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글쓰기 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배부른 소리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강의 철학입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비롯하여 지역 도서관이나 센터, 평생학습관 등에서도 AI 활용 글쓰기 주제로 강의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얼마 전까지 이렇게 들어온 AI 글쓰기 강의 제안을 다 거절했습니다. 13년째 1,000여 회 글쓰기 주제로 기업교육, 초중고대학교 교육, 도서관 성인 글쓰기 수업 등을 진행했던 글쓰기 강사로서, 수락하기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인 AI 글쓰기 강의 제안을 왜 정중하게 거절했을까요?


수강 대상이
글쓰기 초보자였기 때문에


판단력이 생기기 전까지 AI는 글쓰기 조수나 선생님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AI 활용 글쓰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글쓰기 강사입니다. 챗GPT가 나오자마자 그해부터 가장 먼저 관련 강의를 하기도 했거든요. AI를 쓰지 말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AI는 잘 쓰면 글쓰기의 가능성을 넓혀 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AI 활용법이 아닙니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도 아닙니다. 더 유려한 문장을 빠르게 뽑아내는 방법도 아닙니다. 자기 글쓰기의 감각을 익혀 보는 시간을 겪는 겁니다. 어색한 문장도 써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라도 끝까지 완성해 보고, 다시 읽으며 어디가 이상한지 스스로 느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 글쓰기 감각이 생기기 때문이죠. 문장을 보는 눈이 생기고, 글의 방향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깁니다.


AI는 그다음에
써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력이 생기기 전에 AI를 쓰면, AI가 고쳐 준 문장이 왜 좋은지 알 수 없으니까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내 글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가 내 글을 대신 정리해 주는 상황이 됩니다. 그건 그냥 AI에 종속된 노예지요.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자신의 글쓰기인가요.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는 글쓰기는 인간의 글쓰기가 아닙니다. 평생에 한두 번 일필휘지는 예외로 치더라도 말이죠.


글은 순간적으로 그럴듯해질 수 있다고 해도, 글 쓰는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면 글 쓰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글쓰기는 결과물만 내놓으면 끝인 행위가 아닙니다. 과정을 겪는 인간 고유의 사유와 특유의 감각으로 나를 확인하고, 그걸 통해 같은 인간에게 감흥을 주며 내 존재감을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이 글쓰기의 효용이기도 하니까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AI는 결과 데이터만 학습했지, 작가의 글쓰기 과정까지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고 작가만의 은밀했던 절차이니까요.


저는 다시 강조하지만 글쓰기 강사로서 AI 활용 글쓰기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써야' 합니다.
먼저 '헤매야' 합니다. 인간으로서요.
먼저 자신으로 문장으로 치열하게 '실패'해 봐야 합니다.
그다음 AI와 함께하기 바랍니다.


AI는 좋은 도구예요. 하지만 도구는 사용 감각을 기른 사람에게 더 유용합니다. 좋은 성능의 카메라가 있어도 감각이 없다면 좋은 사진을 찍기 어려운 것처럼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아무리 문장을 잘 고쳐 줘도, 결국 마지막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이 문장이 내 글에 맞는지. 이 표현이 내 생각을 정확히 담고 있는지. 이 방향으로 고치는 것이 정말 나은지.
이 글이 과연 나다운지. 도대체 나다운 것은 무엇인지. 내 독자가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읽고 느꼈으면 하는지. 그 사유와 감각을 글쓰기에 쏟을 수 있을 때 AI는 비로소 보조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생기기 전에는 AI가 오히려 내 글쓰기 능력의 성장을 늦출 수 있다는 걸 인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AI 글쓰기 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글쓰기 초보자에게는 AI보다 먼저 자기 문장을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 제가 융통성이 없는 거라면...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여전히 저는 글쓰기를 입문하는 당신이 부디 AI를 쓰기 전에 먼저 자신의 글쓰기 감각을 키우셨으면 하고 바라니까요.


AI에게 바로 고쳐 달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한 번 더 읽고 두 번 더 고쳐 보셨으면 합니다. 같은 인간인 독자에게 공개도 해보고 피드백도 받아 보았으면 합니다. AI를 활용해서 잘 쓰고 싶다면 나 스스로 못 써보고 머리를 싸매보는 경험이 필수입니다. 독자를 염두에 둔 긴장감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해 한계에 부딪혀 가며 퇴고해야 하죠. 이것이 과연 비효율적인 것일까요? 아니요. 일단은 글쓰기의 감각을 키우고 내가 성장해야 AI가 내 초고를 토대로 내놓은 글에도 내 색깔과 결을 구분하고 '참고'할 수 있는 겁니다.


AI 글쓰기 강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후회는 없냐고요?

돈을 더 벌 생각만 했다면 후회도 되겠지만, 교육하는 사람의 마인드셋으로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제안을 한다면, AI 활용 글쓰기는 어느 정도 글을 써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기획하거나 글쓰기 기본 교육과 AI 활용 교육을 비교적 장기간 프로젝트로 수행하는 강의를 기획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기적으로도 이 방향이 저는 맞다고 믿습니다. 제 불통스러운 고집이지만, 바꿀 수 없는 이동영 강사의 글쓰기 강의 철학입니다. 현장에서 강의를 기획하고 제안을 주시는 담당자분께 정중하게 부탁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AI 글쓰기 강의, 하고 싶습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프리랜서 강사가 또 섭외되는 비결은?(영상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