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9

수업 :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만든 지옥도 (完)

by듀르크하임

1990년대 후반, 교육 혁신을 위한 대대적인 도전이 있었다. 열린교육, 학생중심 수업, 수행평가가 중고등학교 교실 모두에서 강조되었다. 기존의 주입식 수업과 암기식 평가에 대한 비판이 커졌고, 학생이 직접 참여하고 표현하고 탐구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교사들을 연수하기 시작했다.


교실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 열심히 판서를 베껴쓰는 것이 모범적인 수업 태도였으나 이제 발표해야 했고, 토론해야 했고, 보고서를 써야 했고, 모둠 안에서 역할을 맡아야 했다. 교사는 설명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활동을 조직하고, 과정을 관찰하고, 결과물을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즉 학습촉진자라는 교사의 역할이 학술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년에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의 핵심 철학은 '구성주의'였다. 지식이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 스스로가 인지적, 슬롯적으로 구성해나간다는 논문이 우루루 쏟아졌다. "드디어 교육을 혁신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구나"라는 희망이 연구자들과 실천가들 가슴에 가득했다. 일부의 교육업자들은 자기주도학습을 시장화시켜 판매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학습자의 역할이 교실의 한 가운데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교육 전반에 기분 좋은 바람을 불게 했다.


1999년부터 수행평가가 전국적으로 실시되면서 수업은 더 복잡한 장면이 되었다. 수행평가는 지필고사만으로는 미래 슬롯에 필요한 학생의 역량을 판단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그것은 분명 필요한 문제의식이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다른 효과도 나타났다. 학생의 더 많은 행동이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발표 태도, 보고서의 완성도, 모둠활동 참여도, 실험 과정, 과제 제출, 활동지 작성이 모두 수업 안에서 관리되기 시작했다. 학생은 시험날에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수업 중에도 계속 평가받는 존재가 되었다.


수행평가는 수업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학생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시험에서 답을 쓰면 되었다. 이제 학생은 수업 중에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어야 했다. 질문해야하고, 말을 해야 하고, 참여해야 하고, 협력해야 하고, 결과물을 만들고, 모순적이게도 그 모든 과정이 결과로 기록되어야 했다.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활동을 살펴야 했고,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했고, 점수를 부여해야 했고, 불공정하다는 항의를 견뎌야 했다. 수업은 교육적 활동인 동시에 평가 행정의 공간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의 수업은 이처럼 제7차 교육과정, 학생중심이라는 말과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교실의 실제 시간은 여전히 시험에 묶여 있었다. 교육과정 문서에서는 학생의 개성과 선택을 말했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어느 선택이 입시에 유리한지 묻기 시작했다. 수준별 수업은 학생의 수준에 맞춘 교육이라는 말로 설명되었지만, 실제 학생에게는 자신이 어느 수준으로 분류되는가의 문제로 체감되었다. 선택은 자유를 말하는 듯 하였지만, 입시 안에서 선택은 실은 의미 없는 말이 되었다. 수업은 점점 더 개인화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개인화는 자유보다 관리에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학교 교사들은 점점 더 많은 역할을 떠안기 시작했다. 수업을 잘해야 했고, 시험도 대비시켜야 했고, 수행평가도 운영해야 했고, 생활지도도 해야 했고, 학부모 상담도 해야 했다. 입시제도는 자주 바뀌었고, 전형 이름은 늘어났으며, 학교는 대학입시 정보를 해석하는 기관이 되었다. 고3 담임교사는 교과 교사이면서 입시 상담자가 됐다. 수업은 교사의 일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 수업은 늘 입시의 그림자 속에서 가려진 채 행해진 셈이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이 생겼다. 내신, 수능, 논술.... 이 세 가지를 모두 준비해야한다는 부담감을 비판하는 용어이다. 점점 수시와 정시, 내신과 수능, 대학별고사와 비교과,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가 함께 요구됐다. 학생은 한 가지 시험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평가에 동시에 노출되었다. 겉보기에 의도는 아주 훌륭했다. 학생들을 한 줄로 줄세우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학교 수업은 내신을 위한 공간이었고, 학원 수업은 수능과 대학별고사를 위한 공간이었으며, 비교과 활동은 별도의 관리 대상이 되면서, 사교육 부담이 기존의 몇 배가 되어버린다. 학생의 하루는 학교 수업, 야간자율학습, 학원, 독서실, 과제, 수행평가 사이에서 촘촘하게 쪼개졌다. 바빠지고, 복잡해진 입시에서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학원가로 내몰 수 밖에 없었다. 부모의 역량이 입시를 좌우한다는 말을 사교육업자들은 신나서 떠들어댔다.


2008학년도 이후의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입학 전형에서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비중을 대폭적으로 확대한다. 이를 위하여 학교 내신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내신 성적을 기록할 때 원점수와 더불어 과목별 석차 등급(9등급제)을 동시에 표기하도록 하였다. 둘째,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개선하여, 수학능력 시험과 고교의 교육과정과의 연관성을 높이고, 점수경쟁을 완화하기 위하여 수능점수가 아닌 수능등급(9등급)만을 표기하도록 하였다. 또한, 일부 시험문제를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하는 방안을 도입하기로 하였다. 셋째, 대학의 학생선발을 특성화 및 전문화하기 위하여 대학 및 모집단위별로 특성에 부합하는 전형모형 개발을 유도하고, 대학입학 전형의 전문화를 위하여 대학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며, 특수목적고의 교육과정 운영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고교 교육과정 특성을 반영한 동일계열 진학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2008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대학입학 전형제도는 시행도 되기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수학능력시험 및 내신 성적과 더불어 대학 논술고사까지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상당한 심리적인 부담을 느껴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즉 대학들이 수학능력시험 및 내신 성적과 더불어 논술시험의 비중을 확대하게 됨에 따라 학생들이 논술시험 준비하기 위하여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치열한 대입경쟁과 사교육이라는 우리슬롯의 한 단면이 어떤 제도적인 측면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소위 명문대가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슬롯적 인식에 기인한 바도 크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외형적인 제도개선과 더불어 슬롯적인 인식의 변화에도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서 2008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혁에 대한 내용을 발췌

--- 그러니까, 지금처럼 내신이 대입에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 것은 이미 20년 정도 된 일이다. 공교롭게도 저 시기의 교육부장관과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고교학점제와 대입평가제도를 윤석열 정권에서 맡았던 교육부 수장이 동일한 사람이다. 이주호 교육부장관, 당신은 중등 사교육 시장을 활발하게 만들고 고교다양화 정바카라과 대학들 간의 불공정 경쟁을 심화시켜 국가 불균형 발전과 부동산 문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 것을 사과할 의향이 있는가? 아마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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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 박태찬입니다. 교육에 얽혀있는 불안, 관계, 삶의 혼란을 함께 해석하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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