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화
11월 마지막 날
"징역 6개월에 법정구속한다."
구형을 10개월 받았지만, 변호사도 주변사람들도 초범인데다가 금액이 크지 않아서 많이 받아야 집행유예나 벌금형일거라고 했던 말들은 판사의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었다.
더군다나 그날 아침은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계신 엄마를 편하게 보내드리기로 가족들과 의논을 마친상태여서 11시에 병원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판결이 끝나자마자 청색 복장을 한 교도관들은 나를 법정옆에 있는 방으로 끌고 가서 가방과 휴대폰을 압수했다.
"저기요 전화 한통화만 하겠습니다."
마지못해 휴대폰을 돌려주면서 높고 낮음이 없는 톤으로 툭 휴대폰을 건네면서
"간단히 하셔야합니다."
"네"
겨우 떨리는 손으로 변호사한테 전화를 했더니 사무장이 받는다.
"6개월이래요. 법정구속이구요"
"뭐라구요 법정 구속요?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상황을 알리고 전화를 끊었다.
교도관에게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고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 철창 속에서 보기만 해도 섬뜩한 덩치 큰 남자 죄수들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본다.
꼭 동물원에 갇힌 미개한 존재들이 서로를 탐색하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 순간이 일반인에서 죄인으로 신분이 달라지는 첫번째 관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동안 다른이들의 판결이 내려졌고, 내 머릿속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하면서도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 말없는 박제인형처럼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얼룩진 유리창에 먼지를 세고 있었던 것 같다.
재판이 다 끝났는지 교도관이 일어나라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법무부 호송차에 오르기까지 나는 현실성없이 이건 꿈일거라고 깨고나면 다시 나의 일상속에서 웃고 떠들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내를 벗어난 호송버스가 구치소의 높고 큰 대문 안으로 들어갔고 커다란 운동장 앞에서 남자 죄수들이 먼저 내렸다.
철창 가림막 바로 뒤에 앉은 나만 덩그러니 남은 채 다시 버스가 회전을 했고, 마지막으로 나를 내려놓은 버스는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렇게 난 슬롯의 일원에서 구치소 철창 속의 일원이 되었다.
짙은 군청색을 입은 여자 교도관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들어 간 방안에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칙칙한 색깔의 옷 한 벌과 양말과 팬티 한 장이 각각 칼각으로 개켜져 있었는데, 머릿속은 뒤죽박죽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멍하니 서 있던 내 등 뒤에서
" 씻으세요 저쪽 끝 문이 목욕탕입니다. "
냉정함과 경멸이 뒤섞인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고. 지금 벌어진 상황이 납득도 안되고 이해도 안 되었기에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덤덤한 표정으로
" 네 " 라고 간신히 대답을 했다.
교도관이 들어가라고 알려준 대형목욕탕은 회색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고, 수십 개의 수도꼭지가 일렬로 앉아서 어디에서 씻을 거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중에 가장 구석진 수도꼭지 앞에 앉아서 물을 틀었지만, 그 물에 손도 담그지 못한 채 멍하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 왜 지금 나는 여기 앉아 있는 걸까 ? 수만 개의 물음표가 수도꼭지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씻지도 않고 목욕탕을 빠져나와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 안 씻어도 돼요 " 했다.
그 사이 내가 입고 있던 옷도, 가방도 나를 남겨둔 채 어딘가로 사라졌고 칙칙하고 낯선 옷을 겨우 입고 나서 교도관이 열어주는 낯선 방에 나는 던져졌다. 내 발로 들어갔지만 던져졌다는 기분이 더 강했다.
방에 들어서자 아무 말 없는 눈동자들이 위아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마치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한 아이들의 눈동자 같았다고 하는게 맞을거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와서 화장실로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토하려고 했지만 입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오전 내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오열이 되어 쏟아졌다. 수돗물 소리에 울음소리를 섞어 나는 세상을 다 잃은 듯 엉엉 펑펑 울음을 쏟아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차츰 이성이 돌아오고 대충 얼굴을 씻고 나왔는데 방에 있던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최대한 따듯한 음성을 냈겠지만 내 귀엔 윙윙 땡벌 소리로 들렸다.
" 괜찮아요 ? "
" 처음엔 다 그러니까 울어도 돼요 "
" 앉아서 조금 진정시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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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한잔 드릴까요 ? " 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 후에 플라스틱 컵에 김이 올라오지 않는 미지근한 커피를 그 여자가 내 앞에 놓아주었다.
" 고마워요 " 라고 겨우 목인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데 밖에서 지금까지 마셔왔던 그 커피맛이 아니었다.
