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아니어도, 캐럴

평범한 하루가 선물이 되는 순간

by한빛나

어릴 적 내게 12월은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했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불빛이 켜지고, 트리 아래 선물이 놓이고, 밤새 잠들지 못하며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히 마음이 들떴고, 눈이라도 내리면 세상이 온통 동화 속 풍경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면 그런 설렘도 당연히 사라질 줄 알았다. 그저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이 되고, 산타 대신 내가 준비해야 할 선물들이 늘어나는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들의 눈을 바라본다. 아이의 기대 찬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 시절의 내가 겹쳐 보인다.


12월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캐럴이 흘러나오면 괜히 마음이 먼저 설렌다.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창밖으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어른이 된 내게도 여전히 기다리는 계절이 있고,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는 날이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한 곡에 발걸음이 멈췄다. 나도 모르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자 눈 내리는 거리가 그려졌다. 가로등 아래로 하얀 눈이 흩날리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온기 어린 발걸음이 이어지는 풍경.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음만은 포근히 부풀어 올랐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콩콩 뛰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입가에 자꾸만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멋진 공연을 본 것도, 특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다. 음악 한 곡을 들었을 뿐인데, 그 짧은 찰나가 나를 하얀 눈이 뒤덮인 어느 마을로 데려갔다. 해야 할 일도, 고민거리도 잠시 내려놓은 채 나만의 작은 천국에 머물게 했다.


음악 한 곡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행복해지기 위해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거나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내가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으려 할 때가 있다.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하고, 특별한 곳에 가야 하고, 조금 더 여유로워져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것처럼.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 걷다가 마주친 계절의 냄새처럼 큰돈이나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것들.


캐럴이 그렇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선물처럼 미리 꺼내어 누리는 일. 당장 창밖에 눈이 내리지 않아도 음악이 흐르는 동안만큼은 이미 하얀 눈발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다.


아들이 어른이 되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도 지금과는 다르겠지. 선물을 바라던 아이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건네는 어른이 되어 있을 테고. 그때도 아이가 캐럴을 들으며 설렐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기쁨 하나쯤은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평범한 하루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지친 마음에 잠시 쉴 곳을 내어주는 자신만의 다정한 취향일 것이다.


지금 나는 12월이 아닌 날에 캐럴을 듣는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고, 크리스마스는 멀기만 하다. 하지만 마음은 벌써 소복이 눈 내린 거리를 걷고 있다.


행복은 이미 내 곁에 있는 것들을 기꺼이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캐럴 한 곡이면 충분한 오늘,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기다리며 웃음 짓는 이 소소한 행복을 누려본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여름에도 달리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