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인사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뭐야 인사도 안 받아 주네. 참 예의가 없구나.'
그날 이후 그 이웃은 무례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서툰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았을 뿐,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상대를 판단한다.
내가 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
내가 내린 해석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 때
온라인 게임에서 동료 몇 명이 한 사람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은 정말 같이 일하기 힘들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처음에는 한 사람의 불만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동조하면서 어느새 모두가 그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는 그 동료와 별다른 갈등이 없었던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냈다가 자신까지 미움을 받을까 봐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부부간에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갈등이 생기면 상대에게 바카라임을 돌린다.
"네가 문제야. 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모든 바카라임이 그 한 사람에게만 있을까?
나의 말과 행동은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한 사람을 문제의 원인으로 만들면 나머지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도 커진다.
그렇게 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면서 자신
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비난이 부당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잘못한 사람에게는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왜곡하는 것은 다르다.
내가 지키려는 것은 진실일까?
우리는 인정받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비난받거나 사람들에게서 외면당하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상대의 잘못을 더 크게 이야기할 때가 있다.
내가 속한 집단의 분위기에 맞춰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 순간 내가 지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내 평판과 알량한 자존심일 수 있다.
상대를 판단하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보자.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은 무엇인가?
나는 상대의 입장을 들어 보았는가?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는가?
오늘 누군가를 비난하는 자리에 있다면,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동조하지 말자.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변명하지 말고 인정하자.
잘못은 사실대로 판단하되,
내가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잔인한 현실이다.
진실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