플라스틱 컵 냄새에 보리차 향이 나는 믹스커피 그나마 위안은 이곳에도 커피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성은 또 감성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먹고 자야 하는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는 네모난 떡처럼 하늘색 담요로 꽁꽁 싸매져있는 이불이 보이고, 나무 바카라꽂이처럼 생긴 진열장과 원룸식의 싱크대위로 하얗게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차가운 벽 한쪽에는 빨랫줄이 있었는데 속옷과 면티들이 매달려 있었다.
한쪽 모서리 종이박스 위엔 언제 적 모델인지 알 수가 없을 만큼 작은 TV가 앉아 있었고, 두리번거리는 것도 잠시 나이가 아주 어려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지금 궁금한게 많다는 투로
" 얼마나 받았어요 ? "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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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걸로 들어온 거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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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묻는 질문의 뜻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대답하기 싫었을 뿐이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궁금함이 가득한 눈동자는 내 입에 집중한 채 무슨 말이든 원하고 있었지만 난 그냥 덤덤히 천정으로 눈을 돌리면서 생각했다.
' 난 금방 나갈 거야
나는 죄가 없어 그러니 나한테 신경꺼'
나는 줄곧 판사가 다른 사람 판결문을 잘 못 읽은거라고, 조금 있으면 내 이름이 불려지고 나오세요 할 거라고,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분명 어디쯤에서 문제가 생긴거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도 그다음 날도 잘못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나만의 생각이고 바람일 뿐이었다.
판사가 그런 실수를 할 일은 없는 거니까.
대답 없는 나로 인해서 방안은 금세 고요해졌고 간혹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귀엔 그냥 소음일 뿐이었다. 그때 복도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정말 설마 진짜 나를 데리러 오는 걸까 하는 생각에 내 심장이 두 방망이질을 해댔다.
드르륵 작은 창문이 열리고 내 이름이 아닌 나의 수형자 번호가 불려졌는데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구치소에서의 내 수형번호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일주일이나 그 번호로 불려졌는데도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그 번호는 나의 왼쪽 가슴에서 하얀색으로 지금부터 이게 너의 이름이야 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멍하니 열린 창문밖에 서 있는 군청색 입은 여자와 눈이 마주보고 있었다.
" 나오세요 접견입니다 "
낯선 번호에 멀뚱히 작은 창문너머에 서 있는 청색 제복을 바라보며 '자꾸 뭐라고 하는거야' 속으로 딴생각을 하느라 그것이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약간의 짜증이 묻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다시한번
"00번 나오세요 접견입니다" 한다.
' 저 말인가요 ' 묻는 눈빛으로 다시 바라보는데 그 여자가 맞다는 표정으로
" 네, 접견입니다 나오세요 " 한다.
철문이 열리는 딸까닥 소리가 났고, 손도 대지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복도를 걸어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갔는지는 기억이 없다. 또 다른 철문이 열렸고 내가 들어간 곳은 한쪽면을 단단한 유리벽이 차지하고 있었고 유리에는 작게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었다. 그 너머를 보는데 아는 동생하고 언니가 유리너머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어떻게 된 거야 ?"
" 왜 말 안 했어 ?"
"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거래 ?"
" 변호사는 뭐래 ?"
" 뭐 필요한 거 있어 ? "
" 춥지는 않아 ?"
언니는 숨도 안 쉬고 질문을 쏟아냈고, 일일이 대답할 기운도 없는데, 나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처음 접견이어도 시간제한은 있을거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밀려오는 눈물을 간신히 다시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면서 급하게 생각나는 대로 밖에 일을 먼저 부탁하기 시작했다.아마도 그 순간은 또렷이 이성이 돌아왔던 것도 같다.
벌려놓은 회사일을 어찌어찌 처리하라고,
집에 있는 강아지들 챙겨달라고 변호사한테 가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알려달라고,
빠르게 설명을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금방 나갈 거니까 나 없는 동안 밖에 일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데 마이크가 꺼진다.
어느새 접견시간 10분이 지나가버린것이다.
언니의 얼굴도 보이고 손대면 만져지는 거리인데 마이크가 꺼진 유리창안에는 적막이 흐르고 밖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입모양을 보아하니
' 밥 굶지 마 '
' 내일 다시 올게 '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방으로 오는 계단을 오르면서 지옥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교도관의 짙은 청색 제복이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지옥을 향해 계단을 오르면 영원히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암담한 심정이었다고 할까. 그 순간 어쩌면 나는 너무 이성적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철커덕 아까처럼 다시 방 철문이 열리고, 방안에 들어섰을 때 저녁 밥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밖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콩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쌀밥도 아니고 보리밥도 아닌 어정쩡한 잡곡밥과 하얀 비계가 둥둥 떠있는 멀건 뭇국에 배추김치, 깍두기, 그리고 반찬이 사각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다가 각자의 그릇에 또 옮겨졌다.
