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by잎새 그리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주제넘게 살다가는 언젠가 큰 낭패를 당한다는 말로,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이다.



아내에게는 결혼한 언니가 있는데, 언니네 부부는 둘 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의대를 나와 현재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그들의 의사 생활 시작은 많이 늦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을 다시 갔으니 그 시작은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 한참 늦은 삼십 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리 잡기까지 주말도 제대로 쉬지 않고, 힘들 게 사는 모습을 보며 ‘의사는 정말 못할 짓이다.’라며 주제 넘게 안쓰럽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얼마를 버는지 알 수도 없었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교사인 나보다야 훨씬 많이 벌겠지.’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그 차이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처가에서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처형이 동서에게 차를 한 대 뽑아줬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이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던 드림카, 고급 스포츠카를 사줬다는 말에 귀가 뻥 트였다.

지난 번 지나가는 말로 듣고는, ‘그냥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놀라운 실행력과 자금력에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부러움을 숨기지 않고 한마디 했다.

“헉, 정말요? 언제 기회가 되면 저도 한 번 태워주세요.”

그들 부부는 이미 차가 두 대가 있는데 한 대를 더 샀단다.

사실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꿈의 자동차 한 대쯤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꿈을 쉽게 실현하지 못하는 게 뭇사람들의 모습이다.

어찌 보면 의사 부부의 수입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건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스레 혼자 시무룩해지고 의기소침해졌다.



그러고는 문득 몇 년 전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와 산바카라을 하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정이 생겨 오래 살던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적이 있었다. 집을 알아보다가 처형 집 근처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매가 가까이 살면 아이 키우기도 좋고,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흔들렸다. 특히 일을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아내가 가끔 조카들을 돌봐주면 서로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처형 집이 있는 동네는 내가 살고 있던 곳보다 학군도 좋았고, 그만큼 집값도 비쌌다. 실제로 이사를 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버지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며 조금 힘들겠지만 그 근처에 가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멋쩍게 웃으시며 한마디 하셨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

아무리 친한 동기간 일지라도 적당한 거리에서 사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의미에서 였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 뜻을 되새기며 아내에게 실행의 어려움을 전했다.

지난 일을 떠올려 보면 아내는 조금 서운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근처로 이사 가지 않은 게 꼭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아내는 무덤덤한 성격인 데다가 직접적으로 가계 운영에 관여하지 않다 보니 이런 부분에 대해 내가 너무 예민한 태도를 취한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이러한 격차가 나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세대로 이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처럼 내 분수껏 사는 게 중요하다고 옛사람들은 말해왔다.

나 하나만 생각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크디큰 격차를 따라잡으려고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뱁새의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기회의 평등, 과정의 평등, 그리고 결과의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득 가정의 경제적 차이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기회조차 공평하게 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이 자리까지 왔다. 그때는 열심히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쯤은 내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니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내 아이에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부모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순간, 내가 가진 충분함이 갑자기 부족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부모가 된 뒤 새롭게 생긴 나의 아픈 구석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새로 산 차를 보시고는, 뼈 때리는 농담을 한마디 하셨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평생을 검소하게 사신 분이시다. 아버지에게는 내 행동이 사치스럽게 느껴지셨을 수도 있다.

아버지라고 이 말씀을 하시기 좋으셨겠냐만은….

어찌 보면 앞날에 내가 느끼게 될 씁쓸함을 먼저 말씀해 주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실 우리 가족은 우리끼리 제법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다만, 자녀 걱정한답시고 내가 이 좋은 세상에 와서 잠시 빌려 쓰는 것들을 두고 괜한 시샘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생각해 본다.


이렇게 글을 끝내면 참 멋있을 텐데.



아무리 누르려 해도 마음 한구석에서 속물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나도 솔직히 그 차 타고 싶다.



얼마 전 온라인카지노 안세린 작가님의 「사람의 품격」이라는 글을 읽으며 미리 써 놓은 이 글의 끄트머리를 살짝 바꿀까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더 고상한 척, 조금은 더 초연한 사람처럼.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란 게 어디 그렇게 쉽게 사라질까?
결국 이와 같은 작은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