구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대신 상대의 인격과 애정을 문제 삼는다.

단순한 거절을 사랑의 부족, 배신, 이기심으로 바꾸어 놓는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겨우 이걸 안 해줘?”

“넌 항상 네 생각밖에 안 하잖아.”


논점은 더 이상 자신이 무리한 요구를 했는지에 있지 않다.

상대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사랑이 부족한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재판으로 바뀐다.


요구가 합리적인지 따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죄바카라감을 심어주면 굳이 합리적일 필요가 없다.


사랑을 증명하라며 상대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

이들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제출해야 하는 복종 증명서다.



4. 협박: 네가 선택한 결과는 네 바카라임이야



죄바카라감만으로 상대를 움직일 수 없다면 이번에는 두려움을 이용한다.


“네가 계속 이러면 우리 관계도 생각해 봐야겠어.”

“그럼 나도 더는 너한테 잘해줄 이유가 없겠네.”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관계를 끝내겠다는 말부터 애정 철회, 냉대, 침묵까지 수단은 다양하다.


핵심은 하나다.

상대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본인은 협박한 적이 없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상대가 겁을 먹고 선택을 바꿨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자발적인 결정이다.


이 얼마나 민주적인 관계인가.

선택권은 상대에게 있지만, 선택의 대가는 자신이 정한다.


상대에게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붙인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를 허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한 답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선택한 상대에게 말한다.


“네가 스스로 결정한 거잖아.”



5. 굴복: 결국 네가 나를 이해해 줬네



반복되는 압박과 협박에 지친 상대는 결국 요구를 받아들인다.


“알았어. 내가 미안해. 네 말대로 할게.”

“그냥 내가 맞춰줄게. 더 싸우기 싫어.”


이 순간 통제를 시도한 사람은 자신의 요구가 정당했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상대가 결국 들어줬으니까.


그러나 상대가 동의한 것인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포기한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들에게 상대의 굴복은 사랑의 증거가 되고, 상대의 지침은 관계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된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상대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고 자존감을 깎아냈는지는 계산서에 포함되지 않는다.


상대가 웃으며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진심이 아니라 결과니까.


이렇게 상대의 양보는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고, 다음 요구를 위한 선례가 된다.


한 번 들어줬으니 다음에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참아줬으니 다음에도 참아줄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인내심은 끝이 없는 자원처럼 취급된다.



6. 반복: 이제는 네가 알아서 나를 조심하겠지



정서적 압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성공하면, 같은 방식은 반복된다.

상대가 저항하면 압박하고, 압박이 통하지 않으면 협박하고, 상대가 지쳐 물러나면 이를 관계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작은 부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절할 때마다 죄바카라감을 느껴야 하고, 자신의 의사를 지킬 때마다 관계가 위태로워진다면 어느 순간 상대는 요구를 받기도 전에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이 말을 하면 또 서운해하겠지.’

‘그냥 내가 참는 게 낫겠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축하한다.

이제 상대는 당신이 직접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통제한다.


굳이 매번 협박할 필요도, 일일이 요구할 필요도 없다.

상대가 당신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당신의 불만을 예상하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서로를 잘 이해하는 관계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한쪽은 점점 더 편해지고, 다른 한쪽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관계.

한쪽의 감정은 언제나 중요하고, 다른 한쪽의 감정은 언제나 설명과 해명이 필요한 관계.

한쪽의 요구는 사랑의 표현이고, 다른 한쪽의 거절은 사랑의 결핍이 되는 관계.


이것이 반복되면 정서적 인질극은 일회성 갈등을 넘어 관계의 구조가 된다.



사랑받고 싶은 것과 거절당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누구나 서운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자신의 서운함을 상대가 바카라임져야 할 의무로 바꾸고, 자신의 불안을 상대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로 바꾸며, 상대의 거절을 도덕적 결함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그 감정으로 타인을 통제하는 것은 다르다.


서운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운함을 이유로 상대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는 없다.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해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가 떠날까 두려워하도록 위협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건강한 관계에서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면서도 내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하면서도 나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서운함을 주면서도 반드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거절을 견딜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랑의 크기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상대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확신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감정을 인질로 잡아 얻어낸 순종은 사랑이 아니다.

단지 통제가 성공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