그릇은 얼마나 세월을 먹었는지 누리끼리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숟가락의 색이 바랜 초록색이 나를 닮아 있다고 느껴져서 그랬는지 나는 선뜻 수저를 잡지 못한채 멍하니 밥상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먹은 건지 안 먹은 건지, 그 상황에서 내가 밥상 앞에 앉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가 막힐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게 복도에도, 방에도 온통 환한 형광등이 켜져 있었고, 청색 제복을 입은 교도관이 가끔 창문 앞에서 방을 들여다보고 지나갔다.
동물원에 새로 들어온 원숭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에 생각으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말 꿈이었으면 꿈이기를 깨어나면 내 방 내 침대 위 이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빨리 가버렸으면 하고 이 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랐다.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이 8시에 앉아 있었고, 그 순간 천정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방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방을 쓸고 닦았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멍하니 싱크대 앞에 서서 그녀들의 움직임을 바라만 보았다.
이제 저 여자들과 이 작은 방 안에서 생활을 하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법은 우릴 지켜주어요 ~~ ~~ ]
' 법은 어려워
법은 불편해
법은 나를 지켜주지 않아 ' 들려오는 노래가사를 거꾸로 읽혔다.
노래가 끝나고 여자의 음성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 5만 수용자 여러분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 "
여자의 음성에 따라 파란 담요가 길게 같은 크기로 바닥에 깔리고 팔목만 한 베개가 놓여졌다.
처음에 말을 걸었던 나이 많은 여자가 나를 보면서
" 원래 새로 들어온 신입은 화장실 쪽에 누워야 하는데 오늘은 첫날이니까 여기 가운데서 자요 " 하면서 내가 누울 공간을 알려주는데 겨우 세로로 몸을 뉘어야 하는 좁은 공간을 보니, 내 방에 있는 커다란 침대가 떠오르고 또 현실적이지 않은 그 상황이 낯설고 도대체 왜 이런일이 생긴건지 종잡을수 없는 설움이 목에 걸렸다.
눈물을 간신히 삼키면서 그 배려도 불편한 마음에
" 배려는 감사한데 저 그냥 끝에서 잘게요 저 가운데 못 자요 " 했더니 이번에는 그 여자가 더 강경한 목소리로
" 아니요 오늘은 가운데서 자요 " 한다.
못 이기는 척 가운데 누웠는데 옆으로 누워도 낯선 사람, 반대로 누워도 낯선 사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바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데 불이 조금 흐릿해졌을 뿐이고 꺼지지는 않았고, 나는 환한 곳에서 못 자는데 하는 생각을 또 삼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교도소 불은 365일 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꺼지지 않는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누워 지난날을 떠올리니 양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작은 베개를 비껴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당당했던 내가 지금은 3평짜리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울고 있고, 무엇이든 다 마음먹으면 해내던 내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당당하고 두려움 없던 내게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해 주려고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일까. 이제 자신을 죽이는 법도 알면서 살라는 뜻일까. 어디 숨어있던 눈물들인지 하염없는 눈물이 면티를 적시고 있었다.
모두가 누운 좁은 방에 침묵이 흐르고 누군가가
" 울지 마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우는데 살다 보면 여기도 지낼만하더라고요 이제 냉정하게 다음 일을 생각해 봐요 " 한다.
" 네 네 "
대답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뒤엉키고 도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런 곳에 이런 사람들과 누워있는 걸까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나 역시 다른 사람 빚보증으로 구경도 못해본 돈을 갚아주고 결국 내가 빚쟁이가 되고 구치소방에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기만 했다.
양옆에서 잠이든 사람들의 낮은 코골음 소리를 듣는 것도 너무 낯설고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누워있다는 게 현실 같지 않아서 정말 꿈이었으면 꿈이기를 생시가 아니기를 바라고 바랄 뿐인 구치소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를 가운데 자게 한 이유가 혹시 비관자살을 할지도 모르니까 첫날은 가운데서 자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자살이나 할 사람이 되어있다는 사실이 또 목울대를 건드렸다.
매사에 당당하고 씩씩하던 내가 자살이 우려되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게 너무 기가막혔다.
또 배려가 아닌 감시였다는 사실이 비참함을 더해가고 구치소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 2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