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 이해#1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알고 있었다면 왜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왜 내가 말했을 때 믿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을까.
나는 일기장을 덮지 못했다.
몇 장을 더 넘겼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어머니가 그 안에 있었다.
아버지에게 혼나는 어린 나를 바라보던 마음.
내가 집을 나갔던 날의 이야기.
큰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고모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혼.
놀랍게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는데.
어머니도 당연히 아버지를 미워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할 수 있는 건가.
그때의 나는 그런 마음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장을 더 넘기다가 한 곳에서 손이 멈췄다.
빚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까지 부모님이 왜 바로 이혼하지 못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공무원 보증으로 대출을 받아 아버지에게 돈을 마련해 주었던 일.
IMF를 지나며 일이 잘못된 것.
투자와 빚이 겹치면서 그 돈이 3억이 넘었다는 이야기까지 적혀 있었다.
3억.
내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돈이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사라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혼을 한다고 빚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보증을 선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빚이었다.
그리고 오빠와 나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 돈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있었다.
친척들에게도,
고모에게도.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버지인 외할아버지에게는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를 싫어했고,
아버지는 한동안 외삼촌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미 친정에 신세를 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친정에 자신의 빚까지 얹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자기 아버지에게는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면서,
결국 고모에게까지 손을 벌리고 있었다.
아버지와는 이미 이혼했는데,
아버지의 누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해야 했다.
그때의 나는 돈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부탁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왜 어머니가 그렇게 돈에 예민했는지.
왜 혼자 모든 것을 붙잡고 있으려고 했는지.
그리고 왜 이혼하면서도 자꾸 나에게
너 때문이라고 했는지.
정말 나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혼자 감당해야 할 빚이 무서웠던 걸까.
이혼을 결심하고도 겁이 났던 걸까.
그 두려움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딸인 나에게 화살을 돌렸던 걸까.
이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내게는 상처였다.
나는 그 말 때문에 오랫동안 내가 부모님을 이혼시킨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일기장에는 빚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장이 되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도 있었다.
아버지의 술.
폭력.
병.
투자와 빚.
이혼.
그리고 외롭다는 말.
어머니는 아들보다 딸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나를 낳았을 때는 딸을 낳았다고 시어머니인 할머니에게 혼이 났다고 했다.
그렇게 바라던 딸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도 몰랐다.
내가 받은 상처를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있었다.
교육자면 뭐 하나.
내 자식 교육은 빵점인데.
어머니도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기장에는 어머니가 꿈꾸었던 모녀의 모습도 적혀 있었다.
딸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빙수를 먹고,
서로 옷을 골라주고,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
어머니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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