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1985년 아프리카 사헬 가뭄 가뭄과 기근

by이월
유목민, 농경민들의 대규모 기후 이주와 도시화

가뭄으로 토지 부양 능력이 완전히 소멸하자, 수백만 명의 유목민과 농경민들은 거대한 기후 난민이 되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시로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는 1970년 4만 명에서 1968~1973년 기후 난민이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0년 7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국가의 행정력과 도시 인프라가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도시 외곽에 케베(Kebbe)라는 무허가 판자촌이 확대되었습니다. 상하수도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극심한 식수난, 폭증하는 쓰레기, 열악한 보건 위생 시스템 등 누악쇼트는 질병과 빈곤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누악쇼트 전체 인구의 35~40%가 기본적인 인프라가 단절된 슬럼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해안가 항만 개발과 맞물려 진행되는 해안선 침식(연간 최대 25m), 염수 침투 현상까지 겹치며 도시 빈민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유목 슬롯의 붕괴와 강제 정착화

가뭄 이전 모리타니의 유목민 비율은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나, 1985년에는 그 비율이 15%로 급락했습니다. 가뭄이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유목 경제를 영세한 일용직 노동자나 구호물자에 의존하는 슬럼가의 도시 빈민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자원 경쟁의 극단화와 지정학적 무력 분쟁

과거 수세기 동안 사헬 지역의 정착 농경민과 이동하는 유목민은 계절에 따라 상호 보완적인 자원 공유 시스템을 유지해 왔습니다. 추수가 끝난 건기에는 유목민들이 농경지에 가축을 풀어 수확하고 남은 작물 줄기를 먹이게 하고, 그 대가로 가축의 배설물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 역할을 했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사헬 북부의 얕은 초지들이 모조리 사막화되면서 유목민 무리는 가축을 살리기 위해 평년보다 훨씬 더 남쪽의 습윤한 농경 지대로, 그것도 농민들이 미처 추수를 끝내기도 전에 황급히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동시에 기후 변화로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자, 농민들은 수확량을 만회하기 위해 과거에는 유목민들의 이동로나 방목지로 내버려 두었던 한계 토지와 하천변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월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기후·환경·슬롯·경제 등 다양한 이슈를 글쓰고 있습니다.

13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