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와인도 쉬고 싶다

와인 보관의 모든 것

by행운의 여신

《좋은 와인은 좋은 저장고에서 익고,
좋은 사람은 좋은 시간 속에서 자란다.》


사람에게 집이 필요하듯
와인에게도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고
조용히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곳.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없는 곳.

와인은 일정한 온도를 좋아합니다.

변화보다
안정감을 좋아합니다.

며칠 전, 냉방이 강한 곳과 더운 곳을 오가다
몸이 크게 아픈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온도가 바뀌면
사람의 몸도 쉽게 지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편안한 온도가 있듯
와인에게도 그런 온도가 있겠지요.



병 속에 담겨 있다고 해서
와인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와인은 여전히
시간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천천히 변하고,
조금씩 익어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병 속에서는 조용한 변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와인에게는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보관 온도는
약 12~15도.

하지만 집에서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 숫자에 너무 마음을 빼앗길 필요는 없습니다.

완벽한 온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정한 온도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서늘하고,
안정적인 곳.

와인은 그런 곳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와인은
햇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포도는 햇빛 아래에서 자라지만,
와인은 햇빛 아래에서 늙어갑니다.

강한 빛은
와인의 향과 맛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와인이 머무는 곳은
대체로 어둡습니다.

마치 깊은 잠을 자는 방처럼.

빛을 피해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진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곳보다는
고요한 곳을 좋아합니다.

오래 함께할 와인이라면
세탁기 옆이나 냉장고 위처럼
진동이 많은 곳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쩌면 와인에게 필요한 것은
멋진 공간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와인은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는 와인을
장기간 보관할 때
병을 눕혀 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와인과 코르크가 적당히 닿아 있어야
코르크가 지나치게 마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르크가 마르고
밀폐력이 약해지면
공기가 와인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공기는 참 묘한 존재입니다.

와인에 숨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일찍
시간을 끝내버리기도 하니까요.

물론 모든 와인이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크루캡을 사용하는 와인은
세워서 보관해도 괜찮습니다.

세상도 변하고,
와인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와인은 냉장고를 좋아할까요?

잠시라면 괜찮습니다.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은
마시기 전에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몇 년 동안
일반 냉장고에 머물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냉장고는
와인이 오래 머물며 익어가기 위한 곳은 아니니까요.

와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차가운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한 잔 마시고 남은 와인은 어떨까요?
버려야 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개를 잘 닫아 보관하면
며칠 동안 다시 즐길 수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3~5일,
레드 와인은 2~4일 정도.

물론 와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향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집니다.

처음 잔에 따랐을 때와
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때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변한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와인은 원래
시간 속에서 변하는 음료이니까요.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기다리던 아름다운 변화가 아니라
산화로 인한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남은 와인에게도
조금의 돌봄을 건네주세요.

잘 닫아주고,
적절한 곳에 두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생각해 보면
와인 보관은 단순한 기술보다
돌봄에 가까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일수록
조금 더 천천히 다룹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은 잘 돌보고,
지키고 싶은 것은 조심스럽게 대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줍니다.

와인도 그렇습니다.

좋은 환경에 머문 와인은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합니다.

와인을 보관하는 방법은
어쩌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도
관심이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뜨겁게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차갑게 방치해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계속 견디라고만 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멈춰
천천히 숨을 고르는 시간.

누군가의 곁에서
말없이 머무는 시간.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어쩌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와인이 아름답게 익어가는 것은
단지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너무 덥지 않고,
너무 춥지 않고,
빛과 진동을 피해
조용히 머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달리고,
계속 무언가를 해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잘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멈추고,
쉬고,
좋은 사람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에
우리 안에서도
무언가가 천천히 익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와인처럼 사람도
잘 쉬어야 아름답게 익어갑니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과,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읽기 전에 잠깐!
와인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초보자분들을 위해 준비한 가벼운 참고 자료입니다. 편하게 즐겨주세요!





와인을 오래 아름답게 보관하는 법

와인 보관의 기본



코르크 와인은 왜 눕혀 보관할까?



천연 코르크를 사용하는 와인은 장기간 보관할 때 눕혀 보관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코르크가 지나치게 건조해져 밀폐력이 떨어지면 산소가 들어가 와인의 산화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와인을 반드시 눕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주 또는 가까운 시일 안에 마실 와인이라면

보관 자세의 중요성은 크지 않습니다.


반면 천연 코르크 와인을

오랫동안 숙성할 계획이라면

눕혀 보관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입니다.

스크루캡 와인은 코르크가 없기 때문에

코르크를 젖게 유지하기 위해 눕힐 필요는 없습니다.

세워 보관해도 괜찮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행운의 여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시집:널 사랑할수밖에> 좋은 글과 말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작은 행복과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꽃이 되길 바랍니다.

6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0화10. 태양이 만드는 가장 뜨거